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식룰렛 : 진실에는 행운도 불행도 없다. 그저 잔인한 진실뿐. 그래서 우리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솔직해지는 순간 게임은 거기서 끝난다. ▷장미의왕자 : 고독한 사람의 내면에는 또 다른 나를 하나씩 갖고 있다. 사랑이 힘든 건 상대방이 ‘내면의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용품 :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영화가 내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불연속선 : 우연과 인연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의 인생은 불연속선처럼 이어질듯 말듯한 선을 따라 연결되고 있다. ▶별의 동굴 : 마지막 남은 내 삶의 울타리가 무너질 때 나는 무엇을 붙잡을 수 있을까. ▷정화된 밤 : 같은 음악에 다른 해석들이 존재하듯 내 삶의 평가도 그럴 것이다.


#예상 범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던 나는, 상처받고 쓰러졌던 곳에 기둥을 세웠다. 그 기둥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나는 그 안에서 살게 되었고, 그것은 곧 울타리가 되었다. 서른쯤이 되면서 그 울타리가 보였고 내 영역을 정리하는 밤을 보냈던 것 같다. 울타리가 보인다고 해서 미래가 뚜렷해진 건 아니다. 다만,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소설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울타리가 침입당하는 과정과 순간을 그려 나가고 있다. 갑각류가 허물을 벗을 때 가장 연약해지듯이 그들의 울타리가 깨어졌을 때 그들은 가장 연약한 상태로 노출된다.


#행운과 불행
행운과 불행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매번 행운을 발견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에 대비만을 신경 쓰는 사람도 있고 끌려다니면서 후회만 하는 사람도 있다. 행운과 불행은 말 그대로 운명이다. 그래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만, 삶이 그 두 가지를 오르내리기에 우리의 고민과 걱정은 거기에 닿아있는 것이다. 샘플러 잔에 담긴 술들은 그 맛과 향이 다 다르다. 손님들은 샘플러를 시음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술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술의 가격까지 미리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식 룰렛>에서처럼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알 길이 없다. 우리의 인생도 죽는 그 날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죽은 후에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시시때때로 느끼는 행운과 불행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얽힘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아픔들이 있다. 어릴 땐 항상 나의 아픔에 갇혀 지냈고 그것에 내 자아를 심어 키웠다. 잘못된 토양에서 시들한 정체성이 자라났고 그건 단지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라 치부했다. 타인과의 얽힘이 나의 토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정체성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죽는 그 날까지 ‘과정‘의 한 점 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6편의 작품들. 작품을 넘어 비슷한 인물이나 소품들이 겹치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얽힘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이나 나도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다만, 다른 이와의 얽힘이 이야기를 만들고, 서로의 토양이 섞여 비옥해진다면 내 뿌리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복제인간을 통해서 삶의 한계성, 존엄성, 보이지 않는 틀, 깨달음, 바꿀 수 없는 현실, 유한한 인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1990년
‘1990년대 후반 영국’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SF장르이면서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대로 쓰였다.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미래사회 모습의 묘사를 피하고 인물 내면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복제인간
내가 저들처럼 태어나고 길러졌다면 나는 그 틀을 깰 수 있을까? 이해도, 체념도, 시도도 못 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근원자와 카세트테이프
근원자를 찾아 나서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선 이 부분을 단순하게 축약했지만, 책에선 긴 내용으로 나온다. 근원자가 아니라고 느끼던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근원자는 희망이자 미래이다. 반면 테이프는 똑같은 삶의 인정이고 체념이다.

후회
많은 후회와 자책들이 서려 있다. 후회는 그들을 더욱 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존엄성
캐시와 토미가 에밀리 선생님과 재회하는 부분에서 인간과 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자경(인격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얻는 일)을 하는 생명체라면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법사들 (마음산책X) 개봉열독 X시리즈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심
첫 부분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판의 미로> 이런 판타지 영화들이었다. 상상으로 채워진 라브로보 숲. 그건 아이에게 실재하는 세상이고, 대화 상대이며, 악당이면서도 친구이다. 이 책에 ‘동심‘이라고 직접적인 단어가 나오진 않지만, 포스코 자가의 어린 시절은 동심으로 가득하다. 동심의 뜻을 찾아보면 ‘어린이의 마음‘이라고 나온다. 특별히 ‘상상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어린이의 마음‘ 자체로 ‘순수‘와 ‘상상‘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이다. 순수성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첫 선물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첫 시련은 그걸 다시 거둬가는 일인가 보다.

#마법사
자가 집안은 그런 상상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펼쳐서 먹고 사는 일명 마법사들이다. 그래서 아버지 ‘주세페 자가‘는 막내 ‘포스코 자가‘의 상상력을 칭찬한다. 예전의 마법사는 광대, 예언자, 점성술사, 약사 등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에 상상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자가 집안은 그걸 이용해서 러시아 여제와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고 정치적, 외교적인 집안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포스코는 아버지의 그런 방식이 무너지는 현실을 경험한다. ‘시대의 변화인가‘ 아니면 ‘한계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포스코는 작가를 꿈꾸게 된다. 꿈꾸는 인간, 마법사, 작가가 하나의 플레임 안에 합쳐지면서 글을 쓰는 자신을 신비롭게 포장하고 있다.

