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is color of phoebe’s coat “blue”?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소년인 홀든은 매사 불평불만이 많으며, 상대방의 사소한 제스처, 그러니까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집단생활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이나 반응에도 환멸과 거부감을 느끼며 우울해하는 아주 민감한 캐릭터다. ‘학부모의 행색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하는 교장’과 같은 허위와 가식에 질색하는 홀든은 이미 수차례 학교에서 퇴학당한 바 있고,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에서나 낙제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펜시 고등학교에서마저 쫓겨나게 된 처지이다. 애초에 학교를 얼간이가 우글거리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홀든에게, 그것은 연연할 필요 없는 처사이면서도 묘하게 홀든을 쓸쓸하게 만든다. 홀든은 고독을 느끼고 있고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지만 지나치게 예민하고 순수한 그에게 진정 마음으로 와 닿는 인물은 없다시피 한다. 정해진 날짜보다 일찍 학교를 훌쩍 빠져나와버린 홀든은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많은 사건을 겪지만, 홀든이 호감을 느끼게 만든 이라고는 두 명의 수녀들 정도뿐이다.
홀든에게 소중한 사람들도 극히 일부로 한정되어 있는데, 백혈병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남동생 앨리, 어렸을 적 함께 체스를 두며 놀곤 했던 제인 겔러허, 위트 있는 선생 앤톨리니, 사랑스러운 여동생 푀비가 그나마 홀든의 바운더리 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동생 푀비는, 홀든의 서술로 받아들일 때에는 마냥 귀엽고 깜찍한 어린 소녀처럼 느껴지지만, 소설의 후반부에서 마침내 홀든이 푀비를 만났을 때, 독자는 그녀가 홀든의 시선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야무지고 어른스러우며 날카롭기까지 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푀비는 또 다시 학교에서 쫓겨나 한밤중 몰래 집으로 돌아온 오빠에게 도대체 오빠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있느냐고 따져 묻는다. 여기서 독자들은 다시금, 홀든이 집으로 향하는 자신의 여정의 서술 내내, 모종의 역겨움을 느끼지 않는 듯이 묘사했던 이들이라곤 아침을 먹기 위해 찾아간 식당에서 만났던 두 수녀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홀든은 굉장히 머리를 쥐어짜면서 간신히 “앨리”를 좋아하고 “너(푀비)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여동생의 반응은 아주 냉담하고 이성적이다. 앨리는 죽었으며, 그런 것들 말고, “오빠가 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 보라는 것이다. 그 예시로 들어주는 것 또한 추상적인 소망―이를테면 홀든 같은 예민한 소년이 꿈꿀 법한 장래 같은 것,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사람―이 아닌 ‘과학자’나 ‘변호사’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오빠인 홀든이 여동생인 푀비를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푀비가 홀든을 돌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학교에서 쫓겨난 일을 아무려니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자잘하게 엉뚱한 짓거리를 벌이며 방황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는 어딘가 훌쩍 떠나버릴 마음밖에 먹지 않는 홀든보다는 오빠의 퇴학 소식에 경악하고, 무엇이든지 싫어하는 오빠의 성격을 염려하고, 그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부추기는 여동생이 훨씬 조숙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민하고 반항적이며,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 위선을 좀처럼 허용하지 못해 허황된 소망에나 매달리는 듯한 홀든이, 처음으로 현실성 있고 성숙하게 구는 장면이 있다면, 떠나겠다는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푀비를 꾸중할 때이다. 홀든은 아주 거칠고 단호하게 푀비의 부탁을 거절해버리며 그녀를 울리고, 결국에는 자신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야 만다. 어쩌면 여기저기가 뾰족한 홀든은 짧기도, 길기도 한 자신만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질색하는 ‘허위와 가식’ 속에 어느 정도는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숨 막히는 규칙과 사회 내에서의 약속에 따르고 견뎌야지만 한 인격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를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독자는 그간의 홀든의 방황과 그의 변덕과 어리광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동적인 기질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가 진실로 성숙하게 되었는지,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약속은 진심인지 쉽사리 믿음을 갖기가 어렵다. 여전히 홀든은 불안하게 보이고, 학교를 떠나고 오빠를 따라가겠다는 푀비의 선언은, 그녀가 철이 없어서 한 말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훨씬 더 철이 없고 불안정한 오빠가 걱정이 되어 한 말처럼 비추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를 얼간이들의 소굴로 생각하고 무슨 일에든 어떤 사람에게든 경멸을 느끼는 홀든과 달리, 푀비는 아무 문제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자신이 베네딕트 아놀드 역을 맡게 될 연극에도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아이다. 푀비는 홀든에게 귀여운 여동생 이상의 의미를 넘어, 오빠보다도 생각이 깊고, 오빠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강한 수호천사처럼 독자에게 다가오는 듯하다.
