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 읽은 지는 한참이 되었는데...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뒤늦게서야 독후감을 쓰게 되었습니다. :)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어요.

 

제목과 표지를 보았을 때는 상당히 야한 내용이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언급만 드리우는 정도고 묘사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의 악마>라는 제목이 아주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나'와 마르트의 거침없는 사랑 방식이 쉽게 타오르고 철이 없는 꼭 그만큼, 오히려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맹목성을 띠고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특히나 마르트의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후반부에 '나'가 어린애 같은 어리광을 부리느라고 마르트를 상당히 못 살게 구는 장면이 있는데 이마저도 묵묵히 감내하듯 끌어안아주는 소녀의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한편... 마르트라는 캐릭터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강인함이 결코 그녀를 유약한 여성으로 보이게만은 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할까요? 정독 전, 뒤표지의 줄거리를 무척 대강 훑는 바람에, 저는 어린 소년인 '나'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하고는, 두 사람의 나이 차가 한 스무 살쯤은 나는 설정일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르트도 '나' 못지않게 매우 어린 소녀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마르트의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반대로 고집스럽고 단호한 면모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매혹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와 마르트의 사랑이 충분히 지고지순하고 순진무구한 형태나 빛깔을 띠었다고 생각합니다. 멋모르는 쾌락과 호기심에 돌발적인 행동들을 보일 때마저도 순수한 치기의 일종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마르트가 없는 마르트의 집에서, 그녀의 친구인 스베아를 끌어들여서 조그만 애무를 반복하며 쾌락에 사로잡혔던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스베아를 탐하고 있으면서도 마르트를 쾌감에 중점에 놓음으로써 정신적으로 유희를 즐기는 것 같던 제멋대로의 '나'가 성욕에 몸이 단 듯 방탕한 꼬마 악마처럼 생각되지만은 않았어요. ;)

 

<육체의 악마>를 집필한 레몽 라디게는 참 어린 나이에, 그러니까 요절을 한 작가더군요. 인터넷을 대강 찾아다 읽어보니, 장 콕토와 각별한 친분 관계였던 것 같은데, 작년 7월달에 장 콕토가 쓴 <앙팡 떼리블>을 접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앙팡 떼리블>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랍니다! 소설보다는 소설의 형태를 빌려 쓴 문체 선명하고 이미지 아름다운 서사시처럼 느껴졌었지요. 언제 한번 날을 잡아서 <앙팡 떼리블>도 <육체의 악마>도, 다시 마음 깊이 음미하듯 재독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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