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의 도발적 젠더 논쟁
해나 로진 외 지음, 노지양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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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동일한 출판사인 모던 아카이브에서 나온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다. 제법 재밌었으며 이 책역시 비슷한 형태로 주제만 달리한 것 같아 꽤 기대가 됐다. 제목부터 상당히 자극적이지 않은가. 같은 종족의 절반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니. 하지만 책은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다. 솔직히. 사피엔스의 미래가 알랭드 보통같은 인물과 스티븐 핑커 같은 인물로 나뉘어 첨예하게 진짜 당장이라도 싸울 것 처럼 대립했다면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게 약했다. 일단 찬반 패널이 모두 여자인것 부터가 좀 그랬다.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다는데 남자가 나왔어야 하는거 아닌가! 남자는 사회자가 고작이다.

 물론 그게 출판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라는 토론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말이다. 네 명의 인물 토론 인물중 모두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다보니 첨예한 입장차이는 적은 편이었지만 가장 견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커밀 팔리아였다.

 팔리아는 페미니즘이 현대 과학과 생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이것은 오히려 페미니즘을 뒷걸음치고 고리타분하게 만드는 것이며 페미니즘은 현대 과학과 생물학이 내놓은 남여 차이에 대한 결과와 성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새롭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겠지만 자연의 힘과 자연자체를 부정할수 없다는 팔리아의 말은 과학이 보여주는 성의 물질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현대사회에 있어 그것이 차별로 작용하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드러내는 말인 것 같다. 학업에 집중하는 성향이 여성이 앞선다고 해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만을 공부시킬 수는 없으며 남성의 운동능력이 여성에 앞선다고 해서 여성들을 스포츠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어느 부분에 있어 더 나은 성향을 지니곤 있다지만 그 부분에서 부족한 다른 성이 그러한 능력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마치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처럼 자연은 한 쪽성에 특정분야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도 적은 비중으로 그 반대쪽 성에 그 분야에 적은 비중을 두어 만일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같은 여자와 여자같은 남자가 적지만 있는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커밀 팔리아는 페미니스트라면 무척 조심할 부분일 듯한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도 과감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심지어 부러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를 남자에 비해 적지않게 치장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이것이 자신들 간의 성 경쟁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팔리아는 그것은 분명 성경쟁이며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성 경쟁은 어찌 보면 목표대상인 남자의 무지한 인지수준을 넘어서기까지해 남자들은 여성의 외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반면 경쟁자인 상대 여성은 이를 귀신같이 포착한다. 

 팔리아의 의견 외에도 책에는 남여의 관계에 있어 생각할 부분이 여러곳 있었다. 우선 남여 평등시대가 서구 유럽사회와 북미의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진척되었음에도 여전히 사회의 최상위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남성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여성이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사회들 조차도 아직 여성에게 완전히 평등하게 기회와 문을 열었다고 보기엔 그 사회들의 여러 수치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한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보다 훨씬 더 빨리 법적으론 평등권을 획득한 흑인들 역시 유럽및 북미사회에서 백인들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무게추를 돌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남성보다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이며 개방적인 사고에 어울리는 여성들이 이런 성향이 더 요구되는 미래 사회에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전진할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간혹 조직의 최고 위치에는 싸이코 패스같은 성향의 사람이 적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형 뇌를 갖고 이에 따라 관계와 배려를 중시하는 여성의 성향으로 볼때 최고의 위치가 이런 성향을 계속 요구한다면 좀더 시간이 지난다해도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있는 여성의 수는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런 자리라면 여성 스스로가 거부하지 않을지. 아니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라면 이런 다소 남성적인 위계적 조직 자체를 지금으로선 조금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로 바꾸어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미래 사회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남여 차이는 선악의 관계와도 밀접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으로 요즘 사회에서는 악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상당히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생물에게는 악보다는 선이 오히려 희귀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과 선은 상당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생물중 인간은 이를 말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는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는 셈인데 나는 이 선악개념은 다른 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인간이 느끼고 판별한다고 생각한다. 지위든 물질적인 것이든 성이든 그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폭력성과 지나친 이기심, 과도한 추구가 있다면 사람은 이를 악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이 비교적 비폭력적인 편이고 배려와 과정에서 나누는 협력이 있으며, 적당함이 있다면 이는 선으로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정의하는 것과는 달리 어찌보면 악이 보다 정의의 중심이고 그 반대행위가 선이되는 셈이다. 즉, 선이 악의 그림자인 셈이다. 인간이 자신 외의 다른 존재가 무언가를 얻어오는 행위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가치판단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악이거나 선일 경우 자신의 생명과 소속집단의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체는 필연적으로 결핍된 존재인만큼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야 하므로 이와 같은 선악판단은 상당히 본능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동물에 비해 다른 존재로부터 의존성이 덜한 식물이나 무생물에 인간이 선악판단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어오는 과정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생물도 결핍된 존재이므로 피할수 없는 만큼 인간의 선악가치판단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반응이나 감정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보다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인간이 상당히 당연시 되는 악에 비해 어떻게 보면 보다 효율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의지할 수있는 협력이라는 이타성을 향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상당한 스트레스는 주겠지만) 우두머리 침팬지의 다른 영아 침팬지 살해나 암컷들의 독식은 실제 인간사회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압박과 비난을 받기에 실현 불가능하다. 

 선과 악을 말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긴 했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말은 인간의 성에 국한되 선악 판별을 하자면 남성이 맡은 부분이 인간존재 전체가 짊어져야할 악의 부분을 보다 많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종내에서 열량을 얻기 위해 남자가 주로 담당한 것은 다른 동물에 대한 사냥이며 이는 상당한 폭력성을 요구한다. 또한 다른 성을 차지하기 위한 종내 성경쟁이나 이를 위한 지위획득을 위한 경쟁에서 남성이 보이는 과도함과 독점, 비협력성은 상당하다. 반면 여성은 열량획득을 위해 주로 식물을 채집했고, 성경쟁이나 지위경쟁 역시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치열함이 덜하고 훨씬 덜 비폭력적이며 자신들간의 관계 구축이 육아나 남자들이 비운 집을 지키기에 유리했다. 주로 악을 담당해온 남성의 이런 성향은 그 필요성이 직접적으론 줄고 비교적 평화적인 다른 형태로 줄어든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총기난사라던가, 싸이코 패스의 잔혹한 범죄 등의 형태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발현되기도 한다. 물론 소수의 여성 역시 남성의 이런 부분을 갖고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긴 하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자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인간이 어쩔수 없이 지어야할 악을 등에 지고 가야만 하는 존재들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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