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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와서 반가움과 동시에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손수건과 멜론이라니. 셔닐 손수건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속살 노란 멜론은 어떤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건가 하면서 책 속으로 금세 빠져들었다.
성격, 직업, 생활패턴이 각자 다른 50대 후반의 동창관계인 세 친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변 인물들 간의 소소하면서도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글쎄, 언뜻 생각하면 이런 관계가 있을 수도 있나 하는 의문이 생김과 동시에 일본이니까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다이내믹한 이벤트나 반전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부분도 있었지만 다미코 같은 경우,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 모모치가 이혼 후에 스스럼없이 다미코를 대하며 친구처럼 지내고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하면서 버거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나도 5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 인간관계가 어느 쪽으로 치우칠 것인지, 성격상 버겁고 부담되는 관계는 만들지 않겠지만.
엄마 가오루와 딸 다미코의 관계는 안타까우면서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가오루는 오히려 다미코의 친구인 리에와 더 애틋한 관계라고 느낄 정도로 다미코와는 친밀하지 않다고 할까, 엄마와 딸인데도 속내를 말하지 않고 서로 뭔가 서운한 게 쌓였지만 그 관계는 변하지 않고 변할 것 같지도 않아 서글프다.
인물들의 성격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고 변화되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하고 치유되기도 한다. 함께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인 만큼 세 동창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내면서 서로의 안부와 생활을 계속 궁금해하는데 그녀들이 이렇게도 우정을 길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생활방식에 대해 터치하지 않고 깊게 관여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에게 너무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거나 상대를 너무 의지하는 것은 부담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딱 그만큼의 적정거리 유지. 어렵지만 지켜야 하는 거리다.
그런 면에서 나는 등장인물 중 마도카의 변화가 가장 기뻤다.
리쿠토가 아니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별을 두려워했던 그녀가 이별 후에 긍정적으로 변했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예비 며느리가 선물한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삶의 소소한 기쁨을 다시 찾은 가정주부 사키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아픈 시어머니를 보러 혼자 꿋꿋이 요양원에 가고, 아들 둘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며 정원 손질도 게을리하지 않는 전형적인 가정주부. 리에의 끝없는 수다와 자랑질을 받아주고, 집에 불쑥 들이닥치는 상황도 감내하는 어쩌면 친구로 삼고 싶은 가장 좋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지 싶다.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 리에. 이런 친구가 내 주변에 있다면 난 어땠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활달한 성격에,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자기애가 넘치는, 나쁘게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아니나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안겨줄 것 같긴 하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수다스럽긴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그녀가 얄미운 캐릭터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면 된다.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