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걸 놀 청소년문학 28
엘리스 브로치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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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한 나비 모양의 핀을 꽂았나,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나, 퉁퉁한 이 소녀는 누군고? <오, 마이 걸>을 읽는 내내 영화 <천 일의 스캔들>,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앤 불린 역의 나탈리 포트만(네가 <레옹>의 그 소녀? 언제 그렇게 컸니?). 욕망에 주체할 수 없었고 사랑에 목말랐던 한 여인의 절규가 아닌, 지극히 평온한 유언. 가느다란 목을 참수대에 놓으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차마 죽음의 공포까지 감출 순 없어 하얀 목 위로 힘차게 돋는 핏줄. 앤 불린의 유언을 활자로 다시 읽었을 때 머릿속에선 영상의 폭풍이 일었다.

  잠깐 스크린에 비치지만 위풍당당함이 돋보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어느 영화제에선가 조연상을 수상했음)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잔상도 따라왔다. 이 책 역시 픽션이듯 영화 또한 픽션이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무시하지 않았기에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 주었다.

  책장을 덮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 브로치 작가가 500여 전의 인물을 현재에 재배치한 건 아닐까. 시대를 연결해 줄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좇는 사람들은 그들이 실마리를 풀어가는 인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로스 부인은 앤 불린. 한때 그녀의 남편이 목걸이와 함께 목걸이를 장식할 다이아몬드의 단서를 남긴다. 앤 불린의 물건이었으니까. 로스 부인이 앤 불린처럼 비운의 운명은 아니었으나 남편과 부부의 연을 끊고 입양하였지만 사랑으로 키어온 딸과의 헤어짐을 감수해야함이 앤 불린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안나는 엘리자베스? 끼워맞추기에 불과하지만 어느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하지 않는 자신의 야망을 쫓는 사람. 후에 그 야망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니까. 불우하고 불안한, 입양을 통해 안정을 찾았던 어린 시절도 한 몫 한다. 자신의 아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다.

  엥? 그러면 데니가 에드워드 드 비어? 눈부신 외모와 유들유들한 웃음, 이마에 찰랑이는 금발의 소년이라면 당대 유명시인 비어의 어린 시절과 어울리겠군. 정말 에드워드 드 비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완성한 사람이라면? 셰익스피어는 누굴까?

  이 책의 주인공 헤로? 데니의 대역이 되어 데니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사람? 헤로에게 접근하면서 한층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게다가 로스 아줌마가 할머니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셰익스피어의 진위 여부보다 더 값진 비밀을 밝혀냈군 그래.

  영국 왕실과 셰익스피어의 비밀은 영문학자에게, 어렵다면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 될 뿐. 자료를 통한 가정을 제시해 준 것만으로도 역자의 이름처럼 선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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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1 - 인류의 기원에서 고대 제국까지 생각이 자라는 나무 13
W. 버나드 칼슨 지음, 남경태 옮김, 최준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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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여성과 남성, 이렇게 쉽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을 하나 더 보탠다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까닭을 묻는다면? 태반이 수많은 사건과 연대, 인물, 지명, 의의 등 암기 공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공부 잘 하기 위해 어쩔 도리 없이 외웠다 치자. 외워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왜?’라는 질문에 당황하는, 그저 시험 대비용으로밖에 쓰이지 못하는 지식을 얻을 뿐이다. 오래전 청소년 대다수가 그래왔고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육의 현실이 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시험 제도는 이를 확고히 하였다. 역사를 유연한 사고로 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책이 있다면, ‘세계사=암기과목’등식을 깨부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아이들에겐 오아시스 같지 않을까.

   세계사=암기과목 NO!라고 외친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싶어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는데 뭐랄까, 모험을 떠난 기분이었다. 신나는 모험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마도 없겠지? 천천히 읽을 도리밖에.

  역사책인데 추리소설 같다. 어찌어찌하다 지구라는 곳에 인류가 정착하게 되는데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모색하고 그 행동의 흔적이 역사가 되었다. 흔적(단서)을 통해 추리하는 형식의 가설, 어쩌면 우리가 여태 배운 역사는 가설을 가교로 이은 것뿐인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도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에 담겨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를 두고 많은 고고학자들은 ‘최초의 종교적 표현’이란 견해,  ‘정보 수단으로써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견해, ‘천체 현상’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 단지‘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 등 분분하다. 오랜 시간 후 더 다양한 해석이 추가될 수도 아니면 기존의 모든 해석을 뒤엎을 새로운 가설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단순히 주술로 사냥할 짐승을 더 많이 표현하여 실제 사냥감이 많아지길 바라는 고대인의 바람만을 말하지 않아(이렇게만 풀이하는 책이 많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이다.

  잠자고 있는 또 다른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 인더스 문명을 발견한 지가 고작 100여 년 전인데, 100년 후에는 세계 7대 문명이라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이긴 자들의 기록’이라면 이 책은 ‘생활 중심의 기록’이다. 세계 주요 나라의 흥망이 중심이 아니라 현존하는 인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간의 가치관과 소소한 생활상, 도구와 건축을 통해 짐작해보는 기술의 진보, 각 지역의 문화 형성과 교류 등을 엿볼 수 있다.

