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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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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란 존재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살아있는 인간의 피를 먹고 살며, 낮과 밤(빛과 어둠)으로 은유되는 삶과 죽음의 이원적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존재이다. 물론 이러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불과 2세기 안팎이긴 하지만 이 기이한 존재에 대한 대강의 실체를 설명하는 데 부족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의는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존재로서 생기를 먹고사는 사신(死神)이라는 우리의 귀신(鬼神)에 대한 정의와 거의 일치 한다.

 

이렇듯 유사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 형상의 이질성은 물론이거니와 출현의 배경이나 사회적 인식의 출발점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게 한 동력은 동서(東西)의 귀신이 이렇게 서로 다른 배경을 갖게 된 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트와일라잇>이나 <렛미인>과 같이 신비로움과 달콤한 사랑의 고통을 수반하는 뱀파이어의 등장에 이르면 뱀파이어가 현실의 인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21세기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된 것인지를 은근히 추적케 한다.

 

1. 귀신과 뱀파이어

 

서구의 뱀파이어란 존재는 언제,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그리고 왜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러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 역시 이 존재의 출현에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종교가 항상 그러해왔듯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면 악의적으로 형상화해서 그것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쓴 것처럼 “뱀파이어 사례가 보고된 시기는 항상 치명적 질병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의 자비를 얻지 못한 망자들이 중간 세계에서 방황하는 것이며, ‘마르틴 루터’가 그의 저술 《탁상 담화》에서 “그 불쾌한 소음은 사탄의 소행”이라고 언급하는 것과 같다.

 

이 지옥의 망상적 존재가 오늘의 뱀파이어로 형상화되는 것은 이처럼 종교적 산물이며, 사회적 반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귀신과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 할 수 있다. 한국의 귀신은 사회가 소외시키고 배제시킨 대상이 무엇인지 발설하여 불합리한 현실을 준열하게 비판하고자 한 반면에 뱀파이어는 오히려 부조리함을 은폐시키기 위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환기하는 장치로서의 귀신과 대비하여 서구의 정신세계는 책임회피를 위한 망상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귀신은 현실적 규범과 질서의 균열로 인한 부정에 의해 희생된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어 사회적 건강성을 회복시키려는 시대적 합의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사탄이고 악마이며 신의 권위에 대항하는 사악한 존재로 치부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나, 자신들의 영역에 침입하는 어떤 것에 불온한 이미지를 씌워 배제시킴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영역을 지키겠다는 내심의 반영에 머무르고 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6~7세기에 대두된 이 존재의 이러한 정체성은 세기가 흐르면서 꾸준히 변화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우리의 귀신, 특히 처녀귀신 등, 여전히 과거의 전통적 산물에 머물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측면이다.

 

2. 뱀파이어의 진화?

 

책은 이 혼란스러운 망상의 산물인 흡혈귀가 서구사회에서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것은 문학과 회화, 음악과 영화 등 문화적 도구들을 통해 그 형상과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추가해 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성에 의해 망상이 짓눌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곧 이은 낭만주의 시대는 이 망상의 산물에 휘황찬란한 형상을 입히기 시작한다. 괴테를 비롯한 무수한 작가들의 작품을 토대로 1836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흡혈귀의 상당부분을 형상화한 작품인‘테오필 고티에’의 《죽은 연인》을 낳는다. 인간적 감정을 지닌 존재이며 자신의 희생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최초의 흡혈귀, 게다가 뱀파이어와의 결합이 영생(永生)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도 이 소설이 처음인 모양이다.

 

그리고 최고의 판타지 문학상의 이름이 된 그 유명한‘브램 스토커’의 소설,《드라큘라》의 출현은 바로 뱀파이어의 모든 변형들의 전범(典範)이 된다. 아마 대략 이 시기부터 문학과 영화, 음악 등이 상호 교섭하며 각양각색의 정체성을 지닌 뱀파이어들이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비록 저작권 문제로 인해 《노스페라투》라는 이름으로 발표될 수밖에 없었으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가장 탁월하게 영화화한 감독‘무르나우’의 천재성에 기초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햇빛은 뱀파이어에 치명적이다.”, “길고 뾰족한 송곳니” 처럼 뱀파이어의 기호가 된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여기에서 형상화되었다고 전하니 말이다.

 

이것을 기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뱀파이어류의 소설과 영화, 오페라와 연극 등이 발표 되었으니 책에 소개된 특유의 시학적 감각으로 컬트적 지위를 지닌 B급 영화들까지 쫓다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 망상적 존재의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된다.

이와 같이 뱀파이어가 사회문화 전반에 양적으로 양산되는 것과 함께 질적 변화도 수반되어 왔음을 목격하게 된다. 모두(冒頭)에서 말한 바와 같이 초기의 뱀파이어는 그저 종교와 사회적 부조리를 은폐하고 배제하기 위한 존재였다. 그러나 브램 스토커에 이르러 신에게 맞서는 대적자로서의 사탄으로 변형되고, 노스페라투에 가서는‘인간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철학적 대화에 이른다.

 

드디어 양산과정에서의 경쟁은 단지 혐오와 헌신 사이를 오가는 긴장이나, 피안의 존재가 지닌 어두운 마성위에 보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동기를 부어 넣기 시작한다. 희생자 여인과의 성적 결합, 피에 대한 욕망과 같이 관능과 관음증을 집중 공략하는 트래쉬 무비들을 낳지만 이 대량생산은 자연스레 인간적, 사회적 반영을 내재하게 된다. 즉 진화의 도약을 이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도태와 선택의 과정을 겪으면서, 신의 창조에 맞선 자부심으로서, 섬뜩함의 정체에 대한 자연의 경외에 대한 탐색으로, 환생과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써, 인간의 영생에 대한 은유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급기야 “육체와 피의 봉헌극”이라는 도식을 벗어나《트와일라잇》같은 청교도적 동화 같은 뱀파이어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어떤 존재가 만들어졌다면 분명 이유가 있다. 그런데 수세기를 변모해서 오늘에 이른 뱀파이어는 어떤 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3. 마무리 말

 

21세기 문화로써의 뱀파이어는 사실 그 동기를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망상적 존재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면 지나친 얘기가 될까? 고작 매력적인 남자친구와 이를 원하는 소녀와의 이룰 수 없는 달콤한 좌절의 고통을 매개로 한 사랑이야기가 전부일 정도다. 본래 태생이 건강한 것이 아니다보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한낱 상품으로서 전락한 것이 아닐까? 본디가 상품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은폐 상품, 주류의 위장 상품, 그리곤 인간의 영원한 욕망인 생명에 대한 희구라고 구색을 맞추긴 하지만 사실 그 사회적 존재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 난 것인지도 모른다.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이처럼 상품시장에서의 도태를 피하기 위한 처절한 변신, 신상품 기획의 요구에 대한 고달픔이 느껴진다. 정체성이 달라진 귀신은 이미 또 다른 존재인 것이지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지 않을까? 아무튼 서구의 흡혈귀에 대한 통속적 고찰이랄 수 있는 이 책의 망라적 소개는 충분히 흥미로운 자료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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