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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경 - 역사가는 과거를 어떻게 그리는가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3월
평점 :
'역사의 풍경' The Landscape of History : How Historians Map the Past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 강규형 옮김
Prologue.
여기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바다 앞의 방랑자>에서 안개로 가득찬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이고 또 한 명은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기네스 팰트로(바이올라)다. 그들의 앞모습은 정작 볼 수가 없어 표정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인간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젊은이의 뒷모습은 너무나 심오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지긋이 내려다 보며 그 너머에 있는 희미한 광경들까지 모두 지팡이 끝으로 가리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외로워 보이지만 그는 분명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기네스 펠트로의 뒷모습은 거대한 자연 앞에 그 존재감이 미미해진 작은 생물체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저자는 이 두 장면을 통해 자연, 즉 역사를 바라보는 인간의 주체적 위치가 어떻게 자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간극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안개바다 앞의 방랑자' The Wanderer above a Sea of Fog
Casper David Friedrich, 1818
왜 역사인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사’란 내게 어떤 암기의 대상처럼 각인되어 있다. 정확한 년도와 사건을 연결지어 외우고 관련된 인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이 관건인 과목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비단 내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달달 외우도록 강요받는 ‘국사’나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지식들보다도 오히려 아주 어릴 적 윤승운 작가의 ‘맹꽁이서당’을 통해서 보았던 조선왕조의 역사를 더욱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미묘한 두 가지 상충되는 느낌은 아직 내게 호기심과 진부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도 왜일까. 리뷰를 쓰기 전 세 종류의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꺼이 ‘역사’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을 보니 그래도 호기심이 진부함보다는 아직 크게 자리잡고 있나보다.
물론 <역사의 풍경>은 단순한 ‘역사’에 포함되는 지식을 일일이 열거하는 책이 아니다. 그야말로 역사를 하나의 풍경으로써 바라보았을 때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역사가의 자세, 연구대상으로서의 역사가 지닌 가치, 역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현대 지식구조 안에 어떤 위치에 자리잡아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 안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신과학의 이론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과학과 역사를 굳이 관계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과학이 역사 안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역사가 과학 안에 포함되는 것일까? 물론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을 포함하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무지의 소산이겠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과학과 역사가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 ‘일반화’된 현상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과학과 역사의 공통점이라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비례하여 관련 지식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과학은 실험이 가능하고 객관적으로 성립가능한 이론이 존재하는 반면 역사는 시간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이 지나가 버리고 나면 그것은 후대에 의해 밝혀지고 기록되는 형태로밖에 남겨질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과학은 방대하지만 그에 대해 밝혀낼 수록 명료해진다. 물론 아직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신비나 인류의 기원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이 언젠가 분명해 지리라는 기대감 정도는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 단어 자체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명명으로써 역사가는 절대 그 시간을 직접 살아볼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분명 우리가 숨을 쉬고 땅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재’라 불리우는 시간이 지나간 시간들로부터 빚어진 결과에 해당할 것인데 과연 그 시작의 끝이 어디란 말인가. 그 오랜 역사를 살고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들을 수 없고 오직 그들이 부분적으로 남긴 흔적만을 가지고 역사라는 거대한 궤적의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면서도 얼마나 흥미롭고 설레는 일인지!
역사가의 역할
제목이 왜 ‘역사의 풍경’일까. 역사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 속에서 그 본질을 한 눈에 바라보는 ‘풍경’과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개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뒷모습, 비록 그 정확한 시선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분명 그 젊은이는 그 풍경 속에 일차적으로 심취되어 있고 이차적으로는 그 안에 보이는 세세한 것들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안개의 냄새라든지, 흘러가는 결,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지상의 것들, 안개 너머 계속해서 뻗어 있을 산맥의 흐름 등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곧 우리를 향해 뒤로 돌아 자신이 본 것을 ‘묘사’해 줄 것이다. 그리고 ‘묘사’가 얼만큼 우리 마음에 들 것인가는 그 젊은이가 ‘묘사’를 잘 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방법이 탁월하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그의 묘사를 보거나 듣게 됨으로써 우리가 그 위에 직접 서 보지 않아도 그 광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그 ‘묘사’ 안에 역사가의 상상력이 더해져도 되는 것일까. 단지 그가 ‘이야기’를 동원하여 묘사하는 것까지는 이해될 수 있으나 그것이 가공되거나 도덕적 판단 이외에 다른 관점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못을 박고 있다. 그러나 그 도덕적 판단 마저도 시대마다 다른 규범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면 그에 따라 역사도 새롭게 씌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는 자(역사가)에 의해 억압받고 동시에 해방된다.
