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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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택시라는 공간이 주는 특수성 때문인지 나라가 달라도 택시 문화에는 보편적인 면이 있는 모양이다.

택시 안에서는 기사와 승객으로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개인 신상부터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저자의 직업은 우주생물학자로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택시로 이동하는데, 이때 택시 기사와 나눈 이야기들을 엮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여는 첫 질문은 '외계인 택시 기사가 있을까?'다.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정과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일단 생명이 탄생해야 하고, 그 생명이 지적인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생명체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동 수단(꼭 택시처럼 생기지는 않았어도)을 발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타인을 위해 경제적인 대가를 받고 그 이동 수단을 운행해 주는 일종의 분업 사회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택시 기사와 함께 여러 질문에 답하면서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준다.

다음번에 택시를 탈 기회가 있으면, 생명의 여행을 가능케한 시간과

진화의 범위를 이해할 수 있는 의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다음의 놀라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하나는 우리가 우주에서 택시 기사가 있는 유일한 세계에 있을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우리은하와 다른 은하들 곳곳에 촉수가 달린 채 수다를 떨기 좋아하는

택시 기사들이 수많이 존재하면서 승객을 태우고 외계 도시들을

씽씽 달리고 있을 가능성이다.

(pg 32)

우주생물학자로서 저자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행성은 역시나 화성이다.

인류의 화성 진출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 자원과 노력을 지구를 살리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화성은 단지 더 먼 우주로 향하기 위한 전초기지라고 생각할 수도, 그저 희소한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식민지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화성 진출이 곧 지구를 포기하는, 완전한 이주의 개념은 아닐 것이라 말한다.

그러기에 화성의 환경은 너무도 척박하기에 기술력을 아무리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중에 지구가 소행성 충돌과 같은 우주적 재난에 직면하더라도 인류가 절멸하지 않을 수 있도록 화성을 비롯한 다른 여러 행성에 인류가 진출하는 것은 곧 보험과 같은 개념이지 절대 지구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책의 주제가 우주와 생물이니 가장 궁금하고도 자주 언급되는 질문은 바로 '우주에 정말 우리밖에 없을까?' 하는 질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지구 외에서 생명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이기에 이 질문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까지 지구 밖에서는 지적 생물은커녕 단순한 구조의 미생물도 발견한 적이 없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골디락스 존에 퍼져있는 그 수많은 행성들 가운데 지구와 같은 행성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믿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외계에도 생명체가 있지만 이성을 가질 정도로 진화하지 않았을 가능성, 지적 생명체가 있지만 외부로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거나 행성 간 여행 기술을 보유하지 않았을 가능성, 우리보다 월등한 존재가 있지만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관찰하듯 우리를 관찰하며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 그리고 정말 우주상에 생명체는 오로지 지구에만 있을 가능성까지 아직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과학자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외계인의 존재 여부도 모르지만 만약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생겼을지, 의사소통은 가능할지, 우리에게 친절할지 혹은 적대적일지 등 여러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자는 무엇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그들이 성간 여행을 성공해 우리와 접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과학으로는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답한다.

우주선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다른 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중력을 이해해야 하고, 방문하려는 행성의 구성 성분 정도는 분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은 그 종에게 우주에 대한 통찰력을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다른 종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과학적 방법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과학은 어떤 종이 자연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는 데

체계적인 진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우리와 외계인 사이에 그 밖에 어떤 차이점이 있건 간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무언의 이해를 통해 첫 접촉을 하는 사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pg 211)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도 아직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생물과 무생물을 원자의 구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기에 이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탐구를 깊이 진행할수록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지구라는 생명의 오아시스를 보존하는 것에서부터 먼 세계들에 사회를 건설하고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는 것에 이르기까지 큰 도전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기술적 노력에서 우리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발견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주의 생명을 이해하려는 탐구 자체가 목적이다.

이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발견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자기 인식과 지각에 색을 더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pg 368)

하드커버에 300페이지 후반대로 꽤나 두툼한 책이지만, 내용이 그리 현학적이지 않고 다루는 질문과 답변이 재미난 편이어서 꽤나 즐겁게 읽은 것 같다.

