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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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읽는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간토대지진,

관동대지진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발생했다.

오전 11시 58분에 시작된 진도 7.9의 지진은

한창 점심시간을 앞두고 식사가 한창이던 시간이라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의 규모도 컸고,

이로 인해 10만 명 이상이 사망/실종되었으며

부상자도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자연재해만으로도 엄청난 규모의 이 사건은

단순히 자연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오후 3시부터 조선인 학살이라는 인재로 이어진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로 불리는 이 일은,

자연재해로 벌어진 혼란 사이에서

사람들이 가진 혐오와 거짓으로 선동된 이들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2023년으로 100주기를 맞이한 간토대지진에 대하여

막연하게 '조선인 학살이 있었다'라고

아픈 사실로만 인식하며

일본에 대한 적대감만을 가질 수 있는 이들에게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또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작품들과

이에 대해 증언한 여러 기록들을 통해

우리가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는

조선인 학살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덮고 잊고자 하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숨겨진 진실을 꺼내어 밝히고 사죄하기 위해

애썼던 이들의 노력을 전하는 책을 만났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선생님이 쓴

〈백년 동안의 증언〉이다.


이 책은 누구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밝혀내며

사과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아감'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라는 앙숙과도 같은 양국의 평화를 위해

간토대지진을 올바른 눈으로 바라보고자

함에서 출발한다.


20여 년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지를 답사하고

간절한 증언을 글로 새기면서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을 깁고 다듬었는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하여

기존에 막연한 헤드라인 기사 같은 느낌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보다 사건에 대하여 면밀히 들여다보며

이 일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파악하고

다양한 기록 속에 담긴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왜 이런 차별과 혐오가 조선인들에게 펼쳐졌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도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장은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중요한 날짜와 시간을 정리한다.

2장은 쓰보이 시게지의 장서 「15엔 50전」을

국내 초역으로 소개하는데,

이 장서를 읽으며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3장은 한국인과 일본인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

학살을 기억하는 이들의 기록에 담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4장은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개인이나 모임을 소개한다.

우리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학살만큼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본인을 바라봤었는데,

이 장을 통해서 일본인에 대한 시각을

달리 가질 수 있다.

5장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치유의 관점에서 살펴보며 정리하고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접했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당시에 조선인 폭동설이라는

거짓선동으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라는 사실에만 머물러 있던 시선은

이 사건 전체에 걸쳐있는 혐오와 국가 폭력으로

그 시야를 넓히게 된다.


도대체 '왜?'라는 물음은 다양한 증언들과

사건에 대한 기록을 통해

차별받고 있던 이들이 마주한

잔혹한 현실을 끄집어 내면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과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드러내며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치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한 역사의 사건들 속에서

때로는 가해자였고, 때로는 피해자였던

그들의 후손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러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배우고

자세를 낮추게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100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그 '사건'에 대한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그에 대한 촉구나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과 일본 양국을 둘러싼 문제는

비단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라는 사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하나의 실마리를

조금은 이 책에서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풀어가는 마음을 오늘의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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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여신 네오픽션 ON시리즈 36
박에스더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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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오래전 전설이나 신화 속에 묻어있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보면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하는 상상은

무엇보다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곤 하는데

'알고 있어서 더 무서운 맛'인

여러 신화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를 현대의 이야기로 재창조한

완성한 K-오컬트 판타지를 만났다.


달에서 떨어진 달의 여신,

그리고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산신을 잃은 산군,

어떤 인연으로 이들과 함께 하는 무당 인간까지!

하나의 가족으로 재탄생한 이들이

모두를 암흑으로 몰고 갈 어둠의 위기 앞에서

악귀 사냥을 시작했다!

박에스더 작가의 신작 〈불량 여신〉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과 더불어

'한국적인 오컬트'의 매력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이런 한국적인 오컬트에는 '恨'이라는

정서를 빼놓을 수 없는데,

한껏 원망스럽고 안타깝게 응어리진 마음은

어떤 응축된 사건을 바탕으로 시작하게 된다.


〈불량 여신〉 속에서 등장하는

보름과 산호에게도 이런 한의 정서가 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에 배신 당하고,

믿고 의지하던 신의 죽음을 목도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상황을 회복하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더해지고 말이다.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다 깨어난

달의 신 보름과 그를 깨우게 한 산호는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남기 위해

잡신을 떼어주는 활동을 한다.

'쓸모 없어진'에 마음을 쓰는 보름은

자신의 처지같이 쓸모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쉬이 떼지 못하고 품고 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연화 역시

그런 이유로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의심스러웠던 사건들을 파헤치던 중

이 모든 시작을 만든 그날의 '사건'에

모든 뿌리가 향하며 오랜 시간 묻혀있던

어두운 세력의 계획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모른 채

투닥거리기만 하던 보름과 산호는

위기의 순간,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진심을 깨닫고

이내 한마음이 되어 마지막 전쟁을 치른다.

