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때는 아주 오래전 내가 나 자신의 충만함을 느끼곤 하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그 시절, 그 시간대에 나를 기다리던 것은 언제나 가볍고도 꿈 없는 잠이었던가. 하지만 무언가가 바뀌었다. 다음 날의 예비와 더불어 내가 다시 발견한 것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으니 말이다. 여름 하늘 속에 그어지는 친숙한 길들은, 그것들이 무구한 잠으로 이어졌던 것만큼이나 쉽사리 감옥으로도 다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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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의 나 자신이 그만큼 심각했는데. 동시에, 그리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내 음성이 내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귓가에 들려오던 말소리와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시간 내내 내가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얘기가 비로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출구는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서의 저녁나절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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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긴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길다 할 수 있을 나날의 시간들은 늘어나고 또 늘어난 끝에 마침내 서로 범람하기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내게는 어제나 오늘이란 단어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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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간 아픈 사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와 있는 마리의 존재를 좀 더 계속 누리고 싶었다. (141/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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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팽팽하게 긴장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며 권총을 쥔 손에 발작적으로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굴복하고,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건드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무미건조한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그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방금 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고요를 파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꼼짝하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대고 또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들은 바깥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대신 몸뚱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116/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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