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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아토다 다카시 총서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아토다 다카시는 최근에 소개된 작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래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이 1978년, 1979년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만, 이 세 권의 책에 실린 작품들은 너무나 뛰어나다.

아토다 다카시는 단편 '방문자'로 1978년 추리작가협회상을, 단편집 <나폴레옹광>으로 1979년 상반기 나오키상을 받았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단편의 명수이며 '기묘한 맛'을 내는 작품을 쓰는 독창적인 탐구자다. '기묘한 맛'이라는 말을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에도가와 란포는 이것을 "천진난만하며 사랑스럽고, 더불어 은백색의 서늘한 잔혹미, 엉뚱하고 유들유들한 유머가 있는 천진난만한 잔학성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단편소설의 참맛은 치밀하고 압축적인 구성과, 결말에서 통쾌할 정도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에 있다고 하겠는데 아토다 다카시는 재치 있는 반전을 구사하는 차원을 넘어 '기묘한 맛'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뛰어난 작가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는 말하자면 요즘에도 여름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괴담과 비슷한 것인데 논리에 맞지 않게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도시괴담과 비교해서 훨씬 개연성이 높고 품격이 있으면서도 도시괴담보다 상쾌한(?) 뒷맛을 남긴다. 피가 낭자하는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속 울렁거리는 역함이 아니라 등골이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

흔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상투어를 많이 쓰는데 아토다 다카시의 작품은 분량이 적은 단편인데도 반전이 두 번, 세 번, 여러 번 나온다. 그것이 참으로 놀라운 점이다. 한두 쪽을 남겨놓고 반전이 나와서 "오오! 그랬단 말이야?" 하고 놀라게 되는데 방심하고 있다가 마지막 두 줄에서 또 반전이 나온다.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러니 귀신이 나오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공포 영화는 비교할 수가 없지.

아토다 다카시의 작품은 확실히 재미있다. 읽고 나서 실망하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 밤에 친구들과 바닷가에 둘러앉아 있을 때 한 친구가 "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하면서 말을 꺼내는 그런 이야기다. 오오, 정말 기대가 된다.

<나폴레옹광> 뒤표지에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쓴 서평에 이런 말이 있다.

"조금씩 슬금슬금 몽롱하게 만들면서 예기치 않게 그렇게만은 결말을 맺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엔딩이 매번 기다릴 때, 그러면서 그 엔딩이 점점 더 꿈을 꾸는 것처럼 허우적거릴 때, 나는 고개를 들 용기를 잃어버렸다. ... 아아, 제발 끝나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책. 반드시 순서대로 읽으실 것."

그렇다. 읽으시라.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을 뛰어난 작품으로 가득찬 알찬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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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까닭은 뻣뻣한 책장과 빡빡한 제본 탓이 아니다
    from 철썩이는파도같은책 2010-07-29 11:03 
    아토다 다카시는 최근에 소개된 작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래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이 1978년, 1979년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만, 이 세 권의 책에 실린 작품들은 너무나 뛰어나다. 아토다 다카시는 단편 '방문자'로 1978년 추리작가협회상을, 단편집 <나폴레옹광>으로 1979년 상반기 나오키상을 받았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단편의 명수이며 '기묘한 맛'을 내는 작품을 쓰는 독창적인 탐구자다. '
 
 
 
