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자클린느의 정수 너그럽고, 밝고, 재능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큰마음 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저 깊숙한 곳의 어떤 감정들이 용인되지 않음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미소 띤 얼굴로 감추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해맑은 웃음 뒤에는 사적이고, 역설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그녀조차 꿰뚫어볼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자클린느 자신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통찰력과 관찰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었다. 마치 용액 속의 사진처럼 차츰 하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95-96)

플리스가 <첼로>에서 결국 연주는, 음악이라곤 배운 적도 없지만 아이의 머리맡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유모의 노래처럼 비과학적이고 구속이 없는 소리여야 한다고 했다. 첼리스트는 이러한 무위의 환영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단 하나의 악구에서도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창출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운지, 운궁, 뉘앙스를 생각하고 연습한다. 첼로는 피아노와 기타 많은 악기들과 달리 오른손과 왼손의 기능이 전혀 다르다. 마치 배를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문지르되 끊임없이 미묘한 변형이 이뤄지는 것과 비슷하다. 오른손은 소리를 내고, 왼손은 색을 입힌다. “연주를 할 때는 마치 맹인이 손과 손가락 끝으로 사물을 느끼듯이 오른손과 손가락 끝이 음악의 테두디를 훑고 지나간다고 상상하라고 플리스는 말한다. 이와 달리 왼손음악이 지시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마치 살랑대는 미풍에도 흔들릴 만큼 기름을 매끈하게 바른, 교회 꼭대기의 바람개비처럼.”

(99-100)

자클린느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에 대해 자주 후회를 하지만, 첼로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첼로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연주를 할 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116)

지난 몇 주, 런던의 청중들은 전도가 유망한 다소 어린 솔리스트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 가운데 지난밤 위그모어에서 첼로를 연주한 자클린느 뒤 프레 양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어린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을 가졌기에 그녀의 공연 논평을 쓰면서 전도유망을 언급한다는 것이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23)

퍼시 케이터느는 <데일리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현재 빛나는 첼리스트이며, 이제 곧 저명한 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17세의 자클린느 뒤 프레는 지난 밤 로열 페스트벌 홀에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성인데뷔무대를 치렀다. 그녀의 연주는 기교의 자유로운 구사에 나이에 비춰 감탄을 자아낼 만한, 감정의 성숙이 결합된 것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가 루돌프 슈바르츠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함께 연주한 동료들이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홀을 메운 관중들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세 번이나 그녀를 무대를 불러냈다. 중후미의 요소들이 있고 분위기와 템포가 자주 바뀌는 엘가의 협주곡은 곡해석이 난해하다. 연한 푸른빛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첼로를 연주하는 하얀 피부의 키가 훌쩍 큰 소녀는 29분 내내 신들린 듯한 모습이었다.

(133-134)

영재 아동을 둔 가족들은 부러움이 아니라 동정을 받을 만한데, 신동의 재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탓이다. 비범한 재능은 가족의 활동과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 에너지, 재력, 감정적 지원이라는 자원을 무리하게 쓰게 만든다. 교육자나 심리학자들은 신동이 한 가족의 평형에 미치는 영향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아만큼이나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아이는 자신의 운명을 따를 것이라는 전언을 듣는다.

(155)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첼로는 도대체 만족이라곤 모르는 가혹한 공사감독이 되어버렸다. 헌신, 직관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 그녀를 여기 멀리까지 데려왔고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명료한 선택이, 일상의 삶을 넘어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음악적 통찰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려면 삶의 무게, 경험의 무게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연주만 계속한다면 언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딜레마는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조운 클루이드가 그녀를 이해해주었지만, 자클린느에게는 자기 세대의 누군가로부터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녀는 조지 데버넘에게 눈을 돌렸고, 그는 흔쾌히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183-184)

