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알라딘에서 줄거리를 보고 조이스 캐롤 오츠의 <대디 러브>를 살짝 떠올렸죠. 하지만 <대디 러브>는 아들이 후반부에 접어들어서야 부모 곁으로 돌아오고, 이 책은 초반부터 제프가 집에 돌아옴으로써(책 제목 그대로!) 그 이후의 일련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조명하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는 차이점이 있지요... 돌아온 제프가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 독자들은 지켜보게 됩니다. 저는 <대디 러브>도 무난하게 봤는데요, (참고로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 중에서, 애초에 읽은 작품도 몇 안 되긴 하지만, <멀베이니 가족>을 제일 재밌게 읽었네요. 그 책에 등장하는 매리앤을 참 좋아합니다...ㅎㅎ) 이 책도 나쁘지 않게 그럭저럭 읽었습니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울적해지기도 하고...ㅜㅜ 그렇더군요. 그냥 제 생각이지만 작가도 쓰면서 힘들지 않았을까요? 옮긴이의 말에서인가 보니까 교사들이 이 책을 두고 성적 판타지 측면에서 말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제가 느끼기에는, 작가도 쓰기에 다소 고통스러운 면이 있어서 암시 정도로만 끝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흐려놓았다고 해도 아동 납치, 성폭행 등 극심한 사회범죄를 주제로 펼쳐지는 세상의 피해자의 대변인일 제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묵직해지지 않을 수가 없지요...

 

 저는 책을 읽으면 화자에게만 완전히 몰입하여 그의 목소리만 듣고 그의 눈으로만 바라보느라 또다른 등장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미숙해져버리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제프가 서술하는 방식대로만 사고를 끌어가다보니까, 사방이 적들투성이인 것 같았습니다. 제프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져버렸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성폭행 당했다는 것을 밝힌 후에 제프의 아버지가 제프의 몸에 손을 대는 것도, 제프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꺼려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제프는 이를 자신이 더럽기 때문에 아버지가 혐오하고 있는 중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저는 이러한 불안정한 제프의 생각을 별 작용도 거치지 않고 바로 흡수해버림으로써 아버지의 태도에 충격과 실망을 느꼈습니다. 후에 아버지는 제프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제프를 지켜주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임을 고백하는데 제프는 그렇다치더라도 독자인 저는 아버지의 진심을 읽기도 전에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는데 생각이 모자랐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더군요. 부성애가 가득한 아버지, 제프에게 진정한 우정을 보여주는 친구, 제프를 이해하고 감싸줄 줄 아는 동생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족과 친구의 사랑으로 제프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또 인상깊었던 한 장면을 꼽자면,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린 남동생(막내)은 여동생보다는 조금 철이 없고 순진무구한 편인데 자신을 놀아주는 제프 앞에서 골을 내면서, 오늘 자신이 한 행동 중 가장 남자답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비하하지요.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성 정체성에 큰 상처를 입고 혼란을 겪고 있던 제프는 남동생의 말이 자신을 강타한 듯이 휘청거리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제프의 위태로운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저는 어지간하면 번역의 부자연스러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이 책은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어색함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요?ㅜㅜ 약간...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수업 시간 때 선생님께서 지목을 하시면 저를 포함한 반 아이들이 한 문장씩 해석을 해나가는데 그러한 식으로, 굳이 감칠맛을 살리지 않고 의무적(?!)으로만 번역해낸 문장 느낌이었습니다!ㅜㅜ 좀 더 자연스럽게 손을 봐도 좋았을 텐데요.:) 물론 저는 원문 따위는 읽지도 못하는 초라한 독자입니다만...ㅎㅎ 그래도, 외국의 귀한 작품을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는 한국의 모든 번역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언제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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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지 꽤 오래 되어서 당시 느꼈던 생각들을 죄다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ㅜㅜ 나쁘지는 않은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보이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이렌/보더/앵커/페이크/저지먼트 이렇게 총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복수집행자를 보호하고 집행 현장을 감찰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복수감찰관인, 이 책의 화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도리타니 아야노는 일관성 있게 계속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이렌> 한 편 정도까지는 전개가 뻔하고 신파적인 느낌이 강하긴 해도 그 취지와 감동이 괜찮았는데...ㅜㅜ 이게 다섯 편 씩이나 끌고 갈 이야기는 아닌 듯 해요.ㅋㅋ 어찌 됐든 법의 한계만 새삼스럽고 절실하게 마주보게 되고요... 그렇다고 해결 방안책이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어쩌면 누구도 정확한 답안을 내놓을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이렌>은 정말 괜찮았어요. 읽으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아버지는 나름의 방식대로 아들을 사랑했지만, 아이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외로움을 끌어안아주기에는 서툰 어른이었다는 설정, 아들의 자취를 더듬고자 불 꺼진 방 안에서 오도카니 동영상을 시청하는 장면 등은 어쩌면 이제는 굉장히 진부한 것들이 되어버렸지만...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까지 식상하다고 표현될 수는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서 이전에도 많이도 흘렸었던 빤한 눈물이 다시 한번 쏟아지게 만들더라고요...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부모의 묘사는, 여러 작품에서 몇 번이고 겹쳐도 울음이 나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저는 그렇습니다.

