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복무 선발은 임관 2년 차에 처음 지원할 수 있고 임관 5년 차까지 기회가 있다. 장기복무 선발 시 평가요소는 근무평정, 교육성적, 부대추천, 면접평가, 체력검정, 상훈, 잠재역량까지 총 7개요소이다. 복무 연장 선발도 장기복무 선발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복무 연장 선발 평가요소는 장기복무 선발 요소 중에 부대추천과 면접평가만 제외한 다섯 가지 항목으로 평가된다. 이 중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근무평정이고, 선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대추천이라 할 수 있다. 근무평정은 매년 전·후반기에 한 번씩 실시하는데 선발하기 직전 반기까지 실시한 결과의 평균값을 환산하여 적용한다. 면접평가는 소집평가과 AI평가 두 개로 나누어서평가하고, 소집평가는 선발 제대에 따라 군단또는 육군본부에서 나누어 평가한다. 부대추천은 각 사단에서 병과별, 임관연도별로 장기복무 - P307

지원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놓고 그 안에서 서열을 매기는 것이다. 지원자의 30%까지만 ‘상‘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발할 때 결정적요소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선발계획이 공지되고 최종 결과 발표가 날 때까지는 3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장교의 장기복무는 임관하고 2년차부터 지원할 수 있고임관일로부터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무 연장을 함께 지원할 수 있다. 장기복무를 희망한다면 평가요소 중에 본인들이 준비할수 있는 부분-체력검정, 상훈, 잠재역량(자격증을말한다)은 준비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므로 업무가 바빠도 미리 챙겨야 한다. 거기에 추가로 상훈(표창)은 지휘관이 챙겨줄 수 있으므로 장기복무시 표창 하나 받은 것이 없어서 곤란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사관들도 장교와 마찬가지로 장기복무 선발이 되어야 7년 이상 근무가 가능하다. 장교는 10년이 장기복무의 기준이지만 부사관들의 장기복무 기준은 7년이다. 부사관은 임관 시 장기복무로 선발되는 일부 특기들을 제외하고는 의무복무 기간은 4년이다.
장기복무 선발만 되어도 60세가 보장되는 조직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장교 및부사관의 정년은 군 인사법에 명시되어 있다. - P308

정년이 길어진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진급 = 생명 연장의 꿈‘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계급이 높아지면 현역으로서 우리의 생명이 길어진다. 군 생활의 목표가 진급이 다는 아니지만직업적인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진급이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진급이 어려워지는 시기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할 때부터다. 전체 대상자 중에 4분의 1정도만 선발된다. 병과별로 따지면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첫 번째 진급심사에 들어갈 때를 1차라고 하는데 1~4차정도까지 기회가 있다. 진급 선발이 되지 않으면 바로 전역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앞서 말했듯이 현역정년에 도달하는 시기에 전역 처리가된다.
계급별 진급심사는 1년에 1번 있고 약 2주 정도 소요된다. 대위에서 소령 진급심사가 제일처음으로 진행된다. 심사 마지막 날 선발된 인원 명단이 인트라넷에 공지된다. 진급 발표날이되면 모두 숨죽이고 명단이 게시되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접속자가 폭증해서 서버가 멈추는경우도 종종 있다. 진급심사 시 평가요소는 근무평정, 경력평가, 교육성적, 지휘추천, 체력검정, 상훈까지 총 여섯 가지 요소이다. 심사위원들도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군인들이므로 심사대상 중에 함께 근무했던 인원들이 100% 존재한다. - P310

심사대상자를 전부 알고 심사할 수 없으므로 편파적인 심사를 막기 위해 심사는 블라인드로 진행한다. 심사위원들은 심사대상자들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제공된 자료를 놓고 대상을 검토한다. 또한 심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심사위원들도 본인들이 심사위원인지 알지 못한다. 심사 당일 심사위원으로선정된 인원들을 육군본부에서 각각 차량으로데리러 가고 핸드폰 등 연락 수단은 모두 압수당한 채로 심사장소로 이동한다. 심사기간 동안에는 진급대상자가 아닌 인원 중에 일부를 참관할 수 있도록 하여 심사하는 모습을 공개한다.
매년 진급심사가 이루어지지만 진급대상자에매년 들어가는 건 아니다.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려면 소위로 최소 1년을 근무해야 한다.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하려면 중위로 최소 2년,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려면 대위로 최소 6~7년(전투병과와 기행·특수병과는 1년의 차이가 있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려면 소령으로 최소 5년,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려면 중령으로 최소 4년,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려면 대령으로 최소 3년은 근무해야 진급대상자가 된다. 이렇게차상위계급으로 진급하는 데 필요한 최소기간을 계급별 최저복무기간이라고 한다. - P311

