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 - 라캉으로 영화 읽기
권택영 지음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감각의 제국 : 라캉으로 영화읽기' (2001)

지은이 : 권택영
펴낸곳 : 민음사


'감각의 제국'.
언뜻 책의 제목만 본다면 영화 '감각의 제국'의 소설판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의 부제는 '라캉으로 영화읽기'로서 다수의 영화를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책에서 접근한 영화로는
<글래디에이터>, <파리, 텍사스>, <공동경비구역 JSA>, <러브 레터>, <감각의 제국>, <아메리칸 뷰티>, <접속>, <잉글리시 페이션트>, <선셋 대로>, <시민 케인>, <유주얼 서스펙트>, <롤리타> 등이다.
이들 중 아주 오래 전에 봐서 이미 내용이 가물거리는 것도 있고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급하게 찾아본 것들도 있다.
하지만 역시 기존에 내가 영화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법과는 아주 다른 관점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요즘에 공부하게 된 정신분석학이 한층 쉽게 다가오도록 해주었다.
'정신분석학'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도통 인간사에 적용이 되지 않는 부분이 없더라는 얘기는
이제 충분히 공감을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 몰라도 그닥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든다는 거다.
사실 책에서 차근차근 짚어가는 영화와 정신분석학적 이론과의 관계는
뒷부분에 가면 겹쳐지는 내용이 많아서 지루해 지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책의 초반에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학계 용어들과 명쾌한 설명, 시적인 풀이는
그냥 읽고만 있어도 무언가 굉장한 지식들을 전수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뿐만 아니라
본디 내용도 그렇지만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해체되어 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맛볼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 뿐만 아니라 저자 권택영이 언급하는 수많은 텍스트들과 사례들은
기록해 뒀다가 꼭 찾아보고 음미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 한 권을 읽게 됨으로써 또 그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복잡한 지식의 거미줄을 쳐나가는 작업이
앞으로 내가 해 나가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하지만 수많은 텍스트 분석 작업을 반복적으로 목격해 나갈수록
정신분석학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한 가지에 응집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꿈을 가지고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의 '오브제 아'를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긍정적 대타자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또 한편으로 인간은 에로스를 통해 불안을 잠재우고 살아가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추구하여
마약, 학문, 종교 등에 심취하며 불안을 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시대 우리들의 에로스는 바로 매스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바로 천박한 대중문화인 듯 하다.
정신적 가치를 누리는 데에서 좌절한 대중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말초적 욕망의 희화화뿐이란 말인가.
이런, 또 엄한 방향으로 튀어 버렸지만..
가끔은 지난한 노력을 들여 이런 책도 읽어볼 법 하다.
책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역시 좀더 간편하고 얕으면서도 재미있는 지식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얼마나 많이 널려있던지 도무지 책에만 장시간 집중하기가 힘들더라는..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난 후의 쾌감 자체가 나에게는 '오브제 아'로서 기능하는 것 같기도.



"우리의 삶은 꿈이요, 깨어남이 깨달음이다. 환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다.
에로스는 바로 온몸이 성감대였던 유아기 성이고 이 환상은 결코 포기되지 않고 우리를 매혹한다.
너와 하나가 되어 나의 결핍, 나의 불안, 나의 외로움을 채우고 싶은 환상이 사랑의 본질이고
연인은 어머니 대리자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결핍을 느끼고 그러기에 늘 사랑을 갈구한다.
다만 그걸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모를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홀바인의 '대사들 The Ambassadors' (1553), Oil on Wood, National Gallery, London.


그림의 하단에 길쭉하게 부푼 물건은
정면으로 보면 남근처럼 생겼는데 고개를 돌리면서 슬쩍 보면 해골이다.
남근 속에서 해골을 보는 바로 그 순간이 실재계와의 만남이다.
...
모든 대상은 남근처럼 보이지만 해골이다.
이 길쭉한 물건은 죽음 충동이 투사된 환상으로 매혹의 대상 <오브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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