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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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으로 접어들고 애인과의 일상은 권태로운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두 남자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린 프랑수아즈 사강의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14살 연하남 시몽에게 이별을 고하는 폴이 슬픔에 뛰쳐나가는 시몽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 말에 나 또한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니 슬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인생 60부터!' 라고 말하지만 40만 넘어도 내 몸이 느끼는 노화의 징후들은 현재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강은 노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욕망을 실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 더 이상의 만남이 불가능해지는 때, 머릿속에서 분방한 생각들이 오가는 가운데 아침 추위로 이가 딱딱 부딪치는 때...지금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은 읽고 싶은 책들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뿐."

아직 노년이라고 하기엔 젊은 나이지만 이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가는 건 설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적어도 14살 연하의 잘생긴 시몽을 받아들일 수 없는 폴의 심정이 난 너무나 이해가 갔고 나 역시도 그 뜨거운 사랑에 몇 번 취할 수는 있겠지만 내 삶의 일부로 삼기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덧없음과 늙어가는 것에 저항할 수 없음을 알기에 분명 괴로운 갈등을 했을 것 같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사강은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 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제와 폴이 처음에 만났을 때는 열정적인 사랑에 서로를 끊임없이 원했지만 그 열정이 식어버리자 로제는 자유분방한 자신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게 되고 폴은 그런 상황에 점점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런 폴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지만 14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사랑의 유한함은 언제가 시몽도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며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듦에 따라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모든것에서 안정을 추구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를 두려워 하게 된다. 폴도 마찬가지다.

 

p.141

"하지만 스무 살 때에는 지금과는 생각이 달랐어. 뚜렷하게 기억나.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지."

그랬다. 그녀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욕망에 쫓겨 거리를, 해변을 쏘다녔다. 그녀는 하나의 얼굴, 하나의 생각을 찾아 헤맸다. 요컨대 하나의 대상을 찾아서. 3대에 걸쳐 여자들의 머리 위에 감돌았던, 행복해져야 한다는 의지가 그녀의 머리 위를 감돌고 있었다. 당시에도 장애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이제 그녀는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한없이 사랑이 넘치는 시몽을 두고 무심하고 거기다 바람까지 피는 로제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던 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젊은 시절 추구했던 행복보다는 그동안 자신이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그 삶이 더 소중하고 그런 삶과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 싶던 것이 아닐까...

어차피 사랑의 속성이란 유한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p.139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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