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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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역사를 통틀어 난세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역사학자 김수영이 지은 '난세에 답하다' 는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드는 의문이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책의 제목은 출판사 쪽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 하지만 저자 본인의 의식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지러운 세상이 곧 난세다. 유사 이래 민초들의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지 않았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비리와 사회 구조적인 부조리로 갈등과 불화가 심화되지 않았던, 태평성대의 시기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도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른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꿈과 희망과 이상의 기반인 믿음을 상실한 상태, 이것이 난세다.
사마천과 <사기>는 난세를 헤쳐나갈 답을 줄 수 있을까?
지은이 김영수는 해답과 중심에 사람을 두었다.
다양한 인물이 투영된 <사기>의 행간에는
난세를 이겨내고 믿음을 회복시킬 힘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진짜 난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믿음과 꿈과 희망과 이상을 잃은 세상이 바로 난세라고. 개인적으로는 그 정의에 동의하기 힘들다. 수많은 어려움이 놓여 있더라도 오늘보다 내일은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힘을 모아 분명 난세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이미 그런 희망마저 사라져 버리고 없다면 절망스럽다.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은 이미 난세 조차도 아니다.

이 책은 2007년 EBS에서 32회에 걸쳐 방송되었던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라는 기획 시리즈를 정리해 엮은 것이다. 저자는 '사람을 알고 세상을 논한다'는 말로 사마천의 사기를 인간으로 풀어 보고자 한다. 말이 쉽지, 수천년전 과거 역사 속 인간을 통해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한다. 스스로 행하는 자기 반성과 강제적 사유를 통해 사마천의 <사기>를 들여다 보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것이 궁형이라는 치욕 속에서 52만 6,500자의 사기를 완성하고 태산같은 죽음을 비로소 맞이했던 역사학계의 태고태왕 사마천에 대한 예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4백여 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김수영은 프롤로그에서 <사기>를 읽는 보람들을 얘기하고 있다. 재미있고, 진한 감동이 있으며 '진퇴의 지혜'가 담겨 있는데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읽을 수도 있다. 무려 열 네가가지나 되는 보람 중에 나는 얼마만큼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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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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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___, 저 소리를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가는 방법은 없나.

이 짧은 한마디가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을 울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편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속 운문사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운문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역 철거가 한창 진행중이던 1992년에 운문사 인근의 한 중학교 교정에서 울려 퍼지던 브라스밴드가 텅 빈 대천리 마을 하늘에 장송곡 가락처럼 길게 퍼지던 그 장면이 그려진다.

내가 운문사 가는 길에 운문댐을 가 봤던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었으니 미처 그보다 몇 해 전에 벌어졌던 가슴 아픈 역사를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저 원래부터 이 자리에 댐이 있었던 것이려니 무심코 보아 넘겼고, 푸르디 푸른 호수의 장관에 그저 시선을 빼앗겼던 그때의 무심함이 많이도 미안해졌다.

유홍준 교수가 좋아하는 절이 있다. 영풍 부석사, 서산 개심사, 강진 무위사, 부안 내소사, 그리고 이곳 청도 운문사가 그 곳이라 한다. 좋은 것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보다. 나 역시도 앞서 얘기했던 다섯 곳의 절을 모두 가 보았고, 그 절들이 제각기 갖고 있는 독특한 느낌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늘 마음에 두고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운문사는 좀 특별하다. 호거산에 자리잡은 운문사는 절에 들어서는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주 인상적인 곳이다. 물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정갈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빼놓을 수 없기도 하다. 산사라고는 하지만 넓디 너른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절을 한바퀴 여유롭게 둘러보는 데에도 호흡이 가빠지지 않고 일정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1994년 5월에 세상에 나온 이 책에는 유홍준 교수가 감히 남도답사일번지로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강진과 해남에 못지 않은 우리땅 '국토박물관'에 대한 사랑이 구석구석에 베어 있다.  종소리가 때리는 자의 힘에 응분하여 울려지는 것처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 땅의 문화재와 우리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제2편의 제목은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우리의 일반 상식에 근거한다면 잘못된 말이다. 산이 강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강이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이 맞다. 유홍준 교수 역시 아우리지강의 회상 - 평창, 정선 편에서 이것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말은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록 산이 있어 물이 흐르고 물이 모여 강을 이루었지만 산은 절대로 강을 넘지 못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강이 있기에 그 산은 여기서 저기로 떨어져 있을 뿐이다. 강이 아니라면 산은 여지없이 연이어 달렸으리라.