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다이어트, 성형수술, 기름 유출, 광우병, 블로그... TV 뉴스나 신문에서 자주 보는 과학의 주제들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지배한 기술문명에 대한 치열한 담론과 과학, 기술문명, 미디어, 그리고 수용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즉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술문명의 주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이 문명의 '관객'이 될 수 있는가?" 그것보다 "주인공도 아닌, 하필 '관객'이 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며 지은이가 던진 질문은 관객임을 모른 채 문명의 현상을 멍하니 또는 맹목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자기 반성이라는 답을 끌어낸다.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에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콜라병으로 보여 주었더니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이 모두 콜라를 찾더라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지은이는 이 문명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기계적으로 지각되어 온 문명의 내용을 성찰적 이성을 발휘하여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전시회, TV 뉴스, 컴퓨터 모니터 등 이미지로 전달되는 기술문명의 내용에 집중한다. 이미지(영상)와 음성으로 전달되는 내용은 관객에게 하나의 감정적 상태를 구성하는데 그 기법은 너무나 익숙하고 효과적이어서 냉철한 비판과 비평, 즉 이성을 최대한 발동해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수술대에 오른 환자의 몸을 가르고 내장기관을 보여주거나 광우병에 걸린 소가 비틀거리는 장면, 기름 범벅이 된 새와 기름을 닦아내는 사람들의 모습, before and after를 동시에 띄운 성형외과의 광고 화면 등을 보는 사람은 자극적이 시각 이미지가 넘쳐나는 영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에 대한 판단을 흐린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가 특히 과학 기술문명을 바라볼 때 그 뒤에 숨은 '반전'을 알아채는 날카로운 시선을 지니라는 교훈을 준다는 점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종류의 말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의 이면에는 심하게 말하면 말장난과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으며, '미드'의 인기 종목인 메디컬 드라마와 수사 드라마에는 타인의 몸, 즉 인체와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통제권의 문제가 가려 있고, 조류독감에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불쾌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이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특히 이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특히 중요한 자질이지만 현대의 기술문명을 실시간으로 수용하며 보듬어 안아야 할 우리는 생존과 직접 관련한 '기술'인 것 같다. '더 좋은 기술과 더 나은 문명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는 지은이는 과학기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과학기술 혹은 기술문명에서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그 속에서 집착과 욕망을 알아채라고 한다. 왜냐하면 과학도 인간의 활동이고 문명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즉 반과학적 세계관이 아닌 비관적 과학관이 필요하며 그것이 더 나은 사회와 문화를 탄생시킬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신문에 났으니까, 드라마에 나오니까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린 사실이 많았다. 그것이 근거 없는 타당성을 강화하고 사실화할 때 안일한 선택과 취향과 감상 태도로 굳어버린다는 것도 깨달았다. 숨겨진 사실을 파헤치는 순수한 탐구심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과학문명을 위해서라도 지은이의 가이드는 유용할 것 같다.

따옴표와 작은따옴표와 괄호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집중과 이해에 방해가 되었다는 트집과 더 쉬운 말로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명확한 논지와 적확한 강조를 위해 사용한 수단이라고 이해했다. 다만 몇몇 주제에 대한 태도는 평소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달랐는데(특히 '광우병 공포') 다양한 의견을 듣는 즐거움도 되었다. 문명의 관객은 늘 깨어 있고 강력한 비평적 태도로 지적할 줄 아는 무서운 관객이 되어야겠다. 물론 무대 위에 함께 올라 배우와 어울려서 훌륭한 연극을 만드는 관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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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

사랑을 해본 사람

사랑하고 있는 사람

쉽게 말해 사랑이라는 궤도를 놓고 보았을 때 인생의 어느 곳 어느 때에 있다고 해도 읽을 수 있는 책이며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는 무엇을 하든 심정이 어떻든... 읽어도 큰 도움과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의문과 괴로움과 가치 등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솔직하고 담백하고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다.

책표지에 '소설'이라고 떡하니 써놨는데 '에세이지만 소설만큼 재미있다'고 해야 정확하다.

데뷔작이란 말을 듣고 놀란 다음 그때 나이가 불과 스물다섯이었다는 말을 듣고 좌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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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국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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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에 820쪽. 두툼한 두께. 연애소설로만 읽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활>은 가슴 찡한 연애소설, 종교서, 사회과학서, 그리고 자기계발서 30권을 합친 듯한 감동을 준다.