 

 근데 이제 <보더>부터 작위성이 짙어도 너무 짙은 게 아닌가ㅋㅋㅋ 생각이 들더라고요!ㅜㅜ 특히<보더>... 빨강과 파랑...^^; 좀 이게 뭔가 싶은ㅋㅋㅋ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딸아이, 답답해서 속터져 죽을 것만치 아이같은 엄마... 딸이름이 엘레나였나... 특이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일본 장르소설은 특유의 액션(특히 대사)&설정이 있는 것 같아요.ㅋㅋㅋ 되게 애니메이션 같다고 해야 하나...? 애니메이션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아무튼 만화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 맛에 읽을 때도 많지만! <앵커>는 구보타가 그나마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의 지나친 언행을 보면서 사랑하는 동생이 살해 당했는데 그 복수심이 의욕과 원기로 보일만큼 왕성해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ㅋㅋㅋ 약혼자는 아... 그냥 좀 지루한 캐릭터였습니다.ㅋㅋ 약혼자 부분 참 읽기 싫었던...ㅜㅜㅋㅋㅋㅋ <페이크>는 '무서운 할망구'라는 감상 정도로 끝났고, <저지먼트>는, 소년 하야토가(그나마 아야노에게만 마음을 여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는데 <보더> 못지않게 작위적이라서ㅋㅋㅋ 그래도 마지막에 기꺼이 아사할 것이라는 아야노의 말은 좋았습니다... 그나마 벌충이 되었던 대사... 이것 역시 일본스럽기는 했지만!ㅋㅋ

 시간 때우고 싶을 때 이 책의 자극적이고도 대리만족적인(?! 누구나 사랑하는 이에 대한 복수를 애절하리만큼 원하니까요.) 주제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책 읽는 속도가 미친 듯이 느린 저도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가독성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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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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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문예출판사의 <파리대왕>을,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작품의 명성 상 하는 수 없이 접했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알라딘 연신내점에 달려가서 구입해왔지요.:> 오늘 독후감을 쓸 <시계태엽 오렌지>와 함께! 사실 <시계태엽 오렌지>도 학교 도서관에서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의무적인 기분으로 골라 든 작품이었거든요. 그랬는데,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 가벼운 분량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군더더기나 머뭇거림이 없는 세련되고 깔끔한 이야기 전개 등으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혀서 하루만에 읽어버렸네요!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파리대왕>과 더불어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얼른 집의 책꽂이에 소중히 꽂아두고 싶어요.

 