#펜과 종이와 잉크
포스코는 집안의 가업을 글쓰기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테레지나의 부탁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시대적 요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글을 통해 집안과 테레지나와 라브로보 숲을 불멸하게 한다. 작가 로맹 가리는 포스코를 통해서 이러한 기록의 불멸성을 표현해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죽어가는 테레지나를 글로 옮겨 살리려는 부분은 절절하면서도 가슴이 미어진다. 작가의 소설, 사람들의 일기. 혹시 우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그 이야기가 영원히 살길 바라는 건 아닐까? 나는 잃고, 병들고, 죽어가지만 내 글은 남아, 나의 꿈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

#테레지나
오, 사랑하는 테레지나. 테레지나는 엄마이자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남자의 로망을 담은 그녀. 하지만 사랑을 한다는 건 유년기를 잃는다는 의미이자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고통은 삶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다. 기록으로 사랑을 영원히 살아있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 것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의 행복을 추억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일까? 왜 그 괴로움을 기록해서 계속 유지되길 원하는 것일까? 괴로움도 사랑인가? 아픔도 추억인가? 우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진 존재. 그래서, 그래서 상상력의 마법이 이 시대에도 살아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
상상을 파는 직업이라도 현실의 무게는 냉혹했다. 로맹 가리는 시민혁명이 활발하던 시기를 다루면서 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서술한다. 이탈리아, 러시아에 대한 역사를 잘 모르지만, 그 뉘앙스만은 눈치챌만하다. 그래도 좀 더 알고 있었으면 유쾌하게 떠들고 욕하면서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든다. 역사적인 현실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도 잘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와 한 여자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이 현실의 벽을 만나 뭉개지고 가로막힌다. 우리는 그 벽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작가 로맹 가리도 이 작품 이후 새로운 길을 택하게 되었다니 더 의미심장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책의 실험 : 챕터 제로
롤링다이스 엮음 / 롤링다이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HAPTER_0
기술의 발달로 출판 환경이 변화했다. <책의 실험 - 챕터 제로>는 2015년 8~9월 동안 출판업 관련자들이 모여 대담회를 나눈 내용을 엮은 책이다.


#미디어의_변화
˝기록된 것을 통한 기억을 신뢰하는자는 점차 스스로의 기억을 소홀히 하게되어 결국 영혼을 상실하게 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받아 적어서 출판물로서 전달되면 대화 속에 담겨 있는 영혼들이 사라진다며 소크라테스는 비판했다고 한다. 그 당시 뉴미디어였던 책은 이런 대접을 받았다. 지금 들어보면 황당하지만 한편으론 모바일로 대변되는 요즘 뉴미디어 환경에서 내가 받은 인상과 너무 비슷해서 놀랍다.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가 ‘요즘은 전화번호도 외우지 않고, 모르는 건 검색으로 찾게 되어 인간이 뇌를 덜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외우는 데 많이 썼다면 요즘은 정보를 입력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뇌를 많이 쓰며, 디지털 디바이스가 등장한 이후로 인간의 뇌를 덜 쓴다는 어떠한 연구도 없다고 이야기 했던 게 생각났다.


#책읽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성근 대표님의 말 중에 책 읽기를 잉여활동으로 이야기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핸드폰이나 TV를 볼 시간은 있으면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시간‘은 ‘잉여 활동을 할 시간이라는 것. 책 읽기가 지식, 교양을 얻는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잉여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책 읽기 = 사색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얼마나 일하는지. 그런 것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사실 잉여 시간이라는 게 남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정부에서 하고 있는 독서 캠페인 같은 게 어떤 면에서는 좀 환상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책을 읽어라‘보다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바른길 아닐까요. 책을 읽도록 만드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책을 읽어도 되는 환경.˝


독립서점에서 독립 출판물을 사겠다던 계획으로 만나게 된 CHAPTER ZERO. 셀프 퍼블리싱 책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책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가끔 우연히 발견되는 이런 보물들이 내 생활에 큰 힘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득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경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이 마지막으로 썼던 소설 <설득> 나에겐 그녀의 첫 소설이었다.


#옛 여인
살다 보면 사랑과 애틋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관계가 생기는데 전남친, 전여친이 꼭 그렇다. 특히 주변의 영향으로 헤어지게 되었다면 그 애틋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설득>은 바로 이 둘의 감정변화가 중요한 소설이다. ‘난 아직도 사랑하고 있지만, 그는 과연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사랑과 긴장감과 주변의 조언들로 인한 혼란이 동시간대에 존재한다.


#사랑만으론
19세기 영국처럼 현재는 신분의 문제로 사랑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사랑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인간도 동물이란 걸 깨닫는다.


#번역문제
번역은 정말 문제가 많았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일과 가독성의 문제 사이에서 다시 균형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