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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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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시간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면, 이런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할까(p.17)?"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철학적 사유의 방식이 아닌 사학, 물리학, 천문학 같은 인류 문명을 구성하고 발달시켜 온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서술된다. 특히, 문화적 시간이 변화할 때 우주론의 시간 개념은 어떤 변화를 겼었는지, 반대로 우주론은 문화적 시간 개념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각 시대적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한 작가의 책은 최근까지 화두가 되고 있는 '통섭'의 한 방식, 경계를 허물고 각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학문적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시간 개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달라졌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한 것은 시간 경험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울러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우주론적 상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려면, 물리학과 천문학의 연구 경로와 아주 유사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p.23)."
 
저자의 서술처럼 인간의 역사는 커다란 변화를 겼었다. 다시 말해, '5만 년 전 탄생한 정치적인 도시제국에서 2세기 전 구축된 공장 중심의 상업 제국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문화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재창조되었다(p.462).'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실시간으로 세계가 연결되는 오늘날, 이를 두고 사회학자 존 어리(J. Urry)는 '이동사회'의 재등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호모 노마드(Homo Nomad)로 대표되는 신유목사회에서 시간은 최적의 효율화를 목표로 늘 가속화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저자는 갈수록 가속화되는 시간의 배경 뒤에 에너지 자원과 자연 자원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지난 세기 전 세계 산업생산의 급격한 증가는 단순히 과학과 기술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석유화학이라는 값싼 에너지가 무한히 공급될 수 있었기에 과학과 기술이 가능했던 것이다(p.470)."

그리고 아다시피 무한히 공급될 것만 같았던 에너지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은 더이상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에너지의 한계 문제와 더불어 끊임없는 과학 기술 산업의 속도 경쟁 속에 환경오염의 총량 역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 단계의 인류 역사가 기후를 중심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고 평한다. 어쩌면 기후 변화로 대표되는 온 지구가 신음하고 있는 환경의 문제는 인류의 다음 역사를 전망하기에 중요한 기착점이 될 수 있다. 1992년 세계 환경 회의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이 합의된 이래로, 현 인류는 미래 세대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가속화의 정점에서 과연 이대로 가도 좋은가에 대한 반성이리라. 하지만 이 개념에도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미래 세대가 의미하는 '미래'란 언제를 의미하는가. 현 세대를 기준으로 미래 세대를 정의할 때, 역시 시간의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정의되고 예견될 수 있는가. 태초에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다시 우리 미래의 문제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주의 탄생과 함께 시간은 발생했다. 그리고 점점 가속화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 미래를 내다보는 일. 어쩌면 저자는 시간 연대기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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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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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누구일까? 흔히 요즘 젊은이들은 안돼.” 혹은 요즘 젊은이는 발칙하다.”라고 누구나 쉽게 지적하지만, 단순히 젊은이라는 집단을 ‘20대부터 30세 정도인 남녀로 정의할 수 없는 까닭이 저자의 젊은이 담론에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젊은이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일본에서 논의된 젊은이론과 젊은이 담론(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젊은이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사회학자로서 젊음또는 젊은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해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이니 하는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아주 일상적인 대상에 대해 해체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그의 젊은이 담론은 사회학자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지녀야 할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치밀함은 젊음이론의 변천을 도표로 정리한 젊은이론의 계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데, 사회적인 흐름을 떠나서 단지 연령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지역, 빈부, 성별 차이 등을 모두 무시하고 젊은이로 간주해 버리는 논의가 현실성을 가질 수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 삶이 예전과 얼마만큼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두고 젊은이에 대해 논한다.

저자가 조작적으로 정의한 일본의 젊은이는 끝없는 불황, 비좁은 취업문, 부조리한 사회제도에도 저항하지 않는 행복한 젊은이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1억 명 모두가 젊은이가 되는 시대, 우리는 그 과도기에 살고 있기에 이제 젊은이가 연령에 관계없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1년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이를테면 모두가 주택을 보유하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정년 때까지 일을 하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서 자녀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중산층의 꿈이 무너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 시류와 더불어 젊은이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p.309).”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젊은이론은 비단 일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1991년의 사건을 1997년의 우리나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이후로 바꾸면,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젊은이론이 적용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도쿄에서 서울까지 2시가 30분이라는 짧은 비행시간 만큼이나 두 나라는 사회적으로도 가깝다. 때문에 이 책의 해제를 쓴 오찬호 박사는 일본과 한국이 상당히 유사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가 말한 행복한 젊은이들일본에만 존재하는 결정적 차이를 논하며 부럽다고 논한다.

그렇다. 이 책을 덮는 시점에서 나 또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복잡하게 느껴지는 사회학을 치밀하게 하지만 위트있게 서술한 저자의 역량이, 다른 하나는 비슷한 절망의 시대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공동의 인식이 부러웠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한 시대’. 멋진 논리로 치장하지 않아도 그 문장 하나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의 진단이 더 아파하라거나 인문학으로 돌아가라거나 하는 메시지가 만연한 우리나라에 진정한 젊은이에 대한 응원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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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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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파사주(Passage), 늘 새롭지만 늘 구태의연한 상품의 숲을 거닐며 사물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850년대 파리의 대도시화와 더불어 등장한 아케이드를 보며 삶의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 현대의 상품사회가 삶의 사물화 인간 존재의 허깨비화를 초래했다고 비평한다.

 

그와 비슷한 관점에서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저자 류동민은 자신이 살아온 서울의 기억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거친 물결 아래,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향수와 함께 지나치게 물신화된 서울에 차가운 시선을 얹은 그의 이야기는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오늘에 대해 잠시 멈추어 설 것을 제안한다.

특히나 서울의 공간은 나와 너를 구분하고 차단하는 배제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박탈감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누구는 들어갈 수 있으나 다른 누구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 안에서 안에 있는 이들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위안, 그것이 허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밖에 있는 이들은 이를 누릴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그들 사이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서울의 공간은 슬프기까지 하다.

공원형 명품아파트라는 금긋기의 방식으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차없는 아파트가 택배 한 상자에 740원이라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택배기사에게 기피대상 1호가 되는 현실(노컷뉴스, 2013-08-14 기사 참고)은 최근 1년 사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을의 분노를 자연스럽게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최근 <미생>, <렛잇비> 같은 을의 이야기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 자연스러움에 대한 반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저자는 서울이라는 특별한 도를 정치경제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적 접근을 바탕으로 아파트, 대학, 여가 등 우리 삶과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각자 재주껏 살아남기라는 원리 속에 함께 버티고 사는 보편적인 을의 시선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재생산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특히 서울,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자본 및 권력의 논리가 저자가 말한 자기 책임의 원리로 귀착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의 삶은 늘 소진된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설명한 지독한 역설은 배제된 서울이 아닌 공공의 서울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자기책임의 원리로 귀착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리, 그러나 삶의 물질적 조건은 점점 더 자신의 삶을 자기 혼자서는 책임질 수는 없게 변해간다는 역설. 이 지독한 역설이 자기관리 혹은 자기경영학의 근본적인 모순일 것이다(p.91).”

 

근본적인 모순을 넘어 공공적 도시권을 확보하는 것.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 관련기사

http://www.nocutnews.co.kr/news/1083751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581867&plink=OLDURL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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