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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ㅣ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국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반양장에 820쪽. 두툼한 두께. 연애소설로만 읽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활>은 가슴 찡한 연애소설, 종교서, 사회과학서, 그리고 자기계발서 30권을 합친 듯한 감동을 준다.
1부에서 네흘류도프와 카츄샤는 어떤 연애소설의 주인공 못지않은 선남선녀로 나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절과, 또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의 순간을 보여준다.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했던 예기치 못한 키스는 순결하고 순진해서 아름다웠지만, 네흘류도프가 군대로 돌아가면서 카츄샤에게 들르지 않고 지나친 그 기차역은 깜깜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네흘류도프가 탄 기차를 따라, 울면서 플랫폼 끝까지 뛰어가는 카츄샤의 모습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긋난 사랑의 여주인공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뒤로 젖히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순진한 청년과 순박한 처녀의 사랑은 한때 햇볕에 잘 마른 하얀 앞치마처럼 순수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흙탕물에 떨어진 듯 타락한다. 서투른 사랑은 하룻밤의 격정으로 끝나고 네흘류도프는 무책임하게 카츄샤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그후 네흘류도프는 유부녀와 불륜이나 저지르고 허영에 가득 찬 재산 많은 샌님이 되고, 카츄샤는 창녀가 되어 몸을 망친다.
책을 읽는 내내 네흘류도프의 모습에서 싯다르타의 모습이 겹쳐졌다. 세상의 부조리에 괴로워하면서 해법을 찾아나서는 쓸쓸한 구도자의 모습이. 싯다르타는 자신의 내부로 핵심을 모아갔지만 네흘류도프는 문제가 사회의 불합리함에서 나온다고 보고 작은 혁명을 꿈꾼다. 물론 그 혁명은 그 자신의 내면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에서 비롯된다. 네흘류도프는 한때 육체적인 쾌락에 정신을 팔려 범한 여자가 시간이 흐른 뒤 완전히 망가진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건 아니다”라고 자각한다. 사치와 허영 덩어리로 살아온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연민과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배심원석에 앉아 누명을 쓰고 유죄를 선고받는 카츄샤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네흘류도프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자신에게 무언가가 일어났구나 하는 자의식이었다. 뭔가 중대하고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깨달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다가온다. 번개를 맞아야만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아니듯.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의 주변 인물들이 펼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짤막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풀어내어도 몇 십 쪽은 될 만큼 곱씹어 볼 메시지가 많았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인들의 삶의 다양한 형식, 이를테면 의복, 음식, 건물, 귀족사회와 농민사회의 대비 등은 너무나 자세히 묘사되었고(아마 책의 30퍼센트 이상일 듯하다) 그 정밀함이 놀라워서 마치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천천히 훑는 듯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였다. 물론 등장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문장은 더욱 소름끼치도록 절절했다.
톨스토이는 109년 전에 쓴 이 소설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삶이 끝나려고 한다는 예감에 힘을 얻어 마지막 장편소설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11년이었다. 그것은 마치 깨달음을 얻으려는 간절한 구도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탐구하여 써낸 작품은 과연 빼어난 예술작품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