이와 같은 역사가의 숙명, 역사가가 지닌 한계와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은유와 사례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의 역할과 당대의 대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알기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의 이야기다. 역사의 긴 줄기 곳곳에 돋보기를 가져다 대는 것이 바로 당대 역사가들이 하는 일이라면 이것은 마치 코끼리의 장딴지와 꼬리와 코를 각자 더듬는 장님들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코끼리의 각 부위에서 탐구를 마친 장님들은 한 곳에 모여 자신들의 느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겠지만 당연이 그들의 느낌과 연구결과는 절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동시에 눈을 번쩍 떠서 전체적인 코끼리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이처럼 역사가의 시선과 시야가 미칠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그 밖의 부분은 순전히 역사가의 상상력과 소신에서 발생되는 갖가지 이미지와 지식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 장님들이 늘어뜨린 동아줄을 붙잡고 줄지어 따라가는 대중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각 장님들의 동아줄을 줄줄이 붙잡은 사람들이 종횡으로 만나 서로 교류하고 각자가 지닌 지식을 공유한 다음 그것을 확산시켜 나가는 작업을 통해 코끼리를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면 과연 그 때 우리는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두 번째는 거인의 등에 올라탄 난쟁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흔히 거인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난쟁이에 비유되곤 한다. 과거 선조들이 쌓아온 지식과 유물을 딛고 올라서 자신의 키를 뛰어넘는 기존의 것들을 이미 습득한 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난쟁이로 태어나는 데다 거인의 등 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을 내다 보려면 거인의 등까지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이론과 법칙들을 학습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역사가 세계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될수록 인간이, 난쟁이들이 거인의 등에 오르는 시간은 더욱더 길어질 것이다. 언젠가는 갓 태어난 인간이 거인의 등에 오르기 전에 수명이 다해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역사의 그 깊이와 넓이가 더해질수록 우리는 역사에 간결성을 도입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 근대는 끊임없이 근대가 되고 현대는 언제나 당대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면 현재의 근대는 언젠가 고대에 편입되어야 할 것이고 인간이 살았던 모든 세대에 공룡이 살았던 시대처럼 이름을 각기 붙여 축약된 지식만을 얻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란 과연 어떻게 축약되어야 하는걸까. 이러한 측면에서 거시·미시역사의 모든 부분을 끌어안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밝혀내어 후손에 남기기 위해, 각 역사의 한 부분, 한 사건이 각각 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의 중요성의 경중을 판단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야만 하는 역사가의 역할은 너무나 어렵고도 중요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푸앵카레의 언급이 이 역사가의 역할이 지닌 어려움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예측 가능한 것과 예측 불가능한 것을 구별하는 것,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축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변수 간의 상호종속성을 인정하고 즐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과학과 달리 복잡인과관계(complex causation)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고해야만 하는 분야가 바로 역사이고 역사가는 단순한 y=f(x)가 성립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상호종속변수를 연구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위치
세상의 역사가 이미 지나간 과거와, 그 경계를 규정하기가 애매한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 세 구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해 보자. 은하계의 빅뱅 이래로 시간이 지나온 만큼 과거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게 되고 현재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과거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미래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무엇인가 확실하게 규명되기를 원하고 보다 안전한 미래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를 확실한 지식과 예측가능한 상태로 인도해 줄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순수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가가 역사의 부분부분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면 저자가 집중하는 것은 바로 과학성이 뒷받침되는 역사 연구의 한 방법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거기에 역사가에게만 요구되는 자질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도덕성’이다. 역사가는 지나온 일을 직접 겪을 수 없고 자신의 지식과 상상력을 이용해 최대한 과거를 묘사하는 대신 거기에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도덕적 판단이 옳고 그른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역사를 받아들이는 개인에게 남겨지는 과제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대의 도덕적 규범 안에서 옳고 그름의 틀을 과거의 사건에 그대로 적용시키거나 앞으로도 그 기준이 유효할 것이라고 믿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지 현재의 상황을 야기시킨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내는 것, 그 인과관계의 사슬을 밝히고 그 안에서 교훈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지식과 지혜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과거나 현재에 비해 미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미래는 시간의 자기유사성에 의해 반복되는 과거의 또다른 형태의 재현이 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역사가는 미래를 말할 수 없다. 아니,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과학과 역사