1부에서 네흘류도프와 카츄샤는 어떤 연애소설의 주인공 못지않은 선남선녀로 나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절과, 또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의 순간을 보여준다.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했던 예기치 못한 키스는 순결하고 순진해서 아름다웠지만, 네흘류도프가 군대로 돌아가면서 카츄샤에게 들르지 않고 지나친 그 기차역은 깜깜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네흘류도프가 탄 기차를 따라, 울면서 플랫폼 끝까지 뛰어가는 카츄샤의 모습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긋난 사랑의 여주인공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뒤로 젖히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순진한 청년과 순박한 처녀의 사랑은 한때 햇볕에 잘 마른 하얀 앞치마처럼 순수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흙탕물에 떨어진 듯 타락한다. 서투른 사랑은 하룻밤의 격정으로 끝나고 네흘류도프는 무책임하게 카츄샤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그후 네흘류도프는 유부녀와 불륜이나 저지르고 허영에 가득 찬 재산 많은 샌님이 되고, 카츄샤는 창녀가 되어 몸을 망친다.

책을 읽는 내내 네흘류도프의 모습에서 싯다르타의 모습이 겹쳐졌다. 세상의 부조리에 괴로워하면서 해법을 찾아나서는 쓸쓸한 구도자의 모습이. 싯다르타는 자신의 내부로 핵심을 모아갔지만 네흘류도프는 문제가 사회의 불합리함에서 나온다고 보고 작은 혁명을 꿈꾼다. 물론 그 혁명은 그 자신의 내면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에서 비롯된다. 네흘류도프는 한때 육체적인 쾌락에 정신을 팔려 범한 여자가 시간이 흐른 뒤 완전히 망가진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건 아니다”라고 자각한다. 사치와 허영 덩어리로 살아온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연민과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배심원석에 앉아 누명을 쓰고 유죄를 선고받는 카츄샤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네흘류도프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자신에게 무언가가 일어났구나 하는 자의식이었다. 뭔가 중대하고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깨달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다가온다. 번개를 맞아야만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아니듯.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의 주변 인물들이 펼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짤막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풀어내어도 몇 십 쪽은 될 만큼 곱씹어 볼 메시지가 많았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인들의 삶의 다양한 형식, 이를테면 의복, 음식, 건물, 귀족사회와 농민사회의 대비 등은 너무나 자세히 묘사되었고(아마 책의 30퍼센트 이상일 듯하다) 그 정밀함이 놀라워서 마치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천천히 훑는 듯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였다. 물론 등장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문장은 더욱 소름끼치도록 절절했다.

톨스토이는 109년 전에 쓴 이 소설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삶이 끝나려고 한다는 예감에 힘을 얻어 마지막 장편소설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11년이었다. 그것은 마치 깨달음을 얻으려는 간절한 구도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탐구하여 써낸 작품은 과연 빼어난 예술작품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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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
백문임 지음 / 책세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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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귀신' 하면 나는 우선 어릴 적에 TV에서 본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까만 밤, 안개 자욱한 산 속의 어느 곳, 생각지도 않게 공동묘지가 있고 뿌연 안개가 깔린 가운데 멀리서는 여우 우는 소리가 들리는 흉흉한 장면. 수많은 무덤 중 어느 하나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수박 가른 듯 반으로 쩍 쪼개지면 자욱한 안개 속에서 스르륵 일어서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 한달쯤 잠을 못 잔듯 눈가는 너구리처럼 다크서클이 또렷하고 피를 묻힌 듯 빨간 입술은 귀까지 이어진 듯 길게 찢어져 있다. 여차하면 흐흐흑 하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 여자들은 어찌 그리 모델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던지. 게다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그녀들이 모두 '처녀'라고 알아챌 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다.