이 책이 우주에 진짜 우리밖에 없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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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 - 나의 첫 양자 수업 프린키피아 2
채드 오젤 지음, 이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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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태생적 문돌이의 양자역학 짝사랑은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식 이해를 잘 못하니 교양서 수준으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해 준다는 책을 보면 여전히 관심이 간다.

이 책 역시 저자의 집 강아지가 알아들을 정도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한다는 도발적인(?) 문구를 보고 덥석 집어 들게 되었다.

읽기 전에는 아무렴 저자네 강아지보다는 잘 알아듣겠지 했었는데 나름 물리학자가 키워서 그런지 강아지의 이해력과 통찰력이 상당해서 생각보다 따라가기 쉽지는 않았다.

서두에 수록된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추천사를 보면, 강아지는 거시 세계를 인간처럼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신비로운 양자 세계를 더 잘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되는 우리의 거시 세계에 대한 경험이 워낙 확고해서 양자의 미시적인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 역시 다른 양자역학 교양서와 마찬가지로 양자의 입자-파동 이중성과 불확정성의 원리, 코펜하겐 해석 등으로 시작한다.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그나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되새기는 느낌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곁가지로 전자의 입자성을 입증해 노벨상을 받은 학자(조지프 존 톰슨)와 전자의 파동성을 입증해 노벨상을 받은 학자(조지 패짓 톰슨)가 서로 부자지간이었다는 재미난 토막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이어서 다중우주 해석이 나오는데, 이 책의 저자는 다중우주 해석에 보다 관대한 편이다.

이전까지 읽은 책들에서는 대체로 검증 불가능성 때문에 다중우주 해석에 비판적인 쪽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어쨌든 양자역학은 실험적으로 완벽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충분히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어지는 양자 제논 효과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하는 개념이었다.

측정이 곧 양자의 상태를 한 쪽으로 고정시키기 때문에 제논의 역설처럼 계속해서 관측을 하면 양자를 특정 상태에 고정시킬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제논의 역설이 양자역학에도 등장해서 반갑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계속해서 익히 들어봤던 양자 터널 현상과 양자 얽힘을 지나 양자 공간이동까지 신비로운 양자 이야기가 이어진다.

양자 공간이동은 이전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이 책을 통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영문으로 '텔레포트'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양자 공간이동이라고 하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차원 문을 열어 이동하는 것 같은 현상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보다는 팩스로 문서를 보내고 원본은 파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양자역학 개념들과는 달리 현상을 알고 나면 오히려 더 실망스러운(?) 부분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이동은 내가 이동하면 내 상태를 온전히 유지한 채로 장소만 옮겨지는 것을 상상하는데, 양자 공간이동을 통하면 여기 있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다른 쪽에 지금의 나와 똑같은 내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미키17'처럼 나랑 똑같은 존재가 저쪽 편에 생겨났지만 원본인 내가 파기되는 마당에 그걸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었다.

9장에서는 가상 입자와 양자 전기동력학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 세 번을 반복해 읽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가상의 입자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없어지는데 이 과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밝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어떤 쓰임이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부분은 관련 내용을 더 상세히 다룬 다른 교양서들을 통해 보충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어렵지만 있어 보이는 '양자'라는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소개된다.

양자역학을 활용해 '무한 에너지', '대체 의학' 등 사람들이 혹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인데, 당연히 모두 사기꾼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사이비 과학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친절한 과학 교양서가 꼭 필요하다 할 것이다.

