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대부분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기인한다.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는 욕망이 정도(正道)를 벗어나게 만든다. 이런 욕망과 일탈이 갈등을 유발하고 우리 사회를 망가뜨린다. “저 사람이 원래 저랬나?”라는 물음은 바로 이런 괴물의 탄생을 말해준다. 시대를 넘어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요강, 그 욕망에 빌붙어 소소한 욕구를 채우려는 또 다른 욕망덩어리들. 그들이 벌려놓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마천의 천도시비론(天道是非論)을 흘러간 옛이야기로 넘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

 

(10)

사랑스러운 현재와 경재,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벌써 스무 살 안팎이 되었겠구나. 나는 너희들이 10년 정도 지난 뒤에 이 글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고 쓰고 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나는 지금 암에 걸려서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다. 복막 중피종. 현대 의학이 사실상 포기한 병 중 하나다. 워낙 희귀해서 우리나라 인구 5000만 명 중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의 통계를 찾아봐도 이 암에 걸린 환자 중 생존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 1년을 전후에 사망하고, 길어야 5년을 산다. 나도 병원에서 12~16개월을 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사가 얘기한 예상 기간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상대로 한 경험적 통계이기 때문에 나처럼 병원 치료를 피하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73)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당시 내가 읽은 책들이 대부분 고전이라는 점이다. 정작 내가 살아갈 현대와 관련된 책은 전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들도 고전은 권장했지만, 현대를 다룬 작품을 소개해준 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대학에 가서야 깨달았다.

 

(81)

대학에 들어간 뒤 처음 한두 달은 고민 기간으로 정했다. 재수를 해서 법대를 갈까, 아니면 정치학과를 그대로 다닐까. 한 달 만에 정치학과에 남기로 결정했다. 정치학과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보니 이 사람들은 나와 고민의 차원이 달랐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잘될 것인가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나라가 잘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내 꼴이 우스웠고, 상대적으로 선배들이 대단해 보였다. 아마 법대에 갔다면 언제부터 고시 준비를 할까 이런 생각만 했을지도 모르는데정치학과에서는 고시를 왜 보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공부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98)

우리는 가끔 나만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은 다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사람마다 분명히 조금씩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공통점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필요하다.

 

(111)

하지만 이때 생긴 꿈은 대학 4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에 대해 철학자들, 역사 속 인물들과 숱한 대화를 나누며 나 스스로 얻은 것이다. 그런 만큼 말 그대로 순순하고 소중한 나의 꿈이다. 그 꿈이 무엇이냐고? 그건 우리 사회를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 사회를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현재로서는 민주주의이다. 다수 대중의 이해가 반영되면서도 소수를 보호할 수 있는 체제. 종교는 내세에서 그런 약속을 할지 모르지만, 나는 현실에서 그런 사회를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혁명을 논할 것도 없이 그런 사회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129)

입사 시험 경험을 통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한 가지는 사기업의 경우 절대로 똑똑하고 원칙에 충실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올곧으면 회사의 부당한 방침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최규석의 만화 <송곳>에서처럼 노조에 가입해 회사와 대결하거나 회사에 노조가 없다면 본인이 직접 노조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은 적당히 구부러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원칙을 따지기보다 불법이나 부적절한 일도 회사의 지시라면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158)

물론 그 전에 자신에게 인사권이 있다면 적절한 사람을 골라서 쓸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부족한 분야라면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을 활용하고 그 사람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가 모든 걸 다 알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를 어떻게 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 내에서 적절한 배치가 필요한 것이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다. 그러자면 리더는 우선적으로 사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인사(人事)가 만사다. 인사를 잘하면 나머지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205)

그렇다면 객관성은 아예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객관성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다. 바로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먼저 소수 권력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 재벌, 법원 등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들이 권력을 잘못 사용했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상상을 초월한다. 권력을 쥔 자는 소수지만 그들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수다. 언론의 일차적인 역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들 소수 강자에 대한 다수 약자의 견제를 말한다. 언론이 견제해야 하는 소수 강자에는 정부와 여당뿐 아니라 다른 언론도 포함된다. 이들 역시 중요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245)

노무현은 내가 현실 정치를 접한 이후 김대중에 이어 열렬히 지지했던 정치인이었다. 물론 노무현 집권 기간에 지지층들이 많이 이탈했다. 노무현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그의 말대로 구시대의 막내였다. 정치개혁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누구보다 선명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권위주의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경제와 노동, 사회 개혁이라는 관점에서는 노무현 역시 시대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새로운 시대의 맏형이 되지는 못했다. 그 과제를 후대에 남겨졌고,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노무현은 우리 현대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고, 그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밑그림을 깔아놓은 인물이다.

 

(284)

구본홍 보도본부장 체제에서 MBC 뉴스는 조선일보를 베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당시 우리 뉴스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야 언론으로서 정도를 가는 것인 양 보여주기식 보도가 많았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조직이 대통령 개인을 과도하게 비판했다. 보수적인 선배들이 이긍희 사장, 구본홍 본부장 체제를 맞아 마치 소신을 지키는 언론인인 것처럼 돌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302)

소수파 정권으로서 적을 제압하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허허실실이 가장 좋은 방책이다. 행정권력 하나 장악하고서 대놓고 선전포고를 해봐야 소용없다. 보수세력은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이라는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행정부 내에서도 보수적인 관료들이 사실상 이들의 우군 노릇을 한다. 게다가 재벌이라는 가장 강력한 물적 기반이 이들의 편이다. 이들이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잃게 되자 사법부와 언론 등에 호소하며 노무현 정부를 강력히 저지한 바가 있지 않던가.

 

(347)

언론이 바로 서는 것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검찰이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면, 언론은 사회적 의제 설정을 통해 미래를 여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언론이 자유로워야 사람들이 현재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의제가 형성되고, 하나씩 해결되어 나간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발전 모델이다.

 

(366~367)

<삼국지>에서 눈여겨본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주유(周瑜). 주유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제갈공명의 비범한 재능이 신적인 경지라면 주유의 탁월한 재능은 인간적이었다. 그런 이류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못내 그를 잊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주유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모습을 혼자서 상상한 적이 많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지나는 이 순간 주유를 떠올리는 건 나 혼자만의 연민의 감정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