어쨌든 그 이미지와 '귀신'이라는 단어는 착 달라붙어서 지금도 그저 어디서 '귀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레 '처녀귀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왜 그럴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보게 된 지금도, 소위 '공포영화'를 볼 때면 여러가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령 처녀귀신은 어떻게 그리 높은 나무들을 휙휙 날아 넘어다닐 수 있을까? 왜 낮에는 멀쩡한 처녀의 모습이었다가 밤만 되면 무덤을 파헤쳐 갓 죽은 사람의 간을 꺼내 먹을까? 왜 처녀귀신이 나타날 때면 갑자기 바람이 불고 촛불이 꺼질까?

궁금증들의 해답이 이 책 안에 있었다.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공포영화의 특질을 그 핵심 형상인 여귀를 중심으로 규명하고, 근대 대중문화에서 '공포'의 코드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먼저 공포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친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친밀한 것'이 억압되면 '두려운 낯섦'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일상생활에서 체험되는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정상적'인 것을 권장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는 '과잉 억압'이 발생했고, 근대 가족 제도에서 여성의 삶은 '현모양처'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공포영화라는 장르에서 '괴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3장 2절 '훈육의 서사에서 공포의 서사로-전근대의 귀신담과 공포영화'였다. 위에서 말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여귀의 내력과 본질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공안 이야기에서 공포영화로 변이했다는 이야기의 예로 5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장화홍련전>을 든다. '공안'은 국가 공공기관의 문서를 카리키는데 곧 관청에서 조사를 요하는 사건을 말한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의 귀신은 사또 앞에 나타나 자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고하고 그것을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이야기 구조다. 이때 여귀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죽은 당시의 외모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며 외모가 곧 억울한 죽음의 '증거물'인 셈이다. 이러한 공안 이야기의 목적은 '교훈과 경계'이므로 여귀의 억울한 사정이 사또의 노력으로 밝혀지면 곧 단정한 모습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여귀는 양반집 딸로 환생하여 행복하게 살고, 사또는 높은 관직에 올라 백성을 잘 다스린다는 후일담도 더해진다. 그런데 이런 공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바뀐다. 권선징악과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를 훈육하는 도구로서의 여귀가, 한국영화에서 공포영화의 장르적 장치로서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를 하는 주체가 되어버린다. 즉 '비정상적'인 존재 자체가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고전 공포영화의 소재는 공안 이야기뿐만 아니라 처첩 갈등이나 고부 갈등 같은 가정 비극이나 배신당한 사랑 등이 있었다.


전래의 귀신담이 공포영화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이 정착되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며 눈초리가 표독스럽고 기다란 손톱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공중을 날아다니거나 재주를 넘기도 하며 벽을 통과한다. 자신을 죽인 원수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난폭성을 지닌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을 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원수를 응징한다. 여귀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처음에는 범죄에 대한 증거의 기능을 가졌다가 나중에는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귀신 퇴치'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여귀의 복수 행위가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것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유없이 사람을 해치니 퇴치를 해야겠고, 여귀는 더욱 무시무시해지고 결국 고전 공포영화에서는 귀신은 공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현대 공포영화의 특성은 더욱 정밀하고 풍부한 시각을 제공한다. 고전 공포영화에서 정착한 여귀는 현대 공포영화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특히 여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여성) 주인공이 여귀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라는 해석은 탁월했다. 여성 주인공과 여귀가 등장하여 교감하면서 소위 '페미니즘의 시대'이자 '소비의 시대'였던 1990년대 초중반의 상황과, 반성과 기억이 강제되었던 IMF 관리 체제, 그리고 급속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의 여성의 상황을 담론화하는 장이 바로 현대 공포영화라는 것이다.


삶의 모습만큼 다양한 공포영화의 소재, 변화하고 커지는 장르적 속성들, '원한풀기-복수'라는 단순한 구조를 넘어 현대 심리학과 범죄학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무수한 모티프와 현란한 영화 기법 탓에 하나의 맥락을 꿰기가 쉽지 않은 현대 공포영화에 대해 명쾌한 관점과 넓고 깊은 감상법을 제시한 책이다. 그리고 끝까지 여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은 덕분에, 혹시 으슥한 골목에서 흰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과 마주친다면 인사라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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