 주인공 알렉스와 패거리들이 사용하는 십대의 은어 번역은 다소 오그라드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ㅋㅋㅋ(이쁜 쩐이라든가, 꼼상이라든가... 아버지를 꼰대라고 하는 건 많이 들어봤어도... 어머니는 꼼상이라고 하던가요?ㅋㅋㅋ)그래도 저는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번역이었다고 생각한답니다.:> 다소 충격적인 상황 전개에 대한 당혹감 때문이라면 모를까 번역 때문에 흐름을 멈추거나 하지는 않았어요!ㅋㅋ 민음사... 나름 세계문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번역 문제 때문에 항상 이래저래 말이 많지요,ㅋㅋㅋ <파리대왕>은 정말 평가가 최악이더군요.ㅜㅜ 무서워서 진즉에 문예출판사 버전으로 읽었습니다.ㅋㅋ 저는 민음사에서 번역된 작품들 중 아주 좋아하는 책들이 꽤 있는 편인데요. 특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정말 좋았고 <다섯째 아이>도 즐겁게 읽었고... <인간실격>도 민음사 판으로 접했고요. 하기야 원문을 모르는 이상, 어느 한 나라의 언어에도 그에 따라 형성되는 문학적 감칠맛에도 아둔한, 우매한 독자인 저로서는 이러니 저러니 트집잡을 건더기가 안 되기는 하지요.:>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의 말투,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밌던데요.ㅋㅋㅋ 말을 참 웃기게 하는 친구더라고요! 저는 어느 작품이든간에 등장인물이 얼마나 매혹적인가?에 가장 집착하는 터라...

 

제가 중학교 다닐 때였나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나? 사회 과목 담당 선생님께서 죄수에게 고문을 가할 때마다 특수한 음악을 틀어놓음으로써, 그 죄수가 나중에는 고문없이 음악만 들어도 기겁, 발광을 하게 만든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 선생님은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으셨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문득 궁금증으로 떠오릅니다. 알렉스는 '루도비코 요법'을 통해서 폭력적인 상황을 자신이 당하게 되거나 가하게 되거나, 머릿속으로 연상을 시키기만 해도 끔찍한 메스꺼움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면서 자유의지를 억압 당하지요. 실험 중 루트비히 판의 교향악까지 폭력적 영상과 더불어 접했기 때문에, 그렇게나 즐기던 '교양있는' 음악조차 누릴 수 없게 돼 버리고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음악에까지 영향 미치도록 박사 측에서 고약한 짓거리를 저지른 데 대해 절규하던 알렉스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요. 저는 시나 음악에 열광과 집착을 드러내는 작중 인물들을 보면 뭔가 사이코패스 같고, 오싹하면서도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음,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내쫓긴 아이들>이나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 정유정의 <종의 기원>등등의 캐릭터들이 연관성 있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셋 다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들... 재밌습니다... 아무튼 알렉스는 연구대상이기는 한 것 같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결벽증도 있는 것 같고?! 묘사에 의하면 신체 건장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머리도 좋은 편이고 음악적 취향으로도 알 수 있다시피ㅋㅋㅋ 나름 교양도 있는 것 같은데 그의 극악무도한 비행이란...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꿈인 사람으로서, 알렉스가 작가의 '홈'에 쳐들어가 <시계태엽 오렌지> 원고를 파괴할 때는 진심으로 가슴이 무너졌습니다.ㅜㅜ 뭐 이런 것은 범죄 축에도 들지 않게끔, 알렉스는 폭행, 절도, 강간, 살인까지 저지르는 망나니이지만요!

 

'루도비코 요법'으로 인해서 사회에 도로 풀려나게 된 이후에도 끔찍이 고통당하던 알렉스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려버리는데요... 이를 계기로 알렉스는 몹쓸 증상이 낫기는 하지만 다시 비행 청소년으로 돌아가는 듯하다가 결말 즈음에는 '철이 들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애 자체가 완전히 싸이코패스는 또 아니었던 것도 같고ㅋㅋㅋ 애들은 놔두면 언젠가는 다 알아서 철든다 이건가 싶기도 하고ㅋㅋㅋ 선을 위해서 국가 권력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비인간적인 폭력을 휘두를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는 확실히 독자에게 많은 고민을 가지도록 하지요... 2학년 2학기 때 교양수업 시간 때 내내 토론했던 '법은 필요한가?'하는 주제와 통하는 데가 있었기 때문에... 제게는 유난히 강렬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법, 질서, 규칙, 그리고 인격을 가진 개인... 아, 이 책을 1년만 더 빨리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교양수업, 89점으로 A학점을 놓쳤거든요! <시계태엽 오렌지>를 끌어와서 논설문 리포트를 제출했더라면 그 1점을 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명작은 괜히 명작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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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솔직히 밝히자면 어떻게 쓰여져 있기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냐!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네요. :) 한 문장으로 평을 일축한다면, 신문을 소설화한 느낌입니다. 문장의 기교없이, 하기야 다루고 있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이런" 이야기를 굳이 수려한 문체로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겠어요. 카메라 렌즈가 사물을 무덤덤하게 담아내듯, 작품에서 성인과 어린 소년, 소녀와의 끔찍한 성관계는 건조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집니다. 아니 '묘사', 라기보다는 '고발'에 가까운 문장들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싸늘하지만 분노에 휩싸인 '고발'. 

