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명칭일까?

 

이스라엘이 쏜 백리탄에 뼈가 하얗게 탄 아이들의 사진이 SNS에서 공분을 일으킬 때, 독서회 회원들이 9월에 읽을 책으로 선택한 책이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이다. 만화책인데도 결코 읽기가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 그림체가 무섭고(어릴 때 일본 순정만화에 길들여진 터라, 강풀 등의 웹툰체에도 아직 거리감이 남았다), 여백을 가득 메운 깨알 같은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이 너무 없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조 사코는 일제강점기나 미군정기의 4.3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박해와 고문, 강제 소개령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워낙 기초지식이 없는 터라, 이 모든 것들이 왜 시작되었는지, 한줌도 안 되는 이스라엘을 빙 둘러싸고 있는 아랍 국가들은 왜 그렇게 무력한지,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인 이스라엘을 왜 국제사회는 묵인 혹은 비호하는지 궁금증만 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은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인지, 무심코 불러왔지만 정작 그 이름이 땅이름인지 국가이름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현대사』이다. 발제 때까지 팔레스타인의 비극의 원인을 모두 밝혀내리라, 야심차게 도서관 희망도서 목록에 올려놓았는데, 막상 책을 받고 보니 500쪽을 살짝 넘는 무서운 분량이다. 우리나라 현대사도 이렇게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한 양심의 스멀거림과 두께의 압박으로 한풀 꺾인 채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 책도 워낙 현대사이기 때문에, 읽다보니 또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먼저 ‘팔레스타인’은 도대체 뭐냐? 정확한 위치는 어디냐? 원래는 누구의 지배아래 있었느냐?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검색질과 세계사책에서 몇 가지 사전 지식을 찾아보았다. 이 분량이 만만치 않고, 지도들이 많아, 일단 1차 자료정리를 해두려고 한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국가명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받은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은, 2012년 11월 29일(현지날짜)의 사건이다. UN이 미국과 영국 등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non-member observer state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과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출처는 파악하지 모했는데, 지도의 회색국가들이 인정을 거부하는 나라들이라고 한다. 잘 보면 우리나라도 회색이다. UN 결의안 통과 때는 기권했다고 한다.

 

 

   

 

그럼 이전의 ‘팔레스타인’은 무엇이냐? 주변의 몇 개 지역이 통합된 명칭인 것 같은데, 여하튼 우리가 지금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1차 세계 대전 무렵까지만 해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만 투르크는 1453년 동로마제국을 끝장내고 이스탄불을 차지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색칠되어있는 지역은 모두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아래 있는 땅이었다. 유럽의 발칸반도와 서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북부까지 지중해 연안의 세 대륙을 차지한 거대 패권 국가였다.

  

 

 

 

 

그런데 19세기 초부터 슬슬 유럽 제국주의의 손아래 들어가기 시작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손잡았다가 패망했다. 영토의 반 이상을 상실하고, 지금 남은 것이 터키 공화국이다.

  

 

 

 

 

투르크와 터키? 맞다. 터키는 영어식 명칭이고, 터키어로는 '튀르키예'(Türkiye)다. 투르크(Türk)는 강하다는 뜻인데, 우리역사에서는 돌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돌궐이 투르크고, 투르크가 터키의 전신이다. 오스만 투르크는 투르크족의 오스만 가문이 세운 제국이고, 그 이전에 셀주크 가문의 셀주크 투르크가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다. 그 악명 높은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겠다고 쳐들어간 나라가 바로 셀주크 투르크다. 10세기 무렵에 벌써 팔레스타인 땅은 투르크족의 지배아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잠깐 칭키스칸에 의해 평정됐다가, 오스만 투르크가 다시 장악했다. 그런데 왜 이 땅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슬림인가? 7세기에 모하메드가 이슬람제국을 세우고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 지역을 차지했다. 이후로 지배한 투르크족들도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이 땅은 천오백년 가까이 무슬림의 영토였다. 아래 지도는 셀주크 투르크 전성기의 이슬람세계 영역이다. 그런데 여기를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이라고 우기며, 신화인지 역사인지 모를 책 하나를 달랑 내밀며 나라를 세운 것이다.

 

 

 

 

크림전쟁 직전, 크림전쟁은 1853~1856에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가 벌인 전쟁이다, 팔레스타인 땅에는 5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 기독교도 6만 명, 유대인 2만 명, 오스만 제국의 병사와 관리가 5만 명, 유럽인이 1만 명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랍어를 쓰는 무슬림이었다. 총 50만 명 중 유대인 2만 명으로 4%만이 토착 유대인이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인의 대다수는 아랍인으로 그때도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이 때만해도 여러 종교의 여러 민족들이 별 갈등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었고, 지역 자치가 인정되고 있었다. 

 

19세기 초부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는 서서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흔히 그랬듯이 서구 식민주의자들은 근대화의 명목으로 선교사, 의사, 교육자들을 선봉대로 파견하여 식민화 작업을 다져 나갔다. 팔레스타인 땅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진짜 비극은 다른 곳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민족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이 영국을 대상으로 막대한 로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세계금융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그림자 정부로 끊임없이 음모론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대인 금융가 로스차일드 가문도 여기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나선다. 여하튼 자세한 내용은 『팔레스타인 현대사』리뷰에서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1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들어간 팔레스타인 땅에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정착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만 적어둔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땅은 급격히 유대인의 땅으로 변해갔다.

 

 

 

 

2011년 현재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영토는 노란색으로 표기된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동예루살렘 3곳뿐이다.

  

 

 

 

 

그런데 뉴스에 자주 나오는 서안지구 즉 웨스트뱅크는 도대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bank는 강둑이란 뚯이니, 요르단강의 서쪽 땅을 가리키기 위해 붙여졌다. ‘요르단강 건널 때’의 그 요르단강이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팔레스타인 영토인데 최근 이스라엘이 엄청난 발표를 해서 전 세계의, 심지어는 미국의 비난을 사고 있다. 한겨레 신문 9월 1일자 기사를 긁어왔다.

  

 

 

 

「이스라엘이 31일 서안지구 베들레헴 남쪽 땅 400㏊(4㎢)를 강제 수용할 계획을 발표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정착촌 건설 감시 단체인 ‘피스나우’는 이스라엘이 강제 수용할 땅의 규모가 지난 30년 내 최대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수용되는 땅에는 5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이 있다”며 “이번 조처는 새로운 정착촌 건설에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도대체 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끝없이 당해야 하는 걸까? 아마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단 한명의 무슬림마저 절멸시킬 때까지 이 비인간적인 일을 계속 할지도 모른다. 이 엄청난 일이 단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만도 아닐 것이고, 유대 민족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일란 파페의 500쪽이 넘는 『팔레스타인 현대사』가 이 비극의 자세한 전모를 밝혀줄 것이다. 여기까지의 개략적인 상식이 본격적인 책읽기에 속도를 붙여주기를 기대한다. 인샬라. 아니... 인간의 의지가 신을 움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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