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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장한식 지음 / SISO / 2024년 2월
평점 :
운칠삼기 운이 7이요! 기가 3이라 흔히 말한다. 선천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사람은 살아오면서 적응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세대는 현재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악습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는다. 물자 빈곤의 시대를 극복해야 했던 과거의 세대는 상대적 가치에 관심을 둘 수 없었고, 생존하기 위한 맹목성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전승해야 할 정신은 사라지고, 물질의 풍요로움만 적재하는 현실이 되었다. 물질은 필요 이상의 탐욕을 부추기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질서를 허무는 무질서의 경향성이 지배적이다.
"운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역으로 생각하면, 운이 있었으니 세상을 탓할 일도 그만큼 없다.
세상사란게 희로애락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운명의 갈림길에 놓인다. 더욱이 불공정한 양극화의 사회에 놓여 있을수록, 좋은 운명을 가로막는 주체는 멀리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의 경우에도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업수완이 좋을수록 외향적인 목표지향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사회적 인정과 가정의 역할 분담이 극과 극인 경우가 많다. 60년대는 세계 최빈국에서 가발 섬유 수출로 조금씩 벗어나는 시대적 환경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아버지들은 새벽같이 일터에 나가, 밤늦게야 돌아왔을 것이다. 자원빈곤의 척박한 환경을 부단히 사업가 아버지들은 개척해나가며, 그렇게 성취한 것을 물질적으로 충족시키려 했을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발아
단단한 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바닥에 떨어지고, 그 안에서 마침 부화를 한다. 비록 아버지의 사업의 실패로 인해 롤러코스터의 정점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전화위복 같은 것이었다 생각한다. 어느덧 60 중후반 ~ 70대쯤 된 듯한 저자가 한창 젊을때는, 섬유산업이 각광받았다. 당시 대규모 섬유공장이 있는 공업도시는 노동자로 가득했다. 척박한 비즈니스 환경을 개척하던 그의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어릴때부터 봐왔을 것이고, 특유의 성실함을 발판으로 의상에 눈뜬다. 옷이 귀하던 시절... 의상을 만든다는 것은 존버 해야 할 기술자의 인내가 아니었을까?
성공했으니, 운을 말할 수 있다.
솔직히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 그 결과물에 대해서 '운'이 있어서라고 겸손 부릴 여유가 있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매일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현실에 부딪쳐야 하는 사람은 '운'을 말할 그 어떤 여력이 허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적어도 태어나서 몇 년간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아이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경험을 보고 느끼며 생각의 그릇을 키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물질은 유에서 무가 되고 나니, 정신적으로 '모' 아니면 '도'의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무려 2년간을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으니,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그동안 응축되었던 배움에 대한 욕구는 폭발적이었을 것이다. 한계효용 극대화의 순간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문화는 권위주의를 강조하며, 언행불일치의 굴레로 얽히고 섥혀갔다. 그러다보니, 일찌감치 이 속박에서 과감하게 벗어날수록 자기 본위에 충실한 삶을 이어간다. 저자의 경우 규범과 질서를 매우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자원 부족의 시대를 거쳐온 세대들의 특징이다. 물자 절약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업사이클링 등등 자원재생에 관한 것엔 무관심하다. 과시욕을 동반한 허세도 기본이다. 심지어 자식이 굶고 있는 사정은 전혀 모르는 가장들이 많고, 세상 물정에도 어둑하다.
책은 특별하지는 않다. 자화자찬의 자서전의 전개도 상투적이다. 하지만 정독의 스타일에서도 페이지는 잘 넘겨진다. 보통의 시니어 세대 에게서 느낄 수 없는 "자기계발의 미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배움을 통해, 물질적으로 성취한 여유에서 자만하지 않고, 진화해나가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평생 배워나가야 한다. 한 순간의 고득점 입학점수에 자만하는 순간, 독단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좋은 사람은 배울 것이 많아, 나 스스로에게 변화의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물론 개략적인 나열에 그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오랜 세월 쌓은 경험을 어찌 지금 당장 전개되는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리며 표현할 수 있으리요.
천천히 해도 괜찮은것이 많음에도, 학습력이 정체된 시기에 접어들면, 남에게 배우는 자체에 심각한 싫증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뻣뻣하게 굳고 휘어진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의 터치화면이 꾹꾹 화면으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선생님' 호칭이 자연스러운 나이에 뇌 나이 만큼은 웬만한 사람보다 젊을 저자의 절제력있는 노력은 배울 점이 무궁하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따님에게 보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모습 이었으면 한다. 남아선호의 관념이 느껴진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려 하지 않으면, 그 편애가 점점 쌓여간 체 서로의 기대역할이 혼동에 빠지게 된다. 누가 부담하면 어떠한가?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게 즐거우면 되는 일이고, 서운함은 그 짧은 위트로 넘어가면 될 일이다. 무릇 상대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다.
경제적 성취가 큰 가장일수록, 정서적 보상을 정작 '경제적 선민주의'에 빗대어 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가족간은 소소한 배려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가족은 경쟁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녀들의 유년시절 미처 하지 못했던 정서적 교감을 손자, 손녀에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비교하려 하는 순간, 사람은 치명적으로 그 사람이 가진 장점 보다는 단점을 부각하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굳이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을 비교하며, 함께 살아가는 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처사가 될 수 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어느 순간엔 불화의 씨앗이 되곤 한다. 주로 자녀들이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순간, 자녀는 부모로부터 분화되었음에도 부모가 속박하려 하는 순간 그렇게 된다. 주변에 비교할 대상이 많아질수록, 아무리 삶에 여유가 있다 한들 정서적 결핍에 허덕인다.
마음에 먹은건 초지일관 이뤄내는 강인한 집념... 부지런한 근성이라면,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 밖에 없다. 기세가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피치 강습 격인 웅변학원을 다녀, 평생의 스킬을 연마한 것도 탁월하다. 불통에 가까울 정도의 그 시절에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감정적인 버럭이 앞선다. 그러다보니, 좀처럼 배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자원이 부족한 시절일수록, 손수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을 것이니... 새로운것을 배우는데 인색할 수록 경제적 위치도 고착화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존의 시니어와 차이가 있다면, 끊임없는 자기계발 노력과 함께 할 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또한 가족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다. 많은 시니어들의 경우 고질적인 문제점이 가족이 생존에 직면한 순간에도 허례의식을 강화한 체, 오지랖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열심히 살아오신 저자가,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하고도 특별한 추억쌓기를 이어가며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 서평은 siso 출판사로부터 무상제공받아, 네이버카페 문화충전 200 진행으로 읽고 쓴 솔직한 서평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