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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4월
평점 :
[도서 개요]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에 경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뻔뻔함에 호응하기 위해, 조금 더 심플하고 무심한 어투로 툭 소개를 내놓아보고 싶다. 이 책은 세 개의 소설이 수록된 연작소설집인데, 작가와 동명의 주인공인 '오한기'라는 인물이 육아라는 공통된 테마를 가지고 등장한다. 모티프는 육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육아……육아가 맞다.
그러나 오한기의 소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자꾸만 더욱 더 한국인이 된다. 무슨 말이냐고? 한국인들이 말의 서두를 열 때 흔히들 연달아 쓰는 감탄사와 부사 둘의 조합이 있다. "아니 근데 진짜." 아니 근데 진짜 애는 언제 돌봐요? 아니 근데 진짜 이게 맞아요? 아니 근데 진짜 어디까지가 소설이에요? 아니 근데 진짜, 를 연발하게 만드는 웬만한 황당무계함은 여기 대부분 모여 있다. 나보다 먼저 당한 것은 아무래도 이 책의 발문을 쓴 김화진 작가다. 오한기를 처음 접해보는 나는 그의 약 오른 심정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발문으로 먼저 오한기를 알게 되고, 뭐길래 그래?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읽다 보니 나도 슬슬 약이 오르고 차오르는 황당함에 물음표를 그려 넣다가 어느새 책의 귀퉁이를 접게 되었다. 이 약 오르는 기쁨을 나만 알 수 없다, 육아 소설의 탈을 쓴 노동 소설, 소설의 탈을 쓴 에세이, 리얼리즘의 탈을 쓴 환상 소설, 현대의 탈을 쓴 고전의 맛을 보시라. 소시민 봉이 김선달의 블록버스터는 못 되는 좌충우돌 우당탕탕(이 단어마저도 오한기에게 주기에는 어쩐지 생기 넘친다) 미스터리 육아 활극! 개봉박두! 그런 마음으로 우다다 타자를 치게 되었고 소개는 이게 끝이다. 나머지는 작가와 소설이 말해줄 거다. 펼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소설 속 오한기가 그러했듯 그건 운명의 몫일지도.
[감상]
책을 읽으며 절로 내뱉게 되는 일종의 감탄사는 '이게 되네'였다. 아니, 이런 것도 (육아) 소설이 되네. 이런 것도 일이 되네. 아니, 이게 말이 되네?
주인공 '오한기'는 딸 '주동'과 아내 '진진' 그리고 오한기 본인으로 구성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이다. 딸이 숲 체험을 할 동안 주차를 해 놓고 소설을 쓰려다가 서울에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음을 깨닫고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그리고 주차 유목민 생활 끝에 주차의 지혜를 전수하는 블로그 포스팅 부업을 구하고 포스팅 부업의 단물이 빠지자 새로운 일을 찾아 역시 유목민처럼 전전한다. 말하자면 공간을 찾고자 전전긍긍하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공간을 찾아 전전하는 도시의 소시민이다. 오한기가 주차 공간을 찾았다면, 아니 주차를 해놓고 남는 시간 동안 본업인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심적 공간을 찾아 헤맸다면 나는 말할 공간을 찾아 헤맸다. 대학생-청년-에게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은 참 많이도 찾아온다. 온라인 팀플 회의를 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어 번 이상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오프라인 공간에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온라인 공간으로 접속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혼자서는 스터디룸 예약도 불가능해서 정작 혼자서도 당당하게 영단어를 외우고 듀오링고를 하고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없는 것이다. 타지에 나와 있고 나에게는 집이 없으니까. 그것들을 해야 하는 동기도 비슷했다. 정착하기 위해서다. 오한기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정착하기 위해서. 나는 대학 졸업 후의 미래로 연착륙하기 위해서. 그 미래도 실은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니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고 있지.
그리고 나도 충분히 공부하고 책 읽을 시간을 벌기 위해 할 만한 부업을 뒤져 본 적이 있다. AI의 딥러닝을 위한 데이터 라벨링 부업(영화 후기 등을 써서 내는 걸로 기억한다), 리뷰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블로그 체험단 부업 등등 일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들이 즐비했다. 유튜브에서 부업 소개 영상을 보고 이력서까지 조금 써 보다가 그만뒀다.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후회하면서.
책을 읽은 후 다시 회상해보니 그때 내가 나의 공간을 찾기 위해 내놓으려 했던 것이 혹시 나 자신이었던가. 나의 공간을 팔아 나의 공간을 찾으려 했던 건가. 부동산을 찾지 못해서 비슷한 강도의 실패가 누적된 얼굴을 하고, 허우적허우적 비슷한 자리를 맴맴 도는 게 우리네 인생인가. 축적되는 것보다는 자꾸 지불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한기는 소시민의 애잔하지만 특징 없는 말투를 구사하면서 유료 주차장에 수납된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도마뱀들이 살기에 적당하다는 온도와 습도로 구획된 가상의 공간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문득 섬뜩해진다.
*본 게시글은 작가정신 서포터즈 '작정단 13기' 활동의 일환으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