진급심사 후 선발자가 공지되고 나면 공식적으로 작성되는 모든 문서 등에 대위 박미영에서 소령(진) 박미영으로 표기된다. 진급 선발이 되면 곧바로 진급된 계급으로 계급장을 바꿔줄 것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군별로 차이가 있는데 육군은 선발 공지가 되고 그다음 해에 해당 계급으로 진급된다. 기분만 좋은 상태로 거의 1년 정도를 진급 예정자 상태로 지낸다. 진급 예정자 시기에 혹시라도 잘못한 일이 있어서 형사처벌을 받거나 징계를 받을 경우, 진급 선발이 취소될 수도 있다. 진급 선발이 될 때까지 잘못 없이 성실히 근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선발된 이후라도 진급신고를 해서 계급장을 달기 전까지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P3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망쳤다던 금손이가 왜 거기 있는 것이오?"
"뻥임."
"뻥?"
"거짓말이란 말임!"
할아범과 할멈이 번갈아 가며 대답을 하곤,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었다.
"이유가 뭐요?"
"무슨 이유?"
"본래 약조한 대로 죽이지 않고, 몰래 데리고 있다는 건.. 임금에게 몸값을 받을 요량이오?"
"몸값? 이놈의 고양이가 천금 만금어치라도 된다니?"
"그럼 도대체, 왜?!"
노부부의 대답은 단순하고 확실했다.
"귀엽잖슴." - P185

"꿍."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할멈이 금손이를 안아올렸다. 금손이가 길게 떡처럼 늘어났다.
"매애오."
할멈이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금손이를 살펴보더니 한마디 했다.
"말랐다이."
누가 봐도 포동포동했다.
"말라서 볼품이 읍슴메. 갖다 버리야지..."
금손이를 내려놓은 할멈이 등 돌리고 앉아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할아범이 금손이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래... 데리고 있어 봤자, 킁. 콧물에 기침에 힘들기만 하다이."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십대까지만 해도 소현은 몰래 일기장에 쓰곤 했다. 엄마, 미안해, 하지만 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넌 엄마를 똑닮았다고 하면 견딜 수 없이 두려워지곤 했다. 엄마처럼 외로움이 가득한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삶에 부딪혔는데, 소현이 보기에 삶은 엄마의 기쁨들을 차례로 빼앗아가기만 할 뿐 아무 보상도 해주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네가 없었으면 나는 벌써 한참 전에 죽었다. 하고 말하긴 했지만 과연 내가 보상이 될까? 이런 내가? 소현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 P302

여러가지로 힘들겠지만, 몽식아, 어쨌든간에 나는 네 글을 정말 좋아한다. 너는 가짜라고, 네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가짜를 진짜가 되게 하는 게 글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고, 따지고 보면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은 사실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또 뭔가를 하나 더 만들어 가만히 놓아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266

너는 나한테 오늘 뭔가를 줬다. 이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되게 이상한 모양이다. 모양은 꽃이 아닌데, 느낌은 꽃다발에 상응하는 어떤 것이다.
이런 거, 굉장히 오랜만에 누구한테서 받아봐. 고맙게 받겠고, 이걸로 뭔가 해볼게. 너도 오늘 나한테 한 얘기 잊어버리지 말고, 그걸 끝까지 놓지말고 뭔가 해봐라.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 기계를 현명한 방향으로 쓸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잘 자라, 친구. - 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형상기억합금 같은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애써도 그전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었다. - P103

