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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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의 나치 암살작전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책 HHhH를 읽었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저자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취재를 바탕으로 상당히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게 묘사하는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전작도 물론 놀라웠지만 이번에 나온 책 언어의 7번째 기능 역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이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견제와 질투를 섞어놓은데다 살인사건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을 탄탄하게 조여주고 있다.
당대 지식인의 대표이자 평론가이며 사회학, 언어학을 이용한 대담한 이론을 전개했던 걸로 유명한 인물인 롤랑 바르트가 다음 대선주자인 미테랑과의 점심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얼핏 보면 우연한 사고로 보이지만 그의 사고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로 인해 그의 사고를 조사하게 된 바야르 형사는 바르트 주변을 탐문하지만 그의 주변은 온통 언어학과 기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 평범한 경찰인 바야르에게는 도대체 그들이 하는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의 상대를 향한 질투와 질시 어린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런 그에게 젊은 교수이자 역시 기호학을 공부하는 시몽이 도움을 주게 되고 이때부터 둘은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여기저기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게 된다.
웬만한 지식인들에게도 기호학이 도대체 뭘 연구하는 학문인가라고 물으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호학이란 학문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은 바르트 주변을 탐문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토론 클럽 로고스 클럽에 대해 알게 되고 알려진 언어학의 여섯 번째 기능 외에 또 하나의 기능 즉, 7번째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을 이용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신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바르트가 바로 그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대해 알게 되고 그 텍스트가 그의 사고와 동시에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바야르와 시몽
단순한 사건으로 보였던 바르트의 사건 이면에 엄청난 힘을 가진 누군가가 7번째 기능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두 사람
과연 그들이 찾고자 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뭘 말하는 건지 그리고 과연 누가 그 걸 손에 넣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불사하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두 사람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당대의 학자와 이론가들에 섞여 일반인들 중에서도 토론과 자신의 논리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대결을 하는 로고스 클럽에서 벌어지는 설전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논리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방대한 지식과 폭넓은 사고로 상대방을 논리로 무릎 끓이고 경청하는 사람 역시 그들이 펼치는 주장을 듣고 승패를 결정하며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을 걸면서 승부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 경기장이나 다름없이 열기에 차있었다.
화려한 말들의 향연이고 엄청난 지식의 대결이어서 그 싸움이나 진배없는 토론을 지켜보는 게 바르트를 죽이고 텍스트를 손에 넣은 범을 찾는 재미와 별도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밋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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