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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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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TV <비정상회담>의 번외 편으로 보이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는 첫 방문지로 장위안의 고향인 중국 안산을 찾아갔다. 경유지인 리장에서 똘똘이 타일러와 사교왕 줄리안은 나시족의 동파문을 발견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즉석에서 간단한 ‘동파문’ 필담을 주고받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정도면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동파문은 현재도 쓰이고 있는 나시족 고유의 상형문자라는데, 한자와는 기원이 다른 것 같다.

 

그러나 한자도 처음에는 상형문자로 시작했다. 한문 시간에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한자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원리로,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였다.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가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한자는 점차 추상적인 방식으로 진화해 갔다. 만약 한자 역시 동파문자처럼 상형에만 머물렀다면, 한자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을까? 그 대신 공자도 맹자도 없었을지는 모르겠다.

 

대만 최고의 문화 비평가라는 탕누어가 쓴 『한자의 탄생』은 탄생, 즉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오른다. 맨 처음 만나는 것은 물론 동파문자와 비슷해 보이는 상형문자들이다.

 

침상 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양, 夢, 꿈 몽의 갑골문자다. 너무 귀엽고, 가만 들여다보면 夢과 닮아 있다. 탕누어는 이렇게 갑골문자에서 시작해 현재의 한자로 변화되어 온 과정을 추적한다. 물론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한자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례를 들어 변천의 일반적 과정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갑골문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듯 보이는 저자는 현대 중국의 문자 간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간화란 저자의 말을 빌면 이렇다.

 

  

 

「온갖 두려움에 휩싸여 촌음을 다투는 신경질적인 혁명 정당으로서 중국공산당은 문자사용에 있어서도 시간을 절약하고 빨리 손에 익히는 방법을 고안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전면적인 문자 간화를 실행했다. 그다지 쓰기 편치 않은 ‘진塵’자도 간화의 철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1,000여년이 넘도록 운 좋게 살아남은 이 사슴도 중국공산당에 의해 멸종되기에 이른 것이다. 대신 아주 간단한 회의자인 ‘진’(자판을 찾을 수 없어 그냥 한글로 ;;) 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아주 작은 먼지 알갱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p269」

 

갑골문으로 추정되는 첫 번째 ‘진’ 자는 사슴 세 마리가 뛰어 노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한문이라고 배운 ‘진(먼지)’이며 중국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어 온 ‘진’자다. 세 번째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간소화된 ‘진’ 자다. 사슴 세 마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 가는 아름다운 글자는 무미건조하게 되어 버렸다. 실용성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간화된 문자는 원형을 간직한 갑골문이나 초기 형상이 상당히 보존된 복잡한 한자에 비하면 의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기호화되었다. 그런데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자의 간화라는 것이 단지 ‘빠르게 쓰기’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일까? 루쉰의 《아Q정전》의 마지막에는 글자를 모르는 아Q가 사인 대신 붓으로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장면이 있다. 그 동그라미마저 삐뚤삐뚤해 아Q는 몹시 신경을 쓰지만, 정작 자신이 동그라미 한 그 문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한다. 중국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한자는 무척 어려운 글자다. 한자는 우리나라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판 외국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매우, 매우 어렵다. 나만 그런가? 세종대왕도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다고 했지만, 단지 말과 문자가 다를 뿐 아니라 한자는 글자 자체가 몹시 어렵다. 한글 창제 당시만 해도, 한글은 똑똑한 사람은 한나절이면 배우고, 바보라도 열흘이면 깨친다고 했다. 그렇게 배운 한글로 쓰지 못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한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열흘 만에 다 배울 수는 없다. 어쩌면 중국 공산당이 만든 간화도 원래 한자만큼 어려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탕누어는 간화에 대해서 획수를 줄여 빨리 쓰게 만든 글자라는 식으로 말한 걸까? 간화는 전혀 알지 못하므로 무어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획수가 줄어들면 당연히 배우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좋지 않을까?

 

탕누어가 간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공산당에 대한 반감인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표음문자 보다 표의문자를 우위에 놓는 듯한 인상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책의 번역어로는 ‘병음문자’ 라고 하는데, 소리를 모방하는 영어 같은 문자 체계는 상형의 한계에서 자신을 버리고 부호화에 투항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중국 문자는 변화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실상의 세계에 명맥을 유지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었 p39” 다. 그 결과 역사의 맥이 끊긴 후에 발견된 병음문자는 전혀 해석이 되지 않은 채 사장되었지만, 갑골문자는 문자 안에 의미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해석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지금의 문화가 완전히 파괴된 1000만년 쯤 후에 우연히 영어와 한자가 동시에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어는 의미 파악이 불가능해 버려지겠지만, 한자는 똑똑한 후대인들에 의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어,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언어는 후세에 대한 전달력이 아니라 당장의 효율성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탕누어는 ‘어린 백성’ 을 위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는 세종대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많은 민족들이 직관적인 상형을 버리고 병음을 채택한 것은 세종대왕과 같은 마음에서가 아닐까? 문자 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은 기본적인 세계관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지점이 있지만 , 그냥저냥 읽기에 나쁘지는 않은 책이다. 인문학적 비평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는 저자는 마르케스와 보르헤스를 비롯해 라이프니츠와 비트겐슈타인에 벤야민까지 다양한 지성을 끌어 모은다. 아주 깊이가 있거나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분부분 흥미로운 점이 없지 않다. 특히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이런 묘사는 재미있다.

 

「파리의 한가한 구경꾼들에게 백화점이나 쇼윈도 같은 구경을 위한 회랑 공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갑골문의 대로 양쪽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식과 기능, 의미가 각기 다른 건축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점유하는 땅이 비교적 크고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그 권력을 행사하는 궁궐도 있었고, 제사를 위한 묘당도 있었으며, 일반인들의 주택 사이로 높이 솟은 호화 주택도 있었다. p170~1」

 

궁궐 宮, 묘당 享, 호화주택을 의미했던 京 혹은 高는 어느 것일까? 갑골문의 거리를 천천히 걸며 노니는 것, 그것이 『한자의 탄생』이 주는 참 재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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