일요일 오후 그와 단둘이 사무실에 갇혀 있다가 삶이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재혼했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남자친구는 가끔씩 생겼지만, 정희의 얼굴에서 어색함과 긴장이 걷히고 친밀감과 피로가 적나라하게 그 자리를 차지할 즈음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을 끊었다. 정희는 자신 곁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숨이 끊어지기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게 될 사람이 권이사가 아니라 그들 중 한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정희는 생각했다. - P122

자신의 밥벌이를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희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많은 회사들 가운데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품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곳 한군데가 없다면 그건 세계의 잘못이 아니라 정희의 잘못일 것이었다. 하지만 정희는 부끄러웠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언제나 부끄러웠고, 모두가 입술을 깨물며 참아내는 그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매번 비겁하게 도망쳐나오는 자신이 버거웠다. - P128

파랑이 채 두살이 되기 전의 어느 여름날, 파랑이 들어 있던 하얀 방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터져버렸다. 방이 폭발하는순간 파랑의 몸도 수천개의 물방울이 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놀랍게도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파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곳은 조금 더 넓은 방안,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종이 위였다. 파랑은 액자에 담겨 어딘가의 벽에 걸려 있었다. 피로와 두려움 끝에 긴장이 풀리자 파랑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파랑은 벽 속에 앉은 채 몇년이고 죽음처럼 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그 순간이 왔다. 짱 하는 소리가 나며 유리에 금이갔다. 파랑은 몸이 둘로 접혀 비닐봉지에 쑤셔넣어진 채 어딘가로 한참을 실려갔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종이를 불 속에 던지기 위해 누군가의 손이 비닐봉지를 헤집는 순간 파랑은 처음으로 다리를 크게 움직여 펄쩍 뛰었고, 마침내 종이에서 빠져나왔다. - P130

"현실반대선언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설명했다. 그건 세상에는 하나의 현실만 있다는 생각에 반대해 몇년 전에 제창된 선언이었다. 사람들이 마음을 두고 애착을 갖는 현실은 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생 동안 매일 스물네 시간 가운데 열여덟 시간을 어떤 드라마를 보면서 보낸다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실은 그 드라마 속 세계가 된다.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산이든, 장난감 로봇이든, 단전호흡이든 마찬가지다. 그가 마음을 둔 곳이 그의 현실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세계는 하나의 특정한 현실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해왔다. 그들은 자신과는 생각이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면서 현실로 회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강요했다. 그 현실이란 건 루시가 속한 세계였다. 배가 고파지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 P159

루시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그런 낡아빠진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현실에 현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에 매몰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앤서빌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여기가 현실이니까요."
루시는 한참동안 착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알겠어, 그러니까. 내가 낡아빠진 사람이라는 거네. 나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가는 현실밖에 모르고, 아, 난 지금은 휴학생이지만, 앤서빌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됐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이름이 좀 세긴 한데요. 현실반대선언은 다양한 현실의 상대성을 인정하자는 게 핵심이지 현실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게 아니니까요. 보시면 알겠지만." 나는 손을들어 마천루 꼭대기 근처를 나란히 떠가는 왕과 왕비를 가리켰다. - P160

"저 사람들은 일종의 껍질이지만 현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나코에%서 통치하고 있지요. 앤서빌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여전히 현실을 필요로 합니다. 슬리퍼를 전혀 벗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예요."
루시가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친구는 내가 현실을 너무 많이 봤다고 하던데."
"여기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단지 주소지가 이쪽일 뿐이죠. 행정상의 문제랄까요. 거기서는 여기의 현실을 보지 않나요?"
"나는...... 전혀 몰랐어. 보고 싶어서 여기 온 거고."
"그렇군요."
"하지만 난 거기 사는데." 그녀는 슬픈 표정을 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걔는 나를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보는거구나, 영화를 보듯이." 루시는 슬리퍼를 신은 발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위로가 될 말을 찾고 싶었다.
"남자친구도 여기 호텔이 있습니까?"
"아니. 응. 아니, 모르겠어. 슬리퍼도 있고, 앤서빌에 온다는 것도내가 알거든. 근데 걔 말로는 자긴 호텔이 없대. 유지가 안된다나. 하긴 걔도 다음 학기에 복학하면 사학년이니까 힘들겠지. 하지만 정말 힘들까? 걘 내 전화를 잘 안 받아. 그런 걸 보면 분명히 호텔에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알려주지를 않아" -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작가가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 보통은 ‘쳇‘ 하는 마음으로 일단 색안경을 끼고, 새 책이 나와도 데면데면, 안 읽고 읽은척, 남들이 열광하며 그 책 이야기할 때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기・・・・・・ 등의 스킬을 구사하던 이비였다. 하지만 몽식이의 글은 매번 순수하게 이비를 감탄시켰다. 동경이 너무 커서 질투나 시기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 P235