양자역학의 예측이 일상적인 통찰과 어긋나기는 하지만,

이론 그 자체가 상식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약속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몇 마디의 양자적 표현을 넣는다고 해서,

자유 에너지나 영원한 젊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pg 317-318)

저자의 강아지가 생각보다 똑똑한 탓에 기대했던 것만큼 아주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양자역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살짝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아주 어려운 편은 아니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교양서를 좀 읽어본 사람들에게도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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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봐 바꿔 봐 뾰족뾰족 미운 말 - 5-9세를 위한 첫 대화법 연습책 소중해 소중해 시리즈
사이토 다카시 지음, 가와하라 미즈마루 그림, 권남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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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서 여러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말투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손위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욕이나 은어가 들어간 거친 말투를 어릴 때부터 배워서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물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신경을 톡톡 건드리는 표현들이 가끔씩 들려서 주의를 주고는 하는데, 아이가 좋아했던 책의 저자가 바른 언어생활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해서 아이에게 선물해 주게 되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말투가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매몰돼서 좋지 않은 표현들이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 점을 잘 캐치해 아이들에게 단순하게 바른 표현을 사용하라고 말하는 대신,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좋지 않은 표현들을 좋은 표현들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놀이터에서의 상황을 소개한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 중 하나가 높은 철봉에 매달린다던가, 줄넘기로 이단 뛰기를 하는 등 자신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놀이다.

보통은 누군가가 먼저 하면 다른 아이들도 자기도 할 수 있다며 다 따라 하고는 한다.

그럴 때 잘 따라 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이런 것도 못해?"라며 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는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괜찮아, 원래 좀 어려워."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놀이가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툭툭 내뱉기 쉬운 날 선 표현들을 바르게 바꿔볼 수 있는 방법이 서른 가지나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5-9세를 위한'이라고 적혀 있듯이 그 나이대의 어린이들이 읽기 편하도록 글씨와 그림이 큼직한 편이고, 글의 양도 많지 않아 부모가 읽어주기에도 좋다.

책을 잘 읽는 초등학생이라면 다소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언어 습관이 급작스럽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읽게 하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

아이들 책이지만 내용 자체는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명령조로 말하는 대신 질문을 한다거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는 대신 올바른 행동을 부탁하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해 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찾아보는 등의 노력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아이에게 말을 할 때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즐겨 읽던 책의 작가인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잘 모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언어습관은 한번 굳어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어릴 때 바른 언어습관을 키워주고자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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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파괴자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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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추리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원제는 '가스라이트 효과'로 우리가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는 용어를 학문적으로 처음 정립한 책이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자주 쓰는 용어라 일반인들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면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아는 것 같은데, 이 용어가 정확히 무슨 현상을 의미하고 또 어떻게 하면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여기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현실감을 좌우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가해자는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든 '판단'하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판단이 (실제로는 그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참모습이라고 믿게 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저자가 초반부터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가스라이팅이 곧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호작용으로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가스라이팅 탱고'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치 탱고처럼 가해자가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려고 할 때 피해자가 여기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면 결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가해자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피해자 역시 자신이 가스라이팅에 취약하지 않은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스라이팅을 받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 매우 강하고 똑똑하고 유능하더라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가해자의 인정이 없이는 자신을 훌륭하고 능력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pg 79)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람들의 경우 공감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성이 너무 높아서 가해자가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릴 리가 없어.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스라이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가해자들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공감성이 극도로 낮은 경우가 많았다.

단순하게 가해자들을 소시오패스로 분류하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타인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사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으면 타인에게 그런 언행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가스라이팅 역시 진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지 않고, 그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전문가를 찾는 정신병자의 역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가해자를 총 세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관찰하기 쉬운 유형인 '난폭한 가해자는 말이나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관찰하기도 쉽고, 피해자 역시 객관적으로 가해자가 나쁘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비교적 피해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하지만 '선량한 가해자'나 '매력적인 가해자'의 경우 그 언행이 보다 교묘하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이 피해자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 역시 가해자를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함으로써 피해를 더 키우게 된다.

특히 피해자가 자신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사고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 경우 가스라이팅의 피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문제가 있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은 유지하고 나쁜 측면만 제거할 수 있는가"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pg 178)

저자는 가스라이팅도 그 정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단계의 경우 피해자가 일찍 깨닫기만 하면 좀 더 단호하게 자신과 상대의 관계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질 수 있지만, 2단계, 3단계에 진입하고 나면 이미 심리적인 장악이 너무 많이 진행돼서 스스로의 의지로는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특히 3단계의 경우 중증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정도여서 글로 읽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계별, 유형별 맞춤 대책들이 수록되어 있다.