영원히 잠식시킬, 어둠으로부터

보름과 산호는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글을 읽고 있으면서도 영상처럼

시원스럽게 배트를 휘두르는 보름과

마치 자연스럽게 한 몸처럼 박자를 맞추며

춤추듯 그를 보호하는 산호를 보는 것 같았다.

익숙한 신화 속 마고 할머니나 선문대할망의

등장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고,


악의 축이라기에는 애틋하고 비뚤어진 감정을 가진

영원히 죽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의 모습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안타깝지만 너무 멋지고 그렇지만 나쁜

서브 주인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오컬트 판타지물에서 벗어나

때로는 과거의 시간으로, 때로는 현재로

시공간을 오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가장 '한국적'인 포인트로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과 사랑에 빠진 신,

그런 신을 사랑하게 된 산군까지!

이들의 오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비현실을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몰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잠식당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씩씩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주인공들의 전투는 그 무엇보다도 멋졌고,

만족할 만한 완벽한 결말까지

제대로 완성형이었던 K-오컬트 판타지였다.


미스터리한 오컬트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가장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K-판타지의 장르를 만나고 싶다면

기껏이 이 어둠을 쫓는 달에 함께 올라타기를,

그리고 그들의 악귀 사냥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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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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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장애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가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조승리 작가에 대한 나의 시선도 그러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작가는 어떻게 책을 쓸까?

그리고 여전히 책을 읽는다는 표현이 신선하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첫 작품은,

후천적 장애로 전맹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조승리라는 이름을 많은 독자들에게 알렸다.


장애, 그것도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하면서도

자신의 이 '불행'을 끌어안고 주저앉기보다

'지랄맞음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단단한 마음에

누군가는 잃은 그 일상을 모두 다 가진 내가

너무 불평불만이나 간절함을 잃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두 권의 에세이를 통해 시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장애인으로서 마주한 세상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에 대해 막연하게 이럴 것이라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다.


이번에 만난 작가의 첫 소설은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시력을 잃고 장애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삶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이야기는 서로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설들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모두 '조승리'로 이어진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조승리'들이었고,

결국은 시력을 잃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상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한 인물의 분투기를 통해

장애를 가진 이들의 연대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꺼이 대신해 내고자 한

작가의 의지까지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점점 사라지는 시력은

주인공들에게 어둠만을 선사하지 않는다.

사라진 빛만큼이나 놓아야 했던 많은 관계들,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달라지며 방황하는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생체기가 되어 쌓여간다.


보이지 않게 된다는 두려움보다도

지금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는 마주할 수 없다는 슬픔은

어린 조승리들이 맞서기에는

너무나 큰 벽처럼 다가온 것이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고통들은

소설을 읽는 나를 '조승리'라는 사람으로 만들어

생생하게 체감하게 했다.

턱 막히는 숨은 수시로 페이지를 멈추게 했고

그들과 함께 눈을 감았다 뜨며

보이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다 보면

다가오는 어둠이라는 슬픔이 딱 붙어 있었다.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고 매일을 이겨냈을

작가의 일상을 소설을 통해 겪어보며

그 몸부림의 고단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매만진다.

사람들의 온기를 받아 비로소 목소리를 내게 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마음속에 담아낸 울분을 쏟아내고,

두려운 어둠에서 세상 속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 그녀가

다른 이들을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름처럼 기어이 승리를 하고야 말,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기꺼이 받은 온기를 나누는 그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이 되기를,

그들의 고단함이 함께 나누며 줄어들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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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오늘의 젊은 작가 50
원소윤 지음 / 민음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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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웃음'을 선보인다는 코미디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온 가족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채널 선택권이 있지만

유일하게 누구나 구분 없이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코미디 프로그램!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그렇게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들은

TV에 나오는 사람들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코미디를 보며

웃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니까 개콘이 망하지"라는 자조 섞인 말처럼

웃픈 상황들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 넘쳐났고,

그저 웃기기 위한, 웃음을 탈탈 쥐어짜는

탈수기 같았던 그것은 개그라는 이름으로

코미디와는 다른 장르로 다가왔다.


어떤 사람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을 때,

그 당사자가 웃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코미디라는 얘기가 있다.

순간 웃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선,

그리고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닌

어떤 현상으로써 바라볼 수 있는 코미디가 사라져서인지

이제는 누군가를 비웃듯이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불편한 얘기들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오리지널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오로지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이런 건강한 웃음의 명맥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그런 스탠드업 코미디 세계 속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돋보이는 작가가

한편의 길고 긴 입담을 쏟아낸 듯한

자전적 소설을 냈는데,

분명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한 회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말았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근간인

〈꽤 낙천적인 아이〉이다.


