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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
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지음, 배효진 옮김 / 리프 / 2025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상당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낸시 크레스'의 최신작이다.
SF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상들을 휩쓴 저자인데 신기하게도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 말고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 않다.
단편 모음집 등에 짧은 작품들만 일부 수록된 것을 읽어봤던 터라 저자의 작품에 대한 갈증이 컸는데 이번에 신작이자 걸출한 장편이 출간되어 드디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저명한 생물학자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동저자인 '로버트 란자'의 '바이오센트리즘'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물론 작품 내에서 이 단어가 직접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고 이것이 무슨 개념인지도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해서 설명해 주니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뇌 수술 전문 외과 의사가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탐구 과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품 속에서도 생소한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물질 중심주의 사고에 너무도 익숙한 우리에게는 굉장히 낯선 개념이다.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과학적 지식에 따르면 빅뱅 이후 우주가 물질을 형성하고 그 물질이 어찌저찌 모여 우리라는 생물을 이룬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작품에서의 우주는 본래 파동함수, 즉 가능성의 집합인 확률로만 존재하는데, 의식적인 관찰이 가능한 관찰자(소설의 제목이기도 한)가 등장함으로써 파동함수가 특정한 형태로 붕괴한 결과물이 지금 우리의 우주라고 말한다.
사실 이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작품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주의 작동 방식이 그렇다면, 의식을 이용해 특정한 형태로 파동함수를 의도적으로 붕괴시킴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다중우주를 생성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이를 여러 명의 참가자들을 통해 실험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른다.
작품의 주인공인 캐롤라인 박사는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컴퓨터 칩 이식을 담당하는 뇌 수술 전문의로 참여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이 이론의 창시자와 오랜 시간 논쟁하며 이를 이해해 보려 하지만, 여전히 실험 참가자들이 보는 것이 다른 버전의 우주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바라는 강렬한 환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소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저 순수하게 과학을 탐구하려는 자들과 이를 범죄적인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들이 대립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반대하는 자들까지 가세하면서 프로젝트는 여러 어려움을 맞는다.
이 어려움들에 맞서 우주의 작동 방식이 무엇인지를 탐구해간다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자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시각도 흥미롭고, 이를 다중우주 이론과 연결해 매력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낸 점도 훌륭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생각보다 적고 그마저도 후반부에 상당히 몰려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그래서 뭔가 스펙터클한 작품을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고, 꼼꼼하게 과학적 배경들을 쌓아가면서 지금의 우리 우주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작품을 기대했다면 박수를 치며 읽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흥미를 끌 수 있는 사건들이 추가되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이런 수술이 개발된다면 당장 해보고 싶을 정도로 작품 속에서 탄생한 세계가 워낙 매력적이었고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빌드 업도 탄탄해서 저자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기엔 충분했던 책이었다.
물론 저자가 꽤 많은 작품을 쓴 터라 계속해서 국내에도 더 많은 작품이 소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여전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