이비는 글을 쓰며 화를 냈고, 화를 내다 그 거리의 이야기를 죄다 망쳐버렸다. 냉정하게 보아야 할 곳에서 겁을 내며 눈을 게슴츠레 떴고, 너그러워져야 할 곳에서는 진심도 아닌 위악을 떨다 죽여서는 안될 사람을 죽이거나, 멀쩡한 아이의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게 하기 일쑤였다. 몽식이는 똑같이 더러운 거리를 묘사하면서도 감정에 휘둘려 실수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태양이 떠오르고, 눈으로 문장을 훑는 독자가 그 위로 스며나오는 아침 수프 냄새를 맡으며 군침을 삼키게 할 수 있었다. 그처럼 토사물 범벅인데도 말이다! 그건 숙성이었다. 그의 글에서는 오랜 시간을 견딘 향기가 배어나왔다. 특히 최근 작품들은 대단했다. 대체 태양이 떠오르기를 얼마나 간절히 소망하면,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수프의 따뜻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가다듬으면 그런 문장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 P236

"헐,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냐."
"모른다니까, 너는…………… 내 여자친구도 모르고, 부모님도 몰라. 하여튼 난 내가 무서울 때가 많아. 그래도, 아니 그래선지, 나의 비겁함이나, 나의 오염된 부분, 수없이 많은 편견이나, 미움이나, 미친 듯한 적대감이나...... 내 속에 들어 있는 그런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것들보다는 나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겠어? 그런데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면서 손으로는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했어. 속엔 딴판인 게 들어 있는데 내가 짜증나는 인간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는 않으니, 손가락만 다르게 움직여서 대충 예쁘장한 것들로 치장을 했던 거지. 호감을 사려고 말이야. 꽤 오랫동안 그랬는데 못 느꼈어?" - P252

"저거 혹시 좀더 긴 글도 되니?"
"응, 장편소설을 넣으면 장편소설이 나와. 물론 매우 다른 형태가 되어서 나오지. 주제도 바뀌고, 구성도 바뀌고, 인물이나 사건 같은 건 변하지 않는데, 조금씩 다른 색채가 가미돼서 나와. 말이 안 되는 경우도 꽤 많지만, 나로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
"헐, 미치겠네."
"설정들이 이것저것 더 있는데, 아까 본 건 ‘울타리 뛰어넘기‘
‘가시 뽑기‘ ‘장미와 농담하기‘ 이 세 개 필터를 깔아둔 거고, 다른 필터들도 있어. ‘향기에 집중하기‘, 이건 묘사를 세밀하게 만들어줘. ‘머리에 장미를‘, 이건 살짝 미친 것 같은 문장들을 만들어주지.환각소설이라든가 그런 유 있잖아? 버로스 같은. 우리나라에선 마약이 불법이잖아. 그래서 그런 상태를 맨정신으로 상상하기도 힘들고. 근데 그걸 까니까 그런 게 나오더라고. 상처를 내는 환각이 아니라, 미친 듯 폭주하는데 무지 행복한 환각이야. ‘모두에게 장미차 한잔씩은‘, 이건 좀 긴 글에서만 활성화되는 필턴데, 어떤 인물도 소외당하지 않게 해. 작가가 작품 속에서 어쩌다 인물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있잖아. 그런데 굉장히 교묘하게 수를 써서, 그런 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게 하더라고. 나는 지금 아주 일부만 말한건데, 그런 필터들이 팔십개 정도 있고, 그걸 조합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양해서, 잘만 하면 같은 글은 나오지 않겠더라고. 일단 작가마다 재료를 다 다르게 넣으니까 말이야."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