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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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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에 읽었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평범한 주부인 프란체스카와의 나흘간의 짧지만 벅찬 사랑 이야기. 

그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었다. 책을 덮고도 며칠을 울었었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들의 사랑이 너무 안타까워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참 많은 것을 잊고 살아야하는 것 같다.  

권리와 주장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더 발돋음을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기 때문에. 

그때 그 비 내리는 교차로에서 자동차 문의 손잡이를 꽉 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프란체스카의 선택이 아직도 아프게 가슴을 적신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오버랩되는 프란체스카를 느낄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와 올리브를 비교하자면 이미지가 전혀 정반대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프란체스카는 조용하고 단아한 그리고 순종적인 전형적인 여성이라면 올리브는 다소 거칠고 자기 주장이 강한 순종과는 거리가 먼 여장부 같은 여성이다. 

이렇게 다른 두 여인이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결혼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 하고 자식을 사랑하며 가족이란 유대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일 것 같다. 

어쩌면 올리브는 짐 오케이시가 자동차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올리브는 아마도 가족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행운이야. 제인은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그의 다리에 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군가를 수 십년 동안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부부가 함께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과 수 십년을 함께 생각하고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느 순간 부터는 우리가 산소로 숨을 쉰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 같다.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간과하기 쉽고 무시하기 쉬운 오류를 범하는 관계이지만  정말 절대절명의 순간이 왔을때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또한 부부가 아닐까 한다. 

설사 나이가 지긋이 든 어느 날, 그가 나를 떠나고 싶다해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는. 

올리브와 헨리가 은행 강도 사건에서 서로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도 뇌졸증으로 쓰러진 헨리를 위해 올리브가 수 년간을 요양원으로 매일 출근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왠만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올리브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헨리는 올리브에게 산소와 같은 의미였기에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니까.

...어떤 것들이 어떻게든 옳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가정이라니. 멍청하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올리브는 생각한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반기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이든 어떤 감정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히 옳은 것도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파도를 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하고 준비해야만 가능한 삶들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 늘 일정하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하지는 않다는 말, 너무 공감이 간다. 

내가 남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심호흡을 길게 하기때문에. 

아마 우리 모두는 그러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희망이었다. 저 아래 배들이 반짝이는 물을 가르듯이, 삶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면의 일렁임이었다. 올리브는 아들의 인생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가족이 중요한 것은 가정이 필요한 것은 그 속에 나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 구성원이 동의를 하든 안하든 어쨌든 일정 부분 내가 차지하고 내가 해내야 하는 끈적거리는 소속감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한 답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몇 년의 소원함을 뚫고 아들 크리스토퍼의 수줍은 고백을 접한, 서서히 말라죽어 가고 있던 올리브가 희망을 노래하게 만든 것 또한 가족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걸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걸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 손을 내밀었을때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 올 수 있는 사람들, 가족이 있다는건 굉장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올리브 카터리지를 둘러싼 작은 마을, 사람들의 생을 통해 우리에게 과연 가족은 무엇이고 부부란 무엇이고 그속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의 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관계'와 '소통'에 대해 참 많은걸 생각하게 했다. 

한밤중, 식구들이 깰까봐 까치발을 들고 다니는 배려를 이제는 밝은 낮으로 이끌어 내야하지 않을까 한다. 

자느라고 내가 그렇게 사랑함을 모르기 보다는 서로 눈 맞추고 안아줄 수 있을때  좀 더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많이 해야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올리브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가 죽은 후에야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올리브는 - 헨리에게 성실했고 아들을 정말 사랑한 - 삶이 아직 남아 있을때 충분히 사랑하길 바란다.  

다르지만 같은 느낌의 두여인에게 이런 차이점이 생겼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녀의 인생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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