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건 쉽다. 좋은 소설을 쓰는 게 어렵지.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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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열 살이 되던 해, 너는 결국 능력을 들키고 말았다. 우연히 흘러들어 온 옆자리 남자아이의 속마음에 발끈한 것이 화근이었다. 예전부터 너는 그 아이가 싫었다. 폭력적인 충동에 휩쓸려 주위를 망가뜨릴 뿐인 모자란 아이. 그 아이는 너에게 호감과성적 흥미를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끊임없이 욕설을 뱉고 팔을 꼬집고 치마를 들추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참다못한 너는 결국 소리치고 말았다.
"너, 속으로 나에 대해 징그러운 상상 하잖아!"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본래라면 그 남자아이를 향했을아이들의 미움이 갑자기 너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헐, 괴물이었어? 인간 아니었네. 몰래 우리 생각 읽고 있었던 거야? 소름. 우웩, 징그러워. 더러워. 병균 옮으면 어떡해. 괴물 발견. 죽여라,
죽여. 전부 죽어버려라.
너는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방안에 웅크리고 틀어박혔다. - P49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특히나 따돌림을 당한 아이가 수업 도중 같은 반 아이들 전원의 목을 염력으로 비틀어버린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아이는 끔찍이도 미웠을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의 머리를 폭죽처럼 터뜨려버렸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휴대폰에 녹화되어 몇 달 동안이나 온라인 여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폭탄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데비안트를 동정하지않았다.
운동회 날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찾아오지 않았다. 수년간 너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엄마는 패배했을 뿐이었다. 목이 뽑힌 시체 사진들이 만들어낸 선명한 편견의 굴레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매일 악플과 계란세례에 시달리며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도 그렇게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엄마는 결국 자신의 머리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 P54

눈에 보이는 차등이 생겨나자 아이들은 홀린 듯 다투기 시작했다. 그 사소한 이권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졌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가장 뛰어난 아이들도 C급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도 학원은 등급 기준을 조정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겨우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듯이. 아이들은 자신의 방보다 배 이상 넓고 깨끗한 A급 숙소와 B급 숙소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자 아이들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C급 아이들은 숨 쉬듯 D급을 차별했고, D급 역시 E급에게 똑같은 짓거리를 해댔다. - P56

"여긴 나락이야. 우린 싸워야 해."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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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미국 성인들이 화장지를 사재기할 때, 한 어린이는 81권의 책을 빌렸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걸프포트 공공도서관의 한 사서가 휴관 직전 방문한 책벌레 어린이 이용자에게 대출 한도 없이 원하는 책을 빌려갈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사서들은 ‘공동체의 거실‘을 잃어버린 사회 취약계층을 돌보고자 손끝 닿는 데까지 노력했다. 자전거로 지역 이용자들에게 책을 전달하고, 주차장에서 취약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배급하고, 어린이 이용자들에게 드론으로 책을 배달하고, 정보 소외계층에 노트북과 핫스팟을 제공했다. 이렇듯 다채로운 변화의 와중에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공동체가 소통하고 성장하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공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이다. 도서관을 지키는 건 공동체의 관심이다. 도서관을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책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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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와 수아는 어느새 섬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신기한 생물을 보듯 호기심 넘치는 눈동자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떼지 않는 혐오가, 근처에도 있기 싫다는 듯 방향을 바꾸는 발걸음이 담벼락 너머에서, 문틈 사이로, 전봇대 뒤에서, 거리에서,
가게에서, 집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저 멀리서 민지가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오려다가 다른 사람에게 팔을 붙잡히는 모습을 보았다.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 - P138

자신이 수아를 죽였다. 마녀가 기어코 인어를 죽인 것이다. 비늘에 어린 빛이 약해졌다는 걸 직접보고도 시간을 거슬러와서 그렇겠거니 했던, 그저수아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가만히있었던 자신의 탓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고주시하며 바다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켜야만 했는데. 인간의 악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에서 마녀가 쉬이 인간을 죽이는 모습을 본 인어는 결국 모든 빛을 잃은 것이다. - P152

계속 타올라 재밖에 남지 않았던 마음에 수아가꾸준히 애정을 주니 싱그러운 싹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끊임없는 입맞춤과 자신 하나만 바라보는 시선과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과 크게 울리는 고동 소리와 늘 서늘하나 자신과 닿아 있으면 순식간에 미지근해지는 체온이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서, 마리는 행복했다. 미움과 증오와 경멸과 분노와 혐오가 물에 서서히 젖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행복과 환희와 들뜸을 노래했다. 마녀가 행복을 느끼는 건 모두 수아 덕분이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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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흐르는 걸까. 언제가 되어야 눈물이 그칠까. - P95

수아는 밤에 태어났을 거야. 낮의 활기참을 모아 밤의 다정함 속에서 태어났겠지.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 머리를 들이밀고 나왔다가 많은 사람 중에 나와 눈이 마주쳤을 거야. 채 떠오르지도 않은 햇살을 눈동자에 담아서 내 몸과 마음을 녹여 준 게 분명해. - P100

"인어로 잘 지내고 있던 널… 그냥 두는 게 나았을까?"
자신의 사랑이 강요였을까 하는 의문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삼킨 말마저 들었다는 듯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수아는 바닥에 앉아 마리의 발을매만졌다. 그 옛날 혹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그랬던 것처럼, 발가락 하나하나를 매만지고 발등을 쓰다듬고 복숭아뼈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그렇게 따지면 마녀로 잘 살고 있는 너를 흔든 내가 먼저 잘못한 거 아닐까?"
마리가 수아의 볼을 매만지자, 수아가 그 손바닥에 얼굴을 기댔다. 살며시 얹히는 무게감이 행복했다. 자신과 수아는 서로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단지... 서로의 죽음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곱씹고또 곱씹은 탓에 상대방을 발견한 순간 정신없이 몰두했던 게 문제였다. 마녀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어,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다.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수아가 자신에게 달려올 때부터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우리가 그때 무사히 도망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마리는 내뱉고서야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차리고 웃어 버렸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도대체 시간을 얼마나 거슬러가야 하는 걸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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