과학은 “가장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이성적인 의견의 동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역사보다 접근하기가 훨씬 쉬운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떠한 관점에서 분석되고 정의내려져 대중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역사가 과학과 경쟁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상상에 논리를 곁들여서 현재의 구조에서 과거의 과정들을 추론해 낸다는 측면에서 과학과 역사는 비슷한 방법을 통해 연구될 수 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듯 역사가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과 역사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일반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역사가가 어떻게 상호종속변수들을 다루는지에 대한 저자의 논점은 흥미롭다.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사례로 들어 설명한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도 그렇거니와 프랙탈은 모든 역사가 거시·미시간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기복제의 성질을 가지며 그 패턴을 계속해서 유지, 발전시켜 나간다는 주장은 과학적 현상을 역사에 도입한 재미있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은 컴퓨터 사용의 확산과 인터넷,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몇몇 현상과 함께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것 등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모든 역사는 그래서 반복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고 역사가는 그 패턴을 규명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를 역사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이다. 그 패턴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옳은 것이냐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물음에 주은라이가 대답한 것처럼 “아직 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라는 말로 재치있게 넘어가고 있다. 역사가 학문 안에 자리잡기 위해서 역사가들이 감안해야 하는,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과거로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물리적인 장치가 발명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토록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던 과거를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진다면 진정한 역사가라면 그것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 조건의 민감성의 법칙 때문에 타임머신이 과거를 향해 현재를 떠나는 순간 역사는 변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작은 부분조차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시도하는 것처럼 과연 과학과 역사가 연관을 어느 정도까지 이룰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역사에 과학성을 도입하려는 시도 자체가 역사를 객관적인 규칙 안에 끼워맞추려는 무리한 시도인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과연 인간의 역사를 올바르게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에 대해 나는 약간의 우려가 든다. 모든 학문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전해 가지 않는다. 서로에게서 규명된 각종 이론과 객관화된 현상들은 서로 다른 학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상 일어났던 사건 자체는 이미 불변의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타 학문과의 소통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역사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성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행되어 온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 이미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정리했듯이, 역사가는, 한쪽에 자연과학을 또 다른 쪽은 사회과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먼저 역사가는 거대한 학제간 연구의 세계(General Interdisciplinary Chain of Being)에서 역사학이 차지하고 있는 전략적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
헨리 애덤스(Henry Adams)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위대한 일반 법칙’을 찾는 노력이 역사를 올바르게 규명하는 데에 과연 가치가 있었는가. 과학의 일반 법칙에 대응하는 역사학의 일반 법칙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모든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상호작용하는 일반 법칙 사이에 카오스 이론이 들어서게 되면 그 어떠한 일반화된 이론도 단번에 해체되어 버리고 더군다나 인간의 성격과 사회 환경의 불규칙한 변화가 개입되는 역사의 특성상 사회의 일정한 흐름을 어떠한 수학적인 규칙에 맞추어 규명하고 예측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푸앵카레는 “사람들의 탐구 수단이 점점 궁극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복잡한 환경 속에 내재하는 단순함을 찾고, 그 다음에는 단순함 밑에 깔린 복잡성을 찾아야 한다. 궁극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고, 애덤스는 이 말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말은 수학자에게 영구히 축복이 될지 모르지만, 역사가들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 절대 직접 겪어볼 수 없고 또 과학과 같이 일반적인 법칙 또한 존재하지 않고 거기에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성의 규범에서까지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학자로서의 역사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상호작용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문적 도구를 자연과학에서 그 힌트를 얻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모두 영감을 줄 수 있는 ‘임계성’의 발견은 역시 역사학에 별다른 출구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임계성의 정도를 추측(혹은 예측)할 수 있는 것 조차 이미 일어난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도덕성
역사가 지니고 있는 특징은 전기를 쓸 때 인물에게도 해당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위인에 대해서도 후대의 역사가는 도덕적 판단을 피해갈 수 없다. 그 도덕적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냐에 관한 물음에 대해서 답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내놓는다. 역사가가 자기 시대의 규범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을 인정하되, 그 평가를 인물이나 인물 당대의 규범과 명시적으로 구별해 두는 것이다. 역사가가 과거를 삼각측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각도의 시각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역사가란 당대의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에 나오는 것처럼 직접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들어가 실제로 그 사람이 되어 본 이후에야 그 사람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당대의 역사의 시점과 관점 안에서 사건을 보고 기술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지라도.
마무리
저자는 역사학을 뛰어넘어 인류의 모든 행태와 시간성에 대한 흐름을 연구하는 모든 학문과의 관계에 대해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글 안에 나오는 것처럼 "많은 경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상식“일 수도 있다.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스스로 대답하기 위해 많은 이론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를 끌어온다. 하지만 질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나온 것을 규명해야 하는 역사학자들의 숙명에서 비롯된 영원한 물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하나의 풍경으로 가정했을 때 그 앞에 서 있는 개인의 전지적 능력, 혹은 그 안에 있는 한 개인의 하찮음, 그 간극에 걸쳐 있는 것이 바로 역사적 인식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 설명을 위해 책의 마지막에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간 것은 탁월한 은유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