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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최초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을 확립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을 가진 미국은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개척자’이자 ‘모범’으로 평가되어왔다. 많은 나라의 헌법 설계자들은 미국의 정치 형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해나갔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 현실은 어떤가? 트럼프 2기 시대에 접어든 미국은 언론과 대학, 이민자에 대한 강도 높은 억압정책을 시행하고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배려를 없애는 등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이자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저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를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했으며 다른 어떤 민주주의 국가보다 소수의 지배에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고 경고한다.
저자들은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2018)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인 신호들을 다루며 합법적으로 훼손되는 미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했고, 책은 화제를 일으키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를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라면, 이 책은 2021년 선거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사건을 계기로 집필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저자들은 다시, 다양한 지역의 선거제도와 사례들을 살펴보며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모순과 붕괴의 조짐을 파헤친다.
‘부유한 민주주의와 오래된 민주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사회과학적 이론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라면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해야 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전략을 거부해야’(p.63)하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p.64)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암살자들의 공범’이라 일갈한다. 미국의 현실이지만 지금 여기 한국에도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사태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공범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권력과 이익, 자리보전을 위해 폭력에 침묵하는 정치인들은 전제주의의 암묵적 동조자다. 선거에 불복하며 자신과 같은 이념을 가진 자들의 폭력에 눈감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하는 그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고 책은 짚는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주의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p.203)하며, 특히 시민의 자유,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는 다수결 제도로부터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공저자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보다 상위의 개념이지만, 다수의 지배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p.210)라는 것이 공저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선거와 의회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주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들은 미국 의 역사와 정치, 선거의 결과 분석을 통해 어떻게 소수의 독재가 가능해지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지를 말한다. 권력을 쥔 정당에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게리맨더링’과 선거인단제도의 불합리함, 대법원 판사의 종신제, 극단적으로 어려운 헌법 수정 과정 등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저자들은 설파한다.
“투표를 더 쉽게 만들고, 게리맨더링을 없애고, 선거인단 제도를 직접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하고,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고, 상원을 보다 비례적으로 만들고, 대법원 종신제를 폐지하고, 헌법 수정을 좀 더 쉽게 만드는 개혁, 이 모든 변화를 통해 미국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따라잡게 될 것이다.”(p.341)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결론은 분명하고 전복적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러한 해법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당면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침묵’이며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의 구축을 위해서는 계속된 논의와 아이디어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미국의 선거인단제도와 인종차별에 의한 민주주의의 유지 등 우리에겐 낯선 미국의 정치 상황이 독해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방대한 데이터와 명쾌한 서술은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강력한 정치사회 저서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된다. 민주주의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성 등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독서경험이 될 것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선거는 어떻게 대중을 유혹하는가>(김지윤, 책과이음)도 함께 읽는다면 미국의 정치제도와 민주주의의 현재를 파악하고 타산지석으로 삼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