  풍부한 사진․그림 자료에 눈을 빼앗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용어를 외우려고 용쓰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를 과거로 떠나는 여행쯤으로 여겼기 때문이겠지.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건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이다.  

  사진 한 장 던져 주고, 이 유물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500자 내외로 기술하시오. 이런 식의 문제로 시험지가 도배된다면? 유물의 이름이 아니라 언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용도를 궁리하며 생활상까지 가설을 세우는 문제. 쓰기만 한다면 빵점은 없겠지? 과학적인 조사를 끝낸 유물을 식량 저장고라고 명명했으나 사실은 고대인의 요강일 수 있는 확률도 존재하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 유적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언젠가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나라가 존재했었음을, 그 나라의 유물이었음 인정할 날이 올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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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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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이나 비속어를 문학적 표현 외에 활자로 찍히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싫어한다’가 아니라 ‘싫어했다’는 지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한다. 소설․시 따위에서만 막말이 양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님을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에서 배웠다.




  친밀도의 척도 중 하나는 어휘 선택에 있다. 면전에 ‘시발~’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 분명 나와 가깝다. 강직된 경어체 빈도가 높을수록 꺼리는 사람일 확률 높다. 무엇을 말하고 싶냐고?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막말에 있다는 것이다.




  ‘다 큰 새끼가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어리광인가. 계속 징징거리면 죽통을 날려버려라(P.100)’식의 직언은 친구나 친근한 선배의 조언처럼 들린다. 하긴 실제로 동생 뒷바라지에 골치가 아프다는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다면 이렇게 속 시원한 답변을 해줬겠지. 그래서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애써 꾸미려 하지 않는, 마치 질문자가 지 동생이나 되는 듯 편한 말, 하여 독자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삼겹살을 구워주는 기분, 나쁘지 않다.




  <건투를 빈다>는 삶에 관한 예제로 가득 차 있다. 자신, 가족, 친구, 연인, 사회생활 등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의 근심거리를 펀치 한 방으로 날린다. 졸라 아파! 그러나 졸라 시원해!




  홀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런 고민이 있을 리 없겠지. 허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 죽고 싶을 만큼 외로울 테니까. 다른 선택이 없는 관계라면 기쁘게 받아들여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방치하면 안 된다. 가족이 대표적이겠지. 가족만큼 사랑을 주는 존재도 없겠지만 가족만큼 상처를 주는 존재도 없을 터. ‘존재를 질식케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P.100).’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료 등의 타자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기엔 인생이 짧다. 게다가 짧은 인생마저 불행해진다.




  삶의 불확실성. 어쩔 수 없잖아. 한 번뿐인 모험이라고 여기며 살면 된다.




  ‘나이 들어 가장 비참할 땐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단 걸 깨달았을 때다.(P.213)’삶은 선택의 연속 아닌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 선택의 누적분이 곧 당신이다.(P.53)’ ‘뭘 그렇게 대단한 걸 손에 쥐고 있다고 벌써 놓길 두려워 하나. 손에 든 것 놔야 다른 걸 집을 수 있지.(P.207)’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산을 만족스럽게 긍정(P.267)’하는 절대적 자신감을 갖고 살 일이다. 그리고 잊지 마라.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는 거.(서문)’




  왜?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서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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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석의 아이디어
최범석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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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덮으며 무심코 튀어나온 말.

  ‘최범석이란 놈, 부럽다!’

  유명인사가 된 사회적 위치도 그렇지만 그보단 그의 다양한 시각과 끝없는 도전이 마냥 샘났다.




  옷 잘 입는 사람이 부럽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와 맞닥뜨리지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활용을 이끌어내는 사람을 만나면 꼭 칭찬의 한마디와 함께 경탄의 눈빛을 건넨다. 단순히 유행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패션을 창조하는 그들의 아이템이 새롭고, 잘 입기 위해 부지런떠는 모양새가 예뻐 보인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나도 ‘상상속의 청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등교하기 전 나의 상상속의 청중을 위해 이 옷 저 옷 입기를 반복하며 머리를 굴리다 끝내는 투덜거렸다.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것은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최범석 또한 보통 청소년들의 고민거리에서부터 그의 꿈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단지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자기 욕구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최범석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오로지 빈티지를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미치면 그렇다. 아무리 필요한 것이 있어도, 심지어 굶더라도, 어떻게든 내가 사려고 했던 것, 가지고 싶은 것들을 구했다.(P.22)"




