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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새처럼 자유롭다"는 표현을 쓰면서 날개로 3차원의 모든 공간에서 어느 방향으로나 제한 없이 이동하는 조류의 능력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도를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새라도 구태여 날개를 사용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아갈 방법을 알아낸다면
비행의 특권을 아낌없이 당장 버리고 영원히 땅바닥에서 살아갈 것이다. (pg 21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완벽한 통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
지금까지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멋진 신세계'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 책을 접할 당시의 나는 회사 생활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던 터라 내 자신이 멋진 신세계 속 엡실론 계층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고민과 '소마'처럼 몸에 부작용 없이 우울함을 없애주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완벽한 통제 사회가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본인 스스로가 묘사했던 사회가 어떻게
현실화 될 수 있는지, 또한 그 현실화가 얼마나 빨리 올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의미로 쓴 책이다.
'멋진 신세계'가 세상에 나온지 20여년 뒤에 나온 책으로 1958년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벌써 나온지 60년이나 된 책인데 이 책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헉슬리를 마치 엄청난 예언가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이 책을 보면서, 60년 전에 그가 예상했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비교해 봄으로써 과연 그의 예언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으며
앞으로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서 멋진 신세계의 현실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인구 과잉과 과잉 조직화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이 쓰일 당시에 비하면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대도시들도 늘어났다.
여전히 어떤 국가들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어떤 국가들에서는 대도시화로 인한 정신적인 허기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헉슬리가 예측한 바 대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은 자손 번식에 대하여 아무런 체계적인 계획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통제를 받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번식을 행하여 지구를 인구 과잉의 상태로 몰고 왔을 뿐 아니라,
더 늘어난 인구의 질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해지게끔 나름대로 확실한 기여까지 한다. (pg 66)
실제로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는 인구 통제를 진행한 바 있다.
심지어 그 인구 통제가 아주 '잘' 진행되어서 이제는 인구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구 통제를 하지 않았던 국가들의 경우에도 젊은 세대일수록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헉슬리가 지적했듯이 인구 증가가 인간이라는 종을 생물학적으로 열등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 주장이 맞으려면 100년 전의 인간이 현대의 인간보다 우수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국가들, 특히 경제적 발전을 어느 정도 이룩한 국가들의 경우 지금은 인구 증가가 아닌 인구 고령화와 감소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과잉 조직화가 상당부분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더욱 파편화되어 있다.
점점 더 도시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인구 과밀화의 속도도 완화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가 지적했던 인구증가와 과잉 조직화가 현상적인 수준에서는 지금의 현실과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를 따져볼 때엔 비슷한 우려를 안고 있다.
이로 인한 자원의 고갈, 정치적 무관심과 혼란, 사회철학의 부재 등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의 관심사에만 몰두하고 있고 정치적, 경제적 실세들은 이러한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들의 삶에서 대단히 큰 부분을 현장이 아닌 곳에서,
지금 현재의 상황 그리고 예측이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
그러니까 운동 경기나 연속극, 신화나 형이상학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보내는 사회는
그것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자들의 은밀한 침투와 강탈에 저항하기가 힘들어진다. (pg 98)
이런 상황에서 전체주의적 국가의 출현에 한 몫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선전(선동)들이다.
저자는 특히 정치가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종교인들의 전도 활동에도 이러한 선전이 폭넓게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우리들은 저마다 독특하다.
모든 문화권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또는 어떤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신조의 이름으로 인간 개체들을 표준화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성을 거역하는 폭력을 저지른다. (pg 75)
실생활에서는 '보통 사람'이라는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신체와 정신에 있어서 타고난 특이성을 지니고, 그들의 생물학적인 다양성을 어떤 문화적인 틀의 획일성에 집어 넣어
맞추도록 노력하는(또는 노력하도록 강요받는) 각별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만 존재할 따름이다. (pg 179)
이러한 선전들 속에서 개인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심지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될 가능성도 크다.
철학은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사물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반면에 선전은 우리가 의혹을 갖거나 판달을 보류해야 옳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자명한 개념이라고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 (pg 108)
이러한 현실 속에서 '멋진 신세계'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자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과잉 인구와 과잉 조직이 가속화되며 대량 소통의 매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능률적으로 응용되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고결함을 간직하고 인간 개인의 가치를 다시금 주장할 것인가? (pg 110)
위 질문이야말로 이 책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하나의 질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자유를 지켜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가야 할 것인가를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실에 관한 가치관의 교육-개인적인 다양성과 유전적 특이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의 당연한 추론적 결과인 윤리적 자유와 관용과 상호 박애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g 196)
자유(그리고 자유의 조건이면서 결과이기도 한 사랑과 지성)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g 198)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항들에 대한 회의를 갖고 살아간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아래와 같다.
개인은 그들의 사회가 보유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기꺼이 응할 암시 반응 잠재성을 충분히 갖춰야 하지만,
전문적인 정신 조종자들의 주문에 무기력하게 홀려 걸려들 정도로까지는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pg 200)
물론 그의 해결책은 속된말로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도 잘 안되는 것에 가깝다.
대체 위와 같은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추구할 수 있겠는가?
저자도 말로 하긴 쉬워도 현실에서 이루기는 어렵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이 나온지가 벌써 60년쯤 되었으니 인류는 적어도 60년동안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집중된 부와 권력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은 동등한 존재이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한국만 보더라도 '갑질'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우리는 아주 불편한 질문에-우리는 진심으로 우리가 아는 지식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느냐 하는 질문에 봉착하고 만다.
(pg 212)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말 '자유'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자유'의 가치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를 위해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보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질문을 남겨주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멋진 신세계'를 읽지 않았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조지 오웰의 '1984'와의 비교도 상당부분 있으므로 '1984'의 내용 또한 알고 있어야만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번역의 대가'라며 번역에 역점을 둔 책이라고는 하지만 원문에서도 워낙 문장이 길었기 때문인지
번역된 문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옮긴이가 무척 애를 쓴 흔적이 보이지만 그래도 읽기 어려운 건 어려운거다.
문장을 국문에 맞게 잘라주는 정도의 배려가 있었으면 원문을 크게 해치는 일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250페이지 정도의 짦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하지만 앞서서도 밝혔듯이 헉슬리를 무슨 수정구로 미래를 보는 사람처럼 취급하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그의 예측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특히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크리스토퍼 히친스라는 사람이 쓴 글은 헉슬리의 빛나는 통찰력은 물론 아쉬웠던 부분까지 균형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책을 모두 다 읽고 나서 이 부분을 보면 더 이해가 잘 간다.
본문 뒤에 '멋진 신세계'에 대한 당시의 반응이나 조지오웰에게 보낸 서신도 굉장히 흥미로우니
이 책을 접하게 될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꼭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