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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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1월 15일 미국 중부 캔자스 주 홀컴(Holcomb)에서 일어났던 실제 살인 사건을 다룬 '논픽션 소설'이다.

 

미국 반스앤노블 서점에 처음 갔을 때 인상깊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true crime' 을 다룬 논픽션 소설 분야였다. 전면 책장을 가득 채운 실제 범죄 소설들을 보며 픽션 못지않은 그 방대함에 섬뜩한 기운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오직 픽션으로만 만나고 싶었기에 그 이후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트루먼 카포티의 훌륭한 소설인 이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잊을 만 하면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의 글을 읽게 되어 '아, 이 책 읽어야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일가족 살해라는 실제 사건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이 끔찍해서 좀처럼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내가 이 책은 사야지 읽겠구나...'싶어서 구입한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실제 살인사건을 6년 동안 조사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마을,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한 모범적인 가족, 그들을 둘러싼 이웃들의 생생한 묘사가 마치 내가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존재가 파멸의 길로 들어서서 살인까지 하게 되는 그 과정의 심리와 행동을 두 명의 인물, 딕과 페리(살인자들)를 통해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때로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잔인하고 어린애들 장난같기도 해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또한 운명의 잔인한 장난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평화로운 캔자스 주의 홀컴 마을에 사는 존경받는 부유한 농장주인 클러터 가족(희생자들)과 그 마을에서 640km 동쪽으로 떨어져 범죄를 준비하는 미래의 두 살인자들의 상황을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읽는 사람은 이 두명의 예비 살인자들이 하루만 지나면 홀컴의 훌륭한 한 가정을 몰살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보기 때문에 이들의 거리가 좁혀질 수록 그 안타까움과 비극을 느끼며 읽을 수 밖에 없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희생자와 살인자들의 묘사가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이런 구성은 작품의 강렬함을 이끌어내는 카포티의 치밀한 계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점은 '어떻게 이런 살인자들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였다. 보통 우리는 살인자들을 생각할 때 그들은 필시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커녕 공교육도 제대로 못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 두 명의 살인자 중 페리 스미스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페리는 지적 허영심도 많고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다. 그러나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이혼으로 인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소년원에서 원장에게 구타당한 기억, 나중에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일만 시키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 이런 것들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때로는 이런 엄청난 살인을 일으킬 인물로 보이지도 않지만 결국에 4명을 다 죽인 건 자신이라고 자백한다. 딕보다는 그래도 좀 더 믿음이 갔던 페리가 살인현장에서 4명을 다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일시적 광기'였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책에서는 페리가 원래는 죽일 의도는 없었는데 순간의 수치침, 모욕감을 느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칼로 클러터씨의 목을 그었다고 페리의 자백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페리의 진술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처받은 외롭고 연약한 영혼이 얼마나 쉽게 잔인해 질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p.373

"난 그 빌어먹을 1달러, 1달러 동전을 생각했어요. 부끄럽고, 구역질 나고. 그리고 경찰들은 나한테 다시 캔자스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누가 익사하는 것 같은 소리, 물 밑에서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소리."

 

 

반면에 일그러진 외모와 비열한 눈빛 등으로 묘사되는 딕 히콕이야 말로 인간 쓰레기 중 쓰레기로 보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의외이다. 중산층은 아닌 잘해야 중하위층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다정한 사람들이었고 딕은 고등학교 졸업, 대학에도 합격하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게된다. 페리의 경우라면 살인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딕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원인을 굳이 찾는다면 가난밖엔 없다. 가난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보편적으로 그렇진 않을 것이다. 딕 히콕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그런 살인자의 피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카포티는 딕에게는 소위 흔히 보는 더러운 범죄자의 이미지를 덧씌우지만 페리에게는 감정적으로 접근한다.

 

p.515

듀이는 언제나 히콕을 경멸했다. 단지 "텅 비어 있고 가치 없는 내면을 드러낸, 풋내기 사기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살인자가 스미스라고 해도, 듀이는 그에게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는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가지고 있어 형사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사관 듀이를 통해 두 살인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딕은 태생적으로 쓰레기같은 인간이기에 살인을 저질렀지만 페리에게는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게 만든다. 책 마지막, 옮긴이의 글에서 보면 카포티 자신이 페리 스미스와 유년 시절, 성격 등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수사관 중 한 명은 그 둘 사이에 애정이 있었기에 작품의 공정성을 잃었다라고 비난 했다고 한다.

나중에 딕과 페리가 체포 되어 법정에 섰을 때 정신과 의사는 살인을 저지를 당시 페리가 '일시적 광기'에 의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법정에서 이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듯이 묘사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진실성에 여러 의문이 제기 되었지만, 이 문제는 이 작품을 단순 다큐멘터리 기록으로 보느냐 사실에 기반한 문학작품으로 보느냐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작품이 문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카포티가 페리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 썼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돈 40달러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넷이나 앗아간 막말로 싸이코 살인마이지만 이런 인간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 그 비천한 삶과 타고난 천성이 카포티 자신과 같이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라고 감정이입되어 이런 작품을 썼다면 그런 작가의 의도를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지역사회에서 선량하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한 가족을 소위 인간 말종같은 자들이 별 이유도 없이 잔인하게 살해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신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한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 같은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중한 목숨을 넷이나 앗아갔으니 너희도 죽어야지! 이 말이 내 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정신 이상으로 판정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해도 살인자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죽음으로서 조금이나마 그 값을 치루는게 나은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한 가족이 살해 당하기까지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감은 있었으나 생각보다 그렇게 잔인한 묘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표현이 없어서 혹시 읽고 싶지만 무서워서 못 읽었던 분들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겪고 예민한 성격에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동성애자 였으며,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던 트루먼 카포티. 그의 댄디한 옷차림과 큰 눈망울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더 슬퍼보이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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