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보통선거권, 복지제도, 민주주의와 같은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적으로 여겨지던 사회제도들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귀족들, 혹은 엘리트들에 의한 과두정이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이런 정책들이 채택되는 것에 대한 집요한 거부와 방해가 있었다.

     저자는 기존의 체제와 방식을 고수하려는 이들, 즉 보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변화에 저항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피면서, 여기에서 세 가지 주요한 수사적 표현들을 정리해 낸다. 역효과명제, 무용명제, 위험명제가 그것.

 

     ​역효과명제란, 새로운 변화가 의도치 않은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고, 무용명제는 아무리 해 봐도 변할 것은 없다는 식의 체념(정확히 말하면 상대를 체념시키려는)에 기초한 주장이다. 그리고 위험명제란 새로운 변화가 기존에 얻어낸 이익마저 상실시키고 말 것이라는 일종의 위협이고.

 

     ​물론 이런 명제들은 단독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거나 교대로 사용되는데, 문제는 그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점. 예컨대 어떤 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면, 그것이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는 역효과나 위험 따위는 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이 수사적 공격이 실은 선입관과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경향이 단지 보수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책 말미에 가서는 이와 거의 비슷한 진보세력의 변화와 진보 찬양 일색의 수사법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얼마다 앞서 제시했던 명제들과 비슷한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2. 감상평 。。。。。。。

     다른 책들을 보다가 여기저기서 언급되었던 바로 그 책이다. 자칭 보수 세력의 지배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시기, 왜 도대체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은 좀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갖지 못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게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강력한(물론 여기서 강력하다는 말은 압도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과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 명제들이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까이 와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달까..

 

     ​적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 수십 년을 넘은 오래된 이런 명제들이 오늘날에도 펄펄 살아서 날뛰는 건 긍정적인 걸까, 부정적인 걸까. 우리는 이런 명제들에게 수없이 협박당하고, 조롱당해 오지 않았던가? 복지제도를 확대하면 당장에라도 나라가 거덜 날 것처럼 겁을 주고(하지만 실제로 국가 재정을 소진시킨 건 수십 조를 강바닥 파는 데 쓰거나, 측근들에게 몰아준 그네들이다), 뭔가 새로운 정책들을 시도하려면 빨갱이니 주사파니(이게 언제적 주사파냐 도대체..) 하면서 협박하는 모습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저자는 보수파를 싸잡아서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책은 좀 더 시니컬했을 것이고, 보수와 별 차이가 없는 진보의 레토릭을 다루고 있는 6장 같은 부분은 아예 빼는 게 나았으리라.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정치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하는 말을 좀 더 깊게 뜯어보고, 분석함으로써,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사실, 그 넘어서는 사안마다 판단해야 하는 것들이다. 반드시 보수적 주장이 틀린 것도, 진보적 주장이 옳은 것도 아니니까. 그 때문인지 책은 딱 세 가지 주요 명제를 밝히는 데까지만 나아가고, 그것이 갖고 있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함의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아쉽기도 하지만, 뭐 이 정도도 크게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좋든 싫든, 우리는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그 말들을 자기들의 입장에 맞게 편집해서 쉴 새 없이 내 보내는 언론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여기는 아바타로 살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우선은 그들의 말에 담긴 핵심 논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다음으로는 그 주장이 얼마나 탄탄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시작으로 좋을 것이다. 보수 쪽이든, 진보 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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