나는 여랑땅 아우리지강가에서 낙엽송 군락들이 줄지어 정상을 향해 달리는 저마다 다른 표정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수수만년을 저렇게 마주보면서 단 한번도 만날 수 없음은 바로 그 자신들로 인하여 이루어진 강을 넘지 못함 때문이라는 무서운 역설(逆說)의 논리를 배우게 되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어떠한 거봉(巨峰)들도 결국은 역사라는 호름, 민의(民義)라는 대세를 넘지 못하고 어느 자리엔가 멈출 수 밖에 없는 지식인의 한계,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을 보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땅에 대한 관심으로 시간날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책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지고 사진이 찍혀진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풍광은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좁은 숲길이 사람과 차의 이동 편의를 위해 넓은 아스팔트 길로 포장이 되기도 하고, 나무와 숲이 파헤쳐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오랜 세월 그 자체로 자연이었던 것들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자연은 상처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연이 상처받으면 결국은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 그것도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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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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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늘 책장에 꽃혀 있던 책을 무심코 꺼내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제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행복하라. 이것은 말 그대로 명령입니다. 따라야만 하는, 그리고 따르고 싶은 절대자의 명령입니다. 지난 2010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잠언을 류시화 시인이 엮은 이 책에는 가난한 우리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주고, 풍요롭게 만드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잠언이란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이나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책 속에는 법정 스님이 3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써 온 글과 법문에서 가려 뽑은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 합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한편 한편 읽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며 절로 반성하게 하더군요.

남들과 비교해 물욕이 넘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그래도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세속에 머물면서는 불가피한 것들이라 합리화를 시키면서 말이지요. 모든 것이 마음의 욕심 탓입니다. 욕심에서 벗어나려면 비교를 하지 말라 합니다. 모두 각자 태어난 그릇대로의 삶을 올곧게 살면 되는 것인데 또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게 되면 늘 비교하게 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탁한 마음을 때때로 닦아주지 못하면 억울함이 지나쳐 분노로 까지 치닫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요,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고 가르치셨는데 범인의 좁은 마음으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이 책도 법정 스님의 열반 이후 불어닥친 추모 열풍 속에 많은 이들이 사서 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책의 가르침 대로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좀더 고요해지고, 또 그 맑은 기운 속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이를 좀더 먹어 가면서 '버릴수록 얻을 수 있다'는 말뜻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것에 소유 당하는 인간 삶의 허상에서 벗어나라는 스님의 말이 폐부를 찌릅니다. 옳은 길인 것임을 알면서도 마땅히 그 길을 따라 나서지 못하는 용기없음이 부끄러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쓰고 또 하루하루 그 가르침에 닿으려 노력하다 보면 지금보다 나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류시화 시인이 글로 남긴 것처럼 이 잠언집은 그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고 덮어 버리기에 어울리는 책이 아닙니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옆에 오래 놓아두어야 할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단숨에 다 읽고 나서도 두번 세번 다시 읽고 또 읽게 됩니다. 하루에 딱 한가지만이라도 좋은 생각과 정갈한 마음을 품고 명상한다면 맑고 향기롭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기네요. 언제고 마음이 어두워지고 탁해질 때면 다음 글들을 곱씹어 보렵니다.