픽션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쉴 새 없는 유머로 담은 작가는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을 통해

'원소윤'이라는 사람을 하나의 소재로 삼았다.


자신의 뿌리가 된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친구와의 사연,

본격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

그리 웃기만은 할 수 없는 사연 속에서도

웃음이라는 여운을 더하는 작가는

천상 코미디언의 모습을 보인다.


원소윤이라는 사람을 만든 시간을 담아낸 이 작품은

성장소설의 새로운 의미를 정의한다.

'대단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했습니다'의

해피엔딩적 결말에 다다르는 보편적인 진행이 아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웃음 속에 감춰진 슬픔, 상실, 어떤 고민 등을 담으며

비로소 이런 시간들을 바탕으로 이내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을 다룰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도 조용히 공부를 하는 모범생이자

노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반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코미디언이라니,

그것도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니, 사람들은 의아할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녀는 이야기의 시발점이자 셀링 포인트로 삼는다.

그리고 무한한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의 요소로 승화시킨다.


자신의 아픔과 상실 속에서도

꽤나 낙천적인 아이로 자라 온 원소윤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사람들은 소개 글 몇 줄로 묘사되는

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되며

웃고 또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 슬픔을 잊고 다시 웃고 마는 것이다.


슬픔과 죽음이라는 어떤 원죄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꽤 낙천적인

원소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이렇듯 건강한 웃음을 건넨다.

한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본 듯

하지만 조금은 투머치토커의 이야기를 들어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저 웃고 넘어갈 것 같은 그런 감정.

자신만의 색이 가득 담긴 소설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렸을 때 봤었던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건강한 웃음을 오랜만에 느낀 기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은 이미

그녀의 공연장 앞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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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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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다.

느리다거나 힘이 없다는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노인들은 새롭고 낯선 것을 싫어하고

정적인 것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


막상 지금의 내가 '나이가 든다면'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다들 흔하게 생각하는 노인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생각은

고리타분한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소녀가 자라 아가씨가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아이를 낳고

또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였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는

일련의 흐름을 보고 있자니

삶이라는 흐름 앞에 훈장처럼 주어지는

체력 고갈과 새로운 것에 대한 어려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겠다는 다짐이 든다.


뿐만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너무나 멋지게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면

'그래! 내가 바란 노인의 모습은 이런 거였어!'

'이런 게 바로 실버 힙이지!'라고 느끼게 되었는데,


평범함은 거부한 노인들의

요절복통 분투기가 담긴 너무나 따뜻한 소설,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그들의 바람이

그들이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을 만났다.


각자의 이유로 나이가 들고 쓸쓸함과 무료함,

새로운 변화를 꿈꾸던 이들에게

해머스미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만델라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 안내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고 싶은가요?'

메시지에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모인 노인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복지관 시설,

도통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의 노인들을 보며

과연 이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된다.


첫날부터 천장이 무너지며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가 직접적인 연관은 아니지만

사망한 노인이 키우던 강아지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노인 사교 클럽을 운영하게 된 리디아와

사교 클럽을 방문한 노인들은

자신들이 속하게 된 복지관을 지키고,

각자 이루고 싶었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두발 걷어붙이고 나서게 된다.


복지관을 지키기 위한 공통의 목표 아래

사실은 그 속에 담긴 각자의 행복을 위한 몸부림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그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연대, 따뜻함이라는 감정을 심어 놓는다.


노인이라는 연령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날려버릴 화끈하고 적극적인 그들의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과 시간'이라는 보물을 두고도

치열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렇게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며 보내는

경고이자 조언 같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사교 클럽의 관리자

리디아처럼 50대였던 작가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진정한 어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80대인 부모님과 그들의 친구들은

자유롭게 여행하며 인터넷도 잘 사용하는데

소설에서 만나는 연금 수령자 노인들은

무력하고 어수룩한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모습에

상황을 주도하는 노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그런 다짐은 이번 소설에서

인생을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멋진 모습의

노인들로 등장을 한다.


소설 속의 노인들은 모두가 풍족하거나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퇴 후 여전히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싶어

일자리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감에서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수줍고 조용한 듯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거침없이 뜨개질로 만든 작품으로

다른 이들 앞에서 표현하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지만, 활동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화려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며

떠난 남편들의 수를 헤아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감방에 가두듯 집에서만 은신하다

15년 만에 집 밖으로 나온 이도

처음에는 망설이기는 했지만

거침없이 데이트 앱을 사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다.


고정된 성별과 연령의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향해 후회 없이 돌진하는

누구보다도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형편이나 상황, 조건 때문에 라는 핑계로

무언가를 미루고 도전을 피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같은 노인들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라며

자세만 바꾸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거침없이 중앙분리대를

펄쩍 뛰어넘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우리를 가로막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거침없이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또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그래서 결국 도달하고자 했던 행복에

모두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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