 

아동성매매 실태를 파헤치는 모든 장면이 처참하고 공포스러웠지만, 호르몬제를 치사량을 훌쩍 넘어서면서 강제로 주입당하고 결국 코와 입에서 핏물을 내뿜으면서 죽은 '타놈'은 너무나 가여워 마음이 괴로웠네요. 폭력과 굶주림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음으로 내내 애교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던 아이인데... 에이즈에 걸려 쓰레기장으로 버려지고, 열흘을 걸어 찾아간 고향마을에서도 버림을 받고 마침내 개미 떼에게 먹히면서 아버지의 손에 불에 타 죽은 '야이룬', 일본인 소년 '쓰바사'의 이식수술을 위해서 산 채로 심장을 적출 당했을 '센라' 등... 또한 결코 죗값의 벌충이 될 수는 없겠지만 '충'도 '로베르'도 '장'도 어른들의 성적 노예였다고 생각하면 암담해집니다.

 

타이... 해외 자체를 가 본 적 없지만 언젠가 여행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해도 저와는 무관한 듯 멀게만 느껴질 어느 낯선 국가... 우리와 똑같은 인격을 지니고 있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이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좀먹어들어가면서 스러진다고 생각하니 평화나 구원의 의의는 과연 무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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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는 한참이 되었는데...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뒤늦게서야 독후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어요.

 

제목과 표지를 보았을 때는 상당히 야한 내용이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언급만 드리우는 정도고 묘사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의 악마>라는 제목이 아주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나'와 마르트의 거침없는 사랑 방식이 쉽게 타오르고 철이 없는 꼭 그만큼, 오히려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맹목성을 띠고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특히나 마르트의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후반부에 '나'가 어린애 같은 어리광을 부리느라고 마르트를 상당히 못 살게 구는 장면이 있는데 이마저도 묵묵히 감내하듯 끌어안아주는 소녀의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한편... 마르트라는 캐릭터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강인함이 결코 그녀를 유약한 여성으로 보이게만은 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할까요? 정독 전, 뒤표지의 줄거리를 무척 대강 훑는 바람에, 저는 어린 소년인 '나'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고는, 두 사람의 나이 차가 한 스무 살쯤은 나는 설정일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르트도 '나' 못지않게 매우 어린 소녀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마르트의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반대로 고집스럽고 단호한 면모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매혹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와 마르트의 사랑이 충분히 지고지순하고 순진무구한 형태나 빛깔을 띠었다고 생각합니다. 멋모르는 쾌락과 호기심에 돌발적인 행동들을 보일 때마저도 순수한 치기의 일종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마르트가 없는 마르트의 집에서, 그녀의 친구인 스베아를 끌어들여서 조그만 애무를 반복하며 쾌락에 사로잡혔던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스베아를 탐하고 있으면서도 마르트를 쾌감에 중점에 놓음으로써 정신적으로 유희를 즐기는 것 같던 제멋대로의 '나'가 성욕에 몸이 단 듯 방탕한 꼬마 악마처럼 생각되지만은 않았어요. ;)

 

<육체의 악마>를 집필한 레몽 라디게는 참 어린 나이에, 그러니까 요절을 한 작가더군요. 인터넷을 대강 찾아다 읽어보니, 장 콕토와 각별한 친분 관계였던 것 같은데, 작년 7월달에 장 콕토가 쓴 <앙팡 떼리블>을 접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앙팡 떼리블>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랍니다! 소설보다는 소설의 형태를 빌려 쓴 문체 선명하고 이미지 아름다운 서사시처럼 느껴졌었지요. 언제 한번 날을 잡아서 <앙팡 떼리블>도 <육체의 악마>도, 다시 마음 깊이 음미하듯 재독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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