침묵과 고요와 몰입을 통해서 마음 속에 뿌리내려 있는 가장 곱고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난다.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 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거느리고 휘적휘적 지평선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소중함마저 잃게 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며,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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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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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는 이십년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 첫 권을 발간하면서 남도답사 일번지로 전남 강진과 해남을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2권에서 전북 부안을 두고 남도답사 일번지로 많은 고민을 했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내가 직접 가 봤던 느낌으로도 강진과 해남이 그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실 강진과 해남이라는 땅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주역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역사에서 배웠던 바로는 조선시대 유배지 중 한 곳으로 이름을 남기긴 했지만 수천여년 민족사의 영광스런 중심에 서지 못하고 그저 변방에 불과했던 곳이었지만, 한편 그로 인해 지금껏 자연 그대로의 멋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십년을 살아왔던 경상도 땅의 산과 들에서 느껴지는 감흥과 전라도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그것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초행길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경상도 내륙 지형이 뭔가 고집스럽고 기개가 느껴지는 대신, 우악스러운 느낌도 있는 반면, 남도 땅에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갈 때마다 그 따뜻한 느낌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곤 한다. 좀더 머물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늘 생활이 그 간절한 소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애틋한 그리움을 제대로 풀어 보려면 나이 들어서는 남도 땅의 자연을 벗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초판이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펴들고 나서 든 생각은 참 복잡미묘하다. 그때 그시절, 그러니까 학교를 휴학하고 군입대를 앞두고 있을 그 무렵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이 좋은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비록 두려움은 있었겠지만 무작정 광주행 버스를 타고 떠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최근에 남도의 여러 곳을 직접 돌아다녔던 기억과 감흥이 아직도 남아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것에 또 위안을 삼기도 한다. 특히나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백련사나 개심사, 소쇄원 편을 읽을 때면 마치 그때로 되돌아 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곤 했다.

이 책을 통해서 난 '원림' 이란 말을 알게 됐다는 것에 고맙다. 그동안 정원이라는 표현에 익숙해 왔었는데 소쇄원 편에서 원림과 정원, 그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됐고,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우리 조상들의 뛰어나고도 멋진 인식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쇄원과 명옥헌은 원림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아닌가 싶다.

소개된 모든 곳들이 좋은 곳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개심사를 다시 꼭 찾고 싶은 곳으로 꼽는다. 유홍준 교수도 청도 운문사, 영주 부석사와 더불어 서산 개심사를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꼽았지만 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 기대갖지 않고 지난 봄에 개심사를 찾았던 날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록 크진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절다운 절이 바로 개심사가 아닐까.

비록 이십년이나 지나 느지막히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게 됐지만 더 늦지않게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려 한다. 앞으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책을 보고 또 보게 될 것 같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책에 담겨진 이십여년전 남도의 풍경이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게 아닐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어떤 것도 무심한 세월보다 야속한 건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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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 5人5色 한국 현대사특강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6
서중석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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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두 편의 드라마가 있다. 질곡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뤘던 '모래시계'가 그 중 하나요, 철조망 너머 애처롭기만 하던 대치와 여옥의 키스신을 남겼던 '여명의 눈동자'가 또 하나다. 단순한 드라마 이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극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꺼리'를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모래시계야 문민정부 출범 이후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명의 눈동자' 방영 당시만 해도 아직은 군사정권의 잔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정국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5천년 민족사에 있어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후 사대교린을 국가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았고, 왜란과 호란 등을 겪으면서 외세에 치욕을 겪은 적은 여러차례 있었다지만 1905년 을사늑약처럼 공식적으로 주권을 잃은 것은 유일무이한 치욕의 역사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참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때만 해도 피가 철철 끓는 대학생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국민들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것이 바로 치욕스런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척결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까 싶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침탈에 앞장섰던 민족 반역자들이 광복 이후 정치적 이유로 인해 다시 한번 옷을 바꿔입고 새로운 정부의 주역으로 등장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은 좌절스러운 현실이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프랑스의 경우 지금까지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추상과 같은 역사적 단죄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국가와 권력의 주체에 있어서 정통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정통성의 사전적 의미는 그 사회의 정치체계, 정치권력, 전통 등을 올바르다고 인정하는 일반적 관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사 이래로 역사적 정통성이 희박하거나 아예 없는 권력들은 그 치명적 약점을 감추기 위한 노력들을 역사 왜곡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해 시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라는 이름의 책은 한흥구, 정태헌, 이만열, 서중석, 정영철 교수 등이 지난 2008년 겨울 '한국 근현대사 특강'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펴낸 것이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도 역사학계,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좌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한 식민지 근대화론, 독립운동과 친일파, 뉴라이트의 역사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정체성, 북한의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친일파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는 현실에서 지금껏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함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어느 편에 서 있든간에 불순의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민족 앞에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비열한 행위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음도 한흥구 교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 굴곡 많은 과정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어야 한다. 기쁜 것은 기쁘게, 슬픈 것은 슬프게, 아픈 것은 아프게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익히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보다 정직하게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전수하려는 작은 노력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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