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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쟁이 중년아재 나 홀로 산티아고
이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8월
평점 :
나는 걷기를 사랑한다. 하와이의 검붉은 용암이 만들어낸 험준한 트레일은 지구의 원초적인 힘과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발밑에서 까만 머리칼을 드리운 여신 펠레의 맥박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 대자연의 독특한 힘을 '마나'라고 부른다. 이곳을 걷다 보면 잠시나마 하와이의 오래된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길의 부름! 태고 적부터 인간 내면 깊은 곳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모험에 대한 기대 혹은 설렘일 수도 있고, 발견에 대한 이끌림일 수도 있지만,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식량과 안식처, 또는 새로운 지평을 찾아 광활한 지형을 누비던 유목민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공유된 기억과도 같지 않을까?
특히 걷는 행위는 우리를 세상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연결해 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조상들이 밟았던 바로 그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상기하게 된다. 참 겸손하지 않은가?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수 세기, 문화, 대륙을 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야말로 길고 긴 여정이다. 여행이라기보다 '여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수백만 명의 희망, 꿈, 이야기가 새겨져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밟아 온 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 야고보 유적지로 향하는 종교적 순례로 시작된 순례길은 이제 그 이상의 의미로 발전했다.
전 세계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까미노를 찾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정신적 위안을 얻고, 어떤 이들은 바쁜 현대 생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걷는 이들도 있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걷는 이들도 있다. 까미노의 아름다움은 모든 이야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것이다.
고풍스러운 마을을 지나고, 구불구불한 언덕을 넘고, 오래된 다리를 건너는 여정 자체가 성찰과 변화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걷는 리듬과 동료 순례자들과 나누는 동지애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별이 쏟아지는 밤, 현지 선술집에서 와인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대화, 산티아고의 대성당이 마침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의 형언할 수 없는 느낌.
늘 잃어버리기만 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있구나.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안경은 그 자리에 있었을텐데, 눈 어두운 내가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사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집 나갔던 안경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길을 떠날까? 왜 까미노일까? 아마도 우리의 과거, 자연, 모든 관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과의 연결에 대한 타고난 갈망 때문일 것이다. 길, 특히 까미노는 이러한 연결을 찾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연결을 느끼며, 여행이 끝난 후에도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제목에는 '소심쟁이 중년 아재'라고 다소 겸손하게 적혀있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산티아고를 걷고 얻은 '새로운 성찰'이 아니라 세월의 커튼에 가려져있던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된 긴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노란 화살표를 지표 삼아 삶의 방향을 잡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도서출판 푸른향기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