홀든은 단단히 삐쳐버린 푀비를 데리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그는 푀비를 회전목마에 태워준다. 홀든은 회전목마를 타고 도는 푀비를 바라보며 벅찬 애정을 느끼는데, 그때 푀비가 입고 있는 코트의 색깔은 하필이면 “파란색”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독교가 유행한 서구 사회에선 파랑이 여성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색깔로 통했다. 그래서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옷에 쓰인 색이 파랑이다. 이러한 파랑의 이미지엔 조용함과 자기 확신, 믿음과 전통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홀든에게 있어 푀비는, 어린 여동생임에도, 마치 어머니처럼 그를 바로잡아주고 감싸주고 심적으로 보호해주는 인물이다. 신성하면서도 무한한 신뢰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파란색이 그러한 푀비의 캐릭터성에 한층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괴테는 자신의 색채학 교재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파랑은 사람의 눈에 특별하게 비추어지며,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눈앞에 좋아하는 어떤 물건이 사라지면 기꺼이 그 물건을 찾고야말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파랑은 이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파랑은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여기엔 강요의 요소가 없다. 자발적인 속성을 띤다.”
파랑의 자발적인 속성의 이미지는 푀비가 가진 건강한 주체성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독자는 홀든이 멀리 떠나버리겠다고 결심할 때와, 푀비가 오빠를 따라서 떠나겠다고 말할 때 같은 인상을 받지 않는다. 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는 홀든의 주체성은 독자를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만들지만, 앞서 언급한 푀비의 야무진 성격, 홀든에게 가지고 있는 그녀의 깊은 가족애, 홀든을 수호하는 살아있는 천사인 듯한 푀비의 이미지는 그녀의 결심이 무모하기 보다는 신성하게마저 비치도록 독자를 이끌고 있다.
스위스의 색채심리학자 파브르와 노벰버는 파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파랑은 심오한 여성의 색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어른들이 선호하는 이 색은 성숙한 느낌을 준다. 파랑은 영혼과 연관돼 있다. 빨강처럼 무엇인가를 낭비하거나 허비하지 않으며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포용하기 좋아한다. 때론 즉흥적으로 보이더라도 거칠지 않다. 심오한 느낌을 지닌 파랑은 품위가 있으면서도 멋진 축제와 같다. 이 축제는 진지하면서도 합리적으로 기획됐다. 파랑이 어두워지면 질수록 우리는 영원 속으로 더욱 깊게 매혹된다.”
물론 푀비만이 일방적으로 홀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좋아하는 것이 극히 드문 홀든에게 있어서 푀비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푀비가 신성함, 영혼과 관련되어 있는 “파란색”의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를 타며 즐겁게 돌고 있는 연출은 홀든이 푀비에게 느끼고 있는 영적인 가치, 순수와 영원과 동심 같은 것을 드러내는 듯하다. 푀비가 홀든을 보호하고 싶은 것만큼이나, 홀든은 푀비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영원히 지켜주고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구해내고 싶을 것이다. “신뢰”, “성스러움”, “자발적인 속성”, “영원”의 키워드가 응축된 “파란색”의 색상의 힘이 푀비가 지닌 성질, 홀든과 푀비 사이의 관계성과,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의미와 가치를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과제로 낸 페이퍼인데,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서 올려요. 다시 읽어보니 그냥 허접한 글이기도 하지만 쓸 때는 넘 재밌게 썼어서...^^
1학기 개츠비 수업을 완전히 말아먹어버렸는데 교수님께서 2학기 호밀밭 수업 때의 정성을 나름대로 좋게 봐주신 느낌이 들어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예절바르고 끈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