나는 친구가 적다 7 - Extreme Novel
히라사카 요미 지음, 주원일 옮김, 브리키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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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조라의 추락, 세나의 역습, 리카의 재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나는 친구가 적다 7권


 코바토의 생일이 끝나고 이웃사촌부는 부활동으로 영화촬영을 택한다. 요조라는 영화촬영을 위해 코다카와 함께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한 모임(......데이트 아니냐?)을 가지고 영화관과 고양이 카페를 방문한다. 그리고 고양이 카페에서 옛 생각에 잠기는 두 사람. 역시 매력 포인트는 츤츤거리는 요조라!


 세나는 모임에서 돌아온 각본을 두고 요조라와 다투게 되는데 여기서 요조라는 코타로와 소꿉친구의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는 정곡을 찌르는 세나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거기다 세나는 표절임이 드러난 요조라의 각본을 폐기시키고 자신의 각본을 영화촬영에 쓰이는데 성공시킨다. 마지막 카운터 펀치로 세나는 자신이 코타로의 소꿉 친구일 뿐만 아니라 약혼녀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역시 이 작품의 진히로인 세나입니다. 어차피 요조라의 패배 따윈 예정되어 있었어요.


 리카는 영화촬영과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야기의 전반적인 키워드인 ‘친구’의 의미를 생각게 한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변태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냉정하게 이웃사촌부를 관조하면서 부활동을 열심히 하는 리카. 리카가 다시 재발견된다. 뭐하는 겁니까 작가님. 요조라하고 세나 동시에 물먹일 작정?


 영화촬영이 은근히 스즈미야 하루히를 따라한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여전히 재밌으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나는 친구가 적다! 8권은 코다카와 이웃사촌부 할렘인건가?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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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덕부! 2 - Seed Novel
오버정우기 지음, Anmi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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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숨덕부 1권(1권이라고 해야하나. 반응 안 좋으면 단편으로 끝났을것 같은데.)을 재미있게 봤던 나로서는 우연히 2권이 나온 것을 알고 사서 읽었다. 결론은 1권보다도 재밌다. 정말 장담할 수 있다.

 

 2권은 대덕여왕 은예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 나온지 얼마 안되서 안팔릴꺼 같으니 내용을 말하기는 곤란하고 특이한 부분만 언급하고자 한다.(시간 지나면 제대로 리뷰 작성한다. 이 작품도)

 나는 친구가 적다,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문명4, 인터넷 개그, 작품에서 나타는 클리셰 등을 이용하는 깨알같은 패러디 개그는 계속된다. 확실히 작가는 센스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역사, 철학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어 그런지 역사, 철학도 약간 개그에 언급되는데 내가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그런지(어차피 이 소설의 주 대상층이 중고등학생이긴 하지만) 작품에 약간 맞지 않는다는 이질감을 느낀다. 유쾌한 분위기 가운데 약간 진지함이 곁들여 진달까. 그러다 보니 묘하게 맥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초반은 주요 라노베의 클리셰를 따라, 후반에는 독자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은 부활동이다 보니 그 유명한 두 작품(굳이 언급해도 어지간히 라노베를 읽는 사람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과 너무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냥 묘하게 로컬라이징이 아주 조금 된 정도랄까. 그리고 그 서연지와 은예린하고 둘이 티격태격하는거 대번 그 요즘 유명한 작품의 두 명 생각날꺼다. 보니까 작가가 의도한 것 맞다. 후반은 독자적으로 나간다. 수경, 유진 남매의 활약상이 돋보이고 추진하는 부활동도 독특하다. 내가 생각하는 독특한 점은 이 정도다.

 

 이 작품은 오타쿠 문화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나타난다. 오타쿠 본인과 사회에 대해 제기하는데 오타쿠의 너무 특이한 행동, 사회의 오타쿠에 대한 불관용 이 두가지는 모두가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태도는 소수문화에 대한 불관용으로 이어져 소규모의 문화공동체가 확립되는데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일본의 문화산업이 번성하는것도 특이한 문화를 용납하는 수요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음권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신캐릭터 나올라나? 그냥 읽어보자. 아 한마디 하겠다. 표지 그거 네기마 따라했지?!!!

 추천머겅. 두번머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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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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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서양사에서 종교는 항상 분쟁의 원인이다. 십자군전쟁, 종교개혁, 30년전쟁 등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간 끊임없는 대결이 있었으며 지금에 와서도 종교간의 대립은 여전하다.

 

 이런 종교간의 대립은 서양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신론적인 종교의 비중이 크기에 서양보다는 덜하지만 일본, 중국과 같은 동양에 비해서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간에 크고 작은 대립이 있다. 이런 대립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는 빠른 속도로 다원화되고 있다. 사람들간에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이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에게는 옳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이런 현대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주장만이 옳고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옳다고 단언하는 것까지는 좋다.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에게까지 전도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며 강요를 하고 가치관을 주입시키려 하며 피해를 준다. 당하는 사람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종교는 이런 행위가 선(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관용을 용납하지 않는 종교의 행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저자는 이런 종교에 대해 거센 비판을 가한다. 이치에 맞지 않으며 비윤리적인 성서내용, 불가지론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기적으로 보일법한 현상의 원인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태도, 지나친 사회문제 개입, 특권적 지위 및 특권 향유, 비이성적•비논리적 태도, 현실에 맞지 않는 지식 전파(예를 들어 창조론) 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다양한 종교의 모습을 제시하고 이를 실증성(實證性)을 가지는 과학의 입장(주로 다윈주의)에서 반박한다.