자클린느는 첼로의 소리를 내장과 가슴에서 올라오는 뭔가 기본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첼로는 어떤 악기보다도 인간의 목소리와 흡사하다. 고음역의 소리는 통렬하고 애처로우며 반대쪽 음역의 끝에서 나는 소리는 심원하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중간 음역에서는 좀더 익숙하고 부드러운 바리톤 소리가 난다. 어떤 음역이든 소리, 모양, 나무의 온기 그리고 연주자가 실제로 껴안듯 연주하는 모습은 첼로를 가장 관능적인 악기로 만든다. 동시에 첼로와 활은 나무, , 장선, 금속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여기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사용해야 한다. 발은 굳건히 땅에 붙여 균형을 유지하고, 무릎으로는 악기를 흔들리지 않게 잡으며, 어깨에서 허리까지의 팔근육은 몇 시간이나 계속되는 활 켜기를 해야 하고, 강철 같은 손가락은 길게 잡아 늘여 두껍고 길며 20파운드가 넘기도 하는 압력이 필요한 줄들을 내리눌러야 한다. 연주회 끝부분에서 지판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했던 카잘스는 첼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신체의 이용과 기민함을 나무를 자르면서 동시에 한 꾸러미의 바늘에 실을 꿰는 일에 비교했다.

(238)

자클린느는 말로 표현 못하는 것을 음악을 통해 웅변적으로 전달했다. 그녀와 바렌보임은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와 베토벤의 A장조 소나타를 연주했고 밤이 깊도록 연주를 계속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수지 매콰이어는 이렇게 회상한다. “재키는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고 기운도 별로 없었지만 다니엘은 회복 중이었을 텐데도 기력이 왕성한 것 같았어요물론 재키도 일단 연주를 시작하자, 완전히 몰입했지만요. 다니엘은 스타로서 재키를 동경했어요. 그 둘이 처음으로 함께 하는 연주를 듣는 것은 정말 기억에 남는 일이었지요. 음악을 통한 합일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틀림없이 식사는 했을 텐데 그런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이 방에서, 나머지 우리들은 다른 걸 다 망각한 채, 연주에 빠진 그 둘을 바라봤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다니엘이 이 방을 나서면서 꼭 다시 그녀를 만날 거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318)

다발성경화증은 가장 초기 단계엔 진단조차 어려운 악마의 측면이 있다. 증상이 나타났다 돌연 사라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잠깐 나타났다가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없어져서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클린느의 경우처럼 신경쇄약의 징후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좀처럼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오른쪽 눈에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여서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사춘기 외상장애라고 일축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356-357)

다발성경화증은 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경섬위의 절연체와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에 일어나는 만성적이고 점진적인 질병이다. 손상을 입은 곳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가 두껍고 딱딱한 경화성상처 조각으로 대체되어, 뇌에서 근육과 장기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을 방해한다.

(386)

그녀에게는 사랑이 부족했지요. 그녀는 마치 스펀지처럼 사랑을 다 빨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받아도 충분하지가 않았지요. 그녀는 클 줄기가 딱 하나뿐인 강인한 식물로 자랐어요. 그런데 그 줄기가 잘려져 나간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줄기가 잘리면 곁가지가 다시 자라기 시작하지요. 재키는 그렇지 않았어요. 마치 큰 줄기에서 줄곧 피가 흐르는 듯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날개를 펴도록 용기를 주려고 애썼어요. 나는 그녀가 삶은 계속된다는 것, 남들에게 줄 게 있다는 생각을 갖길 바랐습니다. – 소니아(물리치료사)

(446)

나는 그 놀라운 양면성을 지켜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아무 걱정 없는 소녀가, 계속해서 울어댈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잘 웃어대는 이 소녀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간 뿐이었으니까요. 그녀는 말하곤 했지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대꾸하지요. ‘ 오 세셍에, 너무 두렵지?’ 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을요.

(450)

자클린느는 자신이 연주한 슈만의 협주곡 음반을 사랑했다. 어둡고 감상적인 그녀의 해석은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했다. 슈만 협주곡의 연결된 세 악장은 정류해낸 순수의 감정이다. 졸라는 이를 절망의 관능이라 했다. 첫 악장은 갈망으로 채워지고, 두 번째 악장은 부드럽고 시적이다. 마지막을 향해 가면 이행부가 있고 그 뒤 오케스트라와 첼로가 함께, 마치 슈만이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향수에 젖은 연주를 시작한다. 엔딩은 강력하고, 폭발적인 마지막 작별인사로 우리 모두를 울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아직도 음악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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