  그에게 학력은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당장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의 삶은 천국이 될 수 있었다. ‘일이 의무일 때는 삶이 지옥이’라고 말한 고리키가 지하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만족하는 사람들의 증가함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디자이너로서의 자신감을 키워나갔고, 마침내는 세계로 무대를 넓힐 수 있었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에서, 갤러리에서, 빈티지에서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영감을 얻기 위해 머리의 한편을 열어둔다. 상품의 바코드가 리더기에 찍히는 순간처럼‘삑’하고 머릿속에 입력될 때 그는 삶의 활기를 얻고 머잖아 행동으로 옮긴다는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최범석은 자신에게 찾아온 첫 번째 기회를 ‘옷을 좋아한 것’이라고 말한다. 좋아해서 옷을 만들게 되었고 만들다 보니 즐기게 되었다.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하고 있다. 굳이 <논어>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의 체험만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의 책을 보면 모든 사물이 디자인으로 다가온다. 가구의 형색은 디자인이지만 같은 가구로 수없이 재배치할 수 있음도 디자인이다. 식물이 자라는 것도 자연의 거대한 디자인이다. 내가 찡그린 표정을 짓는 것도, 맑은 미소를 내비치는 것도 나의 디자인이다. 갑작스레 내 삶의 디자인이 어떻게 보이지 궁금해진다.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패션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가령, 조수미나 정명훈의 이름만으로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예매하고 음반을 구입한다. 공지영의 새작품이 출간될 때나 서태지 같은 경우도 그렇다.

  ‘최범석’브랜드가 급속도로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다. 삶의 디자인이 필요하다면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다시 디자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은 덤이다.




  “영감을 얻는 원천은 다양하다. 멋진 풍경, 아름다운 사물,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사건이나 전쟁 등 이 모든 것이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영감은 끊임없이 나를 자극할 것이다.”

- 뷔욕(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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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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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를 잡는 완벽한 방법>이 출간되었을 텐데, 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안 되지? 이렇게 한참을 재검색했다. 이런! 졸지에 개를 죽일 뻔했네. ‘잡다’는 식용으로 만든다는 뜻이 아닌가. 이처럼 나는 제목을 외우기 편하게 저장하곤 한다. 그래서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Liber tango)는 리버 탱고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가슴에 따뜻한 울림을 선사하는 책을 지인에게 전하고 싶어 카트에 담으니 다시금 조지나가 떠오른다. 뒤미처 영화 <오싱>의 소녀도 떠오른다.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바로 <오싱>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단체관람으로 극장이란 곳을 처음 방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형편없는 변두리 극장이었는데 당시의 여덟 살 소년은 텔레비전을 백 개쯤 붙여놓은 것 같은 스크린에 압도당했다.

  나는 첫 영화를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실컷 울고 싶었으나 내 옆의 친구들이 놀릴까 두려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가 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를 동전 한 닢이 결국엔 아기 돌보는 조건으로 더부살이로 들어간 집에서 누명으로 바뀌는 장면에 이르자 손은 입을 견뎌주지 못했다. 발가벗겨진 내 또래의 소녀를 보며 극장에서 나 홀로 벗은 몸이 된 것 같아 더욱 울었던 것 같다.

  반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사춘기에 돌입한 소녀 조지나를 보면서는 웃음으로 일관했다. 아버지의 가출과 경제적 궁핍은 이윽고 ‘집 없는 아이’를 만들었고, 가족 붕괴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한층 예민해진 조지나는 날카로움으로 엄마를 대하고, 엄마는 이런 딸이 아니어도 생계를 위한 잡일로 버겁다. 다행히 철없는 동생 토비는 둘 사이의 거리를 넓히지 않게 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친구가 알아버렸을 때의 조지나 울음은 이 책을 슬픔 모드로 읽어야 하나, 잠깐 고민하게 만들었으나 이내 절망을 건널 수 있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활기란 개를 훔치는 것! 주인이 끔찍이 아끼는 개 한 마리만 제대로 훔친다면 그렇게 바라고 바라는 집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

  주도면밀하게 개를 훔치는 방법을 연구한 조지나는 연구 성과를 올렸다. 윌리라는 귀여운 강아지를 훔쳤다. 게다가 개 주인 카밀라 아줌마는 개 없인 못 사는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돈이 많지 않다는 걸 빼면 완벽한 성공이었다.

  우리의 조지나, 이만한 일로 실망하지 않는다. 윌리를 위해 어떻게 하든 아줌마는 돈을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 희망이 남아 있지 않은가. 허나 이 가느다란 희망 한줄기를 무키 아저씨는 짓밟는다. 말이 아닌 배려의 행동으로.

  무키 아저씨의 등장으로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게 된 조지나는 숨길 수도 있었을 일을 카밀라 아줌마에게 고백한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으나 대신 조지나는 보다 힘찬 발걸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소녀는 또래보다 한 발자국 먼저 성장할 수 있었다.

  혹, 정부가 전국 중․고등학교 각 학급문고에 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면 <개를 잡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목록에 넣기를 바란다. 감정의 기복이 불안정한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가치관을 심어주며,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늙어서 백 끼 먹는 것보다 젊어서 한 끼 식사가 건강에 보탬이 되듯, 청소년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이 여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 한 권을 식사하고픈 청소년의 식탁에 <개를 훔치는 방법>을 올려 주고 싶다. 그러면 그들의 부모도 읽게 될 테니까. 그러면 부모와 자식이 한 번 더 눈을 마주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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