 

 종교는 분노하기보다 저자가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는지 자신에게 진지한 물음을 가져봐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종교가 인간사에서 긍정적인 영향도 많이 미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일본바쿠후에서의 가톨릭은 평등(신 아래라는 전제가 붙지만)이라는 가치를 피지배층에게 전파하여 억압적인 봉건사회의 부조리를 깨닫는데 일조했다. 비록 선교 자체는 서양열강의 침략의 선봉으로 활용된 점이 있지만 피지배층에게는 분명 종교는 해방의 도구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재의 종교는 그런 긍정적인 모습보다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세상은 중세와 달리 너무나 다양한 가치관을 갖는 사회구성원들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대해 합의를 보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종교는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을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한다.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종교는 이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종교가 행하는 부정적인 모습만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된다.

 

 내 생각에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무신론자보다 종교(특히 일신론)를 믿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은 타종인과 무신론자에게 얼마나 관용적이었는가? 한 번쯤 진지한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 책이 말도 안되는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책은 안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 얘기는 되도록 꺼내지 말길 바란다. 남의 안위는 둘째 치고 우선 자신이 곤경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종교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읽어보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갖는 불만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진리와 신념이 있음을 깨닫고 독단적인 행동을 멈추길 바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주로 종교의 허위성을 폭로하고 과학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책이라는데 초점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논조를 떠나서 관련 근거로 든 신학•과학과 관련된 사례만 자세히 보더라도 지식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저자의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고 있으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무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신학자보다 더 성서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음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에 대해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 중심의 가치관을 주입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과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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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5
양운덕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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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미셸푸코지만 내용은 주로 푸코의 근대의 권력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와 관련된 이론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근대의 권력

1) 근대의 권력에 대한 관점

푸코는 권력을 소유, 양도 가능하다는 관점과 권력에 대한 일관적인 부정적 인식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푸코는 권력을 권력자에 의해 행사되며 소유, 양도가 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고 권력은 일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없으며 사회 곳곳에 편재하여 밑으로부터 만들어져 체계를 갖추고 작용한다고 본다.

권력을 억압적으로만 보는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는데 권력을 단순히 억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생산의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본다.

2) 규율

푸코는 권력은 규율을 통해 근대적 주체를 형성한다고 본다. 규율은 공간과 시간을 조직한다. 조직된 공간은 개인을 일정한 위치에 배치하며 활동범위를 제한한다. 조직된 시간은 행위의 진행단계를 통제시킨다.

 

2. 감시

근대의 감시는 파놉티콘으로 부를 수 있는 전면감시장치로 볼 수 있는데 전면감시장치는 개인을 계산된 시선하에 두어 내면에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들고, 개인의 기록을 수집하여 인식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고 행동을 규정한다.

 

3. 성(性)

성에 대한 담론은 신체의 규율, 인구조절,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노동력제공의 목적을 위한 '바람직한 성'을 구성함으로서 조절된다.

 

4. 계몽주의 비판

근대의 계몽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만들어 자유와 진보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지만 푸코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만들어 '이성적인' 권력장치에 의해 규제되게 만든다며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90쪽 가량의 소책자라 다루는 내용이 한정되어 있지만 정리가 잘되어 있고 설명이 잘되어 있어 읽어보기 쉽다. 푸코에 대한 사상의 입문서로서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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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덕부! - Seed Novel
오버정우기 지음, Anmi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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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지라는 우등생 미소녀에게 미연시(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를 하는 오덕이라는 걸 들켜 강제로 숨덕부의 활동을 하는 강인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이 나온지가 얼마 안되었으니 스토리를 다 말하는 것은 책이 안 팔릴지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 곤란하고 내용과 관련된 감상만 적는다.

 

 작가 자체의 역량보다는 단편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일 수도 있는데 이 책은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용은 크게 숨덕부 결성과정과 은예린과의 오덕끝말잇기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실 특별히 뭘한다는 내용은 없다. 부실로 양호실을 구하자마자 은예린과의 오덕 대결로 급속도로 내용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단편인데 많은 내용을 구겨넣는것도 무리고 작품자체가 오덕의 행동방식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 패러디(어떤 과학의 초전자포를 어떤 문과의 초전동포로 바꾼다는 식이라던가), 인터넷 유행어, 플래그와 같이 애니메이션·라노베와 같은 서브컬쳐에서 볼 수 있는 용어 등 중심내용보다는 문장 자체에서 오덕과 관련된 재미를 주는 요소가 많이 나온다.

 

 이 작품은 클리셰에 충실한 편이다. 쉽게 말하면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캐릭터의 말투와 행동은 전형적인 오덕 패턴을 따라가고 컴퓨터로 야옹이(-_-) 자료를 뒤진다던가, 뿜는다는 식의 행동, 여주인공이 츤데라는 점 등은 전형적인 덕후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클리셰를 따라가는 것도 작가자체가 창의성이 없다기 보다는 의도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소설이 처음에는 명랑했다가 나중에는 진지해진다는 점을 볼 때 '나는 친구가 적다'를 보는 것 같다. 진지해지는 이유는 후에 오덕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 때문이지만 다소 예측했지만 제목만 보더라도 오덕예찬에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이 작품은 오덕을 변호하지만 또 오덕의 안좋은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라노베나 게임만 하는 모습이라던지 말이다. NHK에 어서오세요와 같이 오덕을 향해 사회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덕후를 위한 작품이지만 정말 덕후라면 불편함을 다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단편이라는 한계 때문에 작가의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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