솔직히 나는 단순히 가스라이팅의 개념이 궁금해서 읽었던 것이라 이 부분은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관계를 끊으면 될 일을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만큼 가해자가 자신의 중요성을 피해자에게 교묘하게 인식시켰기 때문에 피해자는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조차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깨닫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원하는 삶을 만들겠다는 다짐,

가스라이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장 친한 친구와 절교하거나

이상적인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pg 254)

저자 역시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므로 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면 과감하게 끊을 필요가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모든 관계는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라는 것이다.

시작도 나의 의지였듯이 관계의 종료도 내 의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교묘하게 나를 조종하려는 가해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지금은 너무 일반명사화돼서 친구들끼리도 조금만 의견 충돌이 있으면 '어? 가스라이팅이네?'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지만 책에 소개된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의 사례는 정말 숨 막히는 것이었다.

실제 사례들을 보고 나니 함부로 그런 농담을 던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운이 좋아 마흔이 넘게 살면서 아직 한 번도 이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기에 관계가 괴로운 사람들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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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클러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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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전염병으로 인류는 멸망 직전까지 줄어들고 이틈을 노린 대기업들이 정치권력을 모두 독점하며 미래의 서울은 '뉴소울시티'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전작들을 모두 읽었던 입장에서 어떻게 대미를 장식할지 기대가 되어 이번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다.

당연히 기업인들에게 넘어간 도시가 정의로울 리 없으므로 세 작품 모두 디스토피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 책은 시간상으로 앞선 두 작품의 중간에 해당한다.

즉 시간상 순서는 사사기 - 리사이클러 - 쥐독 순이고, 발매 순서는 쥐독 - 사사기 - 리사이클러 순이다.

어떤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겠으나, 저자의 의도대로 발매되었을 터이니 발매 순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작품의 제목인 '리사이클러'는 죽은 사람의 신체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해 잡다하고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생체 로봇이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를 재활용하는 것이어서 주어진 명령에만 복종할 뿐 별다른 의식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은 이 리사이클러와 함께 사건사고가 터지면 사고를 수습하는 직업을 가진 '동운'이라는 남자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초반에 동운은 자신이 췌장암 말기이며 남은 삶이 반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의사는 빨리 체념하고 리사이클러나 되라는 충고를 건네지만 동운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더 이어가려 발버둥 친다.

이미 앞선 두 작품을 통해 '뉴소울시티'를 지배하는 지배세력은 마인드 업로딩 방식으로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동운을 괴롭히는 건 그러한 혜택이 1구역을 살아가는 특권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2구역에 사는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특권 의식에 저항하는 세력이 나타나 끊임없이 사보타주를 이어가지만 죽음을 앞둔 동운에게는 그저 처리해야 할 귀찮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린 통조림이 아니다! 모두 고약한 악몽에서 깨어나라!

탐욕으로 가득한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와라!

(pg 197)

하지만 동운은 1구역에서 있었던 화재를 진압하던 중 금속으로 된 케이스 하나를 몰래 숨기게 되었고, 그 안에 신체를 새롭게 재구조할 수 있는 불로초와 같은 약물이 들어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 약물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운과 체제 전복을 꿈꾸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막고자 하는 정부 세력의 갈등이 작품 중후반의 이야기다.

저자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다면 그 끝이 그다지 해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당연히 시간 순서상 '쥐독'의 세계가 펼쳐져야 하므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은 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저자는 세 작품을 통해 기술을 독점한 자가 자본을 축적하고 정치권력까지 가지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소수의 지배계층은 영생과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 인간들은 정해진 기간을 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죽어가야 하는 비참한 미래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약 200페이지 중반으로 시리즈 중 가장 얇다.

그만큼 전개도 빨라서 금세 읽은 것 같다.

이 작품 내에서도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전작들을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읽고 나면 아무래도 이야기에 더 빨리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무언가 완전히 끝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어서 저자가 마음만 먹으면 동일한 세계관으로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더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저자의 말에서 이제 시나리오를 쓰는 삶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밝혔지만, 또 재미난 소재가 떠오르면 다시 '뉴소울시티'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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