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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평점 :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경제학은 모두 불변의 진리인지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경제학의 논리와 개념이 완전한 것이라면, 이 학문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달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해서 주류경제학자 및 신자유주의자들은 주기적으로 오는 경기순환일 뿐이며, 이는 더 철저한 자본주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은 허구이며 1930년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의 채택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공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적 ‘공황이론’과 ‘모든 공황은 시장의 효율성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주류경제학적 ‘공황이론’중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더 잘 반영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의심의 한 꼭지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책 한권이 우리 곁으로 왔다.
‘경제학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라는 한국판 서적의 제목은 원제인 ‘Economics for the rest of us’의 뉘앙스를 거의 살리지 못한 부적절한 번역이라는 지적과 함께 책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책은 과거 마르크스도 관심을 가졌던 ‘재분배’ 및 ‘노동시장 분석’ 이라는 민감한 두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설득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적 접근방법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경제학의 본령을 이루는 과거 학자들의 직관적인 분석에 기반하여 현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을 택하겠다고 머리말에서 선언하고 있다.
책의 첫 챕터에서부터 인상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모든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에 의문을 제기하는 점이 그것이다. 한 교과서에서 파레토 효율성의 정의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하나의 자원배분 상태가 있다고 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득이 되도록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원배분상태는 파레토효율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는 다시 말해서 파레토 효율적인 배분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더 이상의 개선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는 언뜻 보면 너무나 절묘한 표현으로 구성된 이론으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경제이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비판한다.
“..파레토는 재분배로 가난한 사람이 얻을 이득보다 부자가 더 크게 손실을 볼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경제학계는 이 이론상의 가능성만을 토대로 자원의 재분배를 통한 경제 효율성을 버리고 파레토 이론을 경제 효율성의 척도로 삼았다.”
즉 파레토 이론은 현재의 분배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재분배를 요구하는 주장에 대한 억제책으로, 결국 재분배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적 근거로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주류경제학에서 현재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공리주의 관점을 적극 차용한다. 요컨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가 얻는 효용 총합을 극대화화는 정책이 효율성을 달성하는데, 이에 따르면 부자가 소유한 1달러를 빈민에게 넘겨줄 경우 부자가 잃는것보다 빈민이 얻는 만족이 클 수 있으므로 공리주의적 경제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반면 파레토의 이론에 따르면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빈곤한 처지에서 실제로 기쁨을 얻는다면 재분배를 통해 빈곤을 줄일 경우, 가난한 사람이 얻는 이득보다 부자의 손실이 더 커질수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상식의 입장에서 보면 얼토당토 않은 것임을 단숨에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방향성의 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가 경제학 교과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저자는 분명히 보여준다.
파레토 이론에서는 허울좋게 정부에서 모두가 이득을 보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이득을 보는 사람이 생기는 한편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는 정책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저자는 계속 날선 비판을 이어나간다. 그의 시각은 다음의 문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실에서는 때에 따라 정부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므로 파레토 효율성은 정책을 채택할 때 지침으로 삼기에는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파레토 효율성 개념이 이토록 중요한 정책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파레토 못지 않게 현대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중요한 인물로 니콜라스 칼도(Nicholas Kaldor)와 존 힉스(John Hicks)를 들 수 있다. 두 학자는 파레토 효율성 개념을 정책에 적용할 수 있게 한 공헌이 있는 학자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칼도는 ‘피해를 본 사람이 자기 손실에대해 보상을 받든 말든 누적된 전체 이득이 누적된 전체 손실을 초과한다면 그 정책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힉스는 ‘어떤 정책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해당 정책을 중단할 경우 수혜자가 입을 손실을 보상할 수 있고, 보상하고 나서도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이런 정책은 시행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주장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자유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원 분배와 동일한 결과를 낳는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두 사람의 평가 기준이란 사실상 자유시장의 분배와 같은 결과를 낳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상 칼도의 보상 원칙(compensation priciple)이라는 것은 주류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가상일 뿐 실제가 아니며, 객관적인 평가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저자는 고전주의 선배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신고전경제 이론의 이같은 비합리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철저히 해부하여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또한 저자는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현실과 밀접하게 살펴볼 수 있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다.
저자는 정부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된 이유가 무상 공교육이 재분배 정책의 일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배제불가능성과 비경합성이 있는 일반적인 공공재와는 달리 교육은 배제 가능하고 경합 가능한 재화이기 때문에 사용재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투입되는 비용에 따라 격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격차의 교정이 일종의 재분배 정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교육 축소를 외치는 기만적인 경제학자들의 논리에 “효과가 없으니 ‘교육에 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중퇴율 감소와 빈곤율 증가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학업성취도 ‘하락’을 예방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는 표현을 통하여 찬물을 끼얹는다.
역시 논란의 한가운데 서있는 주제인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의 비판은 거침이 없다. 저자가 들고나온 논리의 중심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생산물을 분배하는 문제는 구성원 간의 협상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현대 미시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임금에 관한 경제 이론은 한계생산성이론(marginal productivity theory)으로 설명된다. 이는 각 생산요소는 생산에 기여한 가치만큼의 보수를 받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신고전파경제학 분배이론의 골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주류경제학자들 내에서도 이러한 이론은 ‘자본의 성격, 내적 정합성(internal consistency)의 결여, 현실 설명력의 부족’ 등 문제로 여러 가지 비판의 소지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고전 경제학의 성서와도 같은 국부론을 꼼꼼하게 인용하여 이론적 결함을 지적하며 동시에 각종 현실 사례에서의 부정합성을 언급하여 현실적 결함 또한 자세하게 언급하여 노동의 한계생산체감 이론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해부해낸다.
몇몇 중요한 현실 사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이 책 내용의 중심이지만, 이 책의 내용만으로도 현대 주류경제학에서 항상 주장하는 ‘자원의 재분배는 과학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비효율성을 유발한다.’는 명제에 대한 반례 제시로써는 매우 충분하다고 하겠다. 경제학 교과서나 기본적인 경제이론에 익숙하면서, 이론과 현실의 부정합성에 조금의 의심이라도 품어왔던 독자라면 건조한 사실과 논증의 나열만으로도 이토록 박진감있는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현실을 견디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