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전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거대한 전쟁 이후, 소수의 엘리트들은 인간 세계를 좀 먹는 불의와 분노, 살해와 다툼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특별한 공동체를 만든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절되는 그 곳에서는 엘리트들이 정해준 대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인위적으로 조정된 가족에서 성장하고, 배정된 직업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 유물론에 기반을 둔 유토피아(?)’에도 구멍이 있었으니, 바로 기억보유자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갖고 새로운 후계자에게 그것을 전달해주는 전달자(Giver)이기도 했다.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세계에 혹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나머지 사람들에게서는 지워버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남겨두도록 했던 것.

 

    새롭게 성인이 되어 직업을 배정받게 되는 날, 조너스(브렌튼 스웨이츠)는 새로운 기억보유자가 되도록 지명을 받는다. 교육이 계속되면서, 강렬한 끌림과 충격을 받은 조너스. 마침내 그는 정해진 선 밖으로 나가 진실을 대면하기로 결심한다.

 

 

 

 

2. 감상평 。。。。。。。。  

 

    영화를 보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같은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정해진 직업과 삶을 살아가는 철저한 통제의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는 사회주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또 어떻게 보면 낙원을 약속하며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 같기도 하고. 물론 영화 속 원로들이라고 불리는 엘리트들은 통제의 대가로 자기들만 호의호식 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 그들은 낭만적 소셜리스트라고 불러야 하나.

 

    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사회에는 인간을 격동시킬 만한 일체의 것들이 금지된다. 심지어 사랑과 같은 애매한단어들은 사용해서는 안 되고, 악기도 음악도 없다. 영화 전체에 걸쳐 옅은 회색빛이 모든 생생한 색들을 덮어버린다. 물론 엘리트들이 바랐던 대로 그곳에는 싸움도 분쟁도 없었지만,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합하지 않은사람들은 임무해제라는 이름으로 제거해야 했다는 점이 또 아이러니한 부분. 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화와 평등이라는 가치는 물론 좋은 것이지만, 이 두 가치를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이미 오래 전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를 담은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에서도 지적되었듯,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이라는 부분이 제거되었을 때 남는 건 아무 개성이 없는 회색사회일 뿐이니까. 그런 사회에서 인간이란 전체의 부속품에 불과하고, 부속품은 처음부터 얼마든 교체 가능한 것에 불과한 법이다. 인간이 부속품으로 여겨지는 사회를 과연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구성이 아주 탄탄하고 짜임새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 소재나 제기하는 질문은 생각해 볼만했던 작품. 그래도 그렇게 늘어지는 감 없이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덧.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남겨두려고 했던 영화 속 엘리트들의 시도는 명백히 유물론에 기초해 있다. (인간의 존재와 본질, 미래까지도 계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좀 극단적인 면은 있지만) 그리고 이런 목소리는 계몽주의 시대의 교만한 학자들에서, 근대의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철학자들에게서, 그리고 유산(遺産)은 자연의 자체적인 품질관리일 뿐이라고 논평하는 히친스나 도킨스 같은 소위 진화사회학자들의 주장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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