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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농성
구시키 리우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어떤 아이들, <소년 농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앙상한 몸으로 집에서 탈출한 한 여자아이가 발견되면서 전국 초등학교에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가 이루어진다. 놀랍게도 정부의 이 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아이들의 죽음이 드러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가장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방치된 아이들이 당장 오늘 뉴스 사회면 기사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학교의 시선과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숨죽이며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형에 이르는 병》으로 국내 장르 소설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구시키 리우 작가의 최신 출간 작품인 《소년 농성》의 배경이 되는 도로코베 온천 거리에도 그런 방치된 아이들이 가득 모여 살고 있다.
현에서도 손꼽히는 이 온천 거리에는 다양한 숙박업소가 즐비한데, 늘 일손이 부족해서 신원 보증 없이도 인력을 보충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흘러 들어온 여자들 그리고 그녀들이 데려온 자식들까지 모인 특이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천부지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남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 동네 불량소년으로 유명한 마세 도마와 조수 격인 와타나베 게이타로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이런 경찰의 태도에 분노한 동갑내기 두 소년은 동네 식당인 야기라 식당으로 쳐들어간다. 경찰로부터 빼앗은 권총을 가지고 식당에 있는 네 명의 아이들 그리고 주인인 야기라 쓰카사를 인질 삼아 말 그대로 농성을 시작한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소년들이 경찰의 권총을 강탈해 인질극을 벌인다는 자극적인 설정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결국 마음의 잔상으로 남게 되는 것은 도로코베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늦은 시간의 서울의 밤거리를 친구들과 터벅터벅 걷고 있을 수도 있고, 뉴욕 뒷골목에서도 위험한 약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사각지대 속 아이들은 그 자체로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그저 부모가 문제이고, 부모가 잘못 키워서라는 손쉬운 비난과 지적은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난과 지적은 문제의 근본 자체에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고 해결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저자는 범죄라는 금단에 손을 대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포착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병폐에 메스를 가져다 대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에는 그토록 무관심하면서 낮은 출산율로 인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모순 그 자체 아닐까. 부모로부터 방치된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 돼지고기 된장국을 끓이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야기라 쓰카사와 같은 어른들이 이 세상에 조금 더 많아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