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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거인의 무덤

 

이 소설의 바톤은 오래된 설화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에서 액슬에게 넘겨진다. 브리튼인과 색슨족은 이 땅의 일시적인 거주자들에 불과하며, 진짜 토박이는 도깨비들이라고 넌지시 언급하는 이야기꾼은 시종일관 회의적이다. 사람들은 생존에 급급하여 진짜 찾아야 할 것을 찾지 않고 포기하거나 부적합한 명령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모든 비극들은 도깨비 탓으로 돌리면 된다. 이처럼 난폭한 일에 철학적으로 대처한다는 태도는 결국 삶의 여백을 그대로 방치하는 데 이르고 만다. 모든 소설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삶의 여백에 대한 의문을 통해 시작된다. 안개가 뒤덮고 있는 이 대륙의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모든 건 제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 이야기도 끝내야 한다는 회의주의에 잠기게 된다. 그로 인해 결국 정말 찾아야 할 것까지 잊어버리고 만다. 어른들은 마르타를 찾으려다가 독수리에게 정신이 팔린다. 마르타를 찾는 사람은 오직 액슬 뿐이다. 비어트리스와 액슬 부부의 기억도 점차 사라지고 흐릿해져 가고 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퍼즐을 맞춰간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의 시작은 그들이 끝내 잊어버리지 않고 있던 소중한 것, ‘아들에게서 기인한다. ‘아들은 그들에게 촛불을 빼앗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망각의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흔한 동화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그들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험을 무사히 통과해 아들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험의 시작부터 여의치 않다. 그들은 손을 잡고 가는 대신 상대방의 안전을 걱정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서로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밖에는. 부르면서 간절하게 대답을 바란다는 것, 그 대답이 돌아왔을 때의 안도가 이 소설의 감정 저변을 흐른다.

하지만 이 안도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그들을 둘러싼 주변 상황은 그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몰아붙이고 닦달한다. 그들 부부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거인의 무덤 위를 오간다 하더라도 윈스턴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역사라는 거인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가웨인 경의 주장대로 모든 이들이 전쟁과 증오를 망각하고 평화롭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이미 그런 바람의 균열을 암시한다. 비어트리스와 액슬 부부는 초를 받지 못했고 윈스턴은 자신을 색슨족이라는 이유로 내친 브리튼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가웨인은 금발 처녀에게 복수할 기회를 줬지만, 그녀는 서투르게, 색슨 족 기사를 괭이로 내리찍을 뿐이다. 그 행위는 색슨 족 기사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이 작업을 수행하는 그녀 자신도 지치게 만든다. 이 지난한 복수의 과정은 망각으로도 지울 수 없다. 거인은 완전히 죽지 않았고 파묻혀 있을 뿐이다. 거인은 어쩌다가 그 곳에 파묻힌 것일까? 이미 그들이 있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도깨비들의 싸움이 있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 거인이 죽었다고 믿었노라고, 죽은 거인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 모든 과거-역사를 알게 될 것이다.

윈스턴은 암용 케리그를 죽이고 모두가 과거를 기억해내는 순간-파묻힌 거인이 깨어나는 순간, 증오는 되살아나고 전쟁이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순수한 색슨 인으로서의 증오가 아니라, 브리튼인과 색슨족의 경계를 뛰어넘었던 동료애와 즐거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부부는 윈스턴의 뒤를 이어 전사가 될 꼬마 에드윈에게 그들의 호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윈스턴의 바람과 달리, 에드윈에게도 혼돈이 주어지는 것이다.

 

 

 

안개

 

비어트리스의 목적은 아들을 찾는 게 아니라 안개를 없애는 것일지도 모른다. 액슬은 케리그에게 다가가면서 점차 자신의 잃어버렸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 기억은 그들을 기쁘게만 했던 기억이 아니라 절망에 빠뜨리고 때로는 서로를 갈라놓기도 했던,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었다. 액슬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사랑이 맺은 결실이었던 아들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촛불 하나 허락하지 않는 마을을 떠나서, 그들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을 아들의 마을. 그 곳은 그들에게 가정된 이상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모험의 목적이 사라진 순간, 액슬은 비어트리스가 지쳐버리지 않을지 걱정한다. 그 지친다는 것은 모험의 강제 종결을 뜻한다. 그는 친절한 뱃사공이라고 평가하던 것과 달리 중반으로 갈수록 뱃사공의 속임수에 대해, 교활한 뱃사공에 대해 비난한다.

반면 비어트리스에게 기억의 재생은 그들의 결합을 뜻한다. 그녀는 뱃사공 앞에서 그들이 다른 대답을 할까봐 두려워하고, 계속 떠오르는 기억들을 말하면서 액슬과 나누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녀는 그들이 좋았던 기억만을 떠올리는가? 언뜻 불화와 갈등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그녀 또한 기억하고 있다.

액슬은 주저하고 비어트리스는 이끈다. 비어트리스는 액슬에게 가다가 혹시 낯선 사람을 보거나, 부근에서 누가 우리를 부르거나, 불쌍한 동물이 덫에 걸렸거나 도랑에 빠져 다친 것을 보거나 그 비슷한 일이 눈에 들어와도 절대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걸음을 늦춰도 안 돼요.”라고 조언한다. 액슬은 비어트리스의 말을 충실히 따른다. 이 여행에서 모든 걸 결정하고 미루고 판단하는 사람은 비어트리스다. 그녀는 안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많은 전설과 로맨스로 파생되는 아서왕 전설의 인물들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잊히거나 너무 오래된 인물들이다. 가웨인은 윈스턴이 소년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케리그를 처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멀린은 죽었다. 아서왕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 있다. 색슨 족과 브리튼인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전제 하에서다. 하지만 이 모순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액슬이다. 액슬은 아서왕을 전설이 아닌 실제 인물로 격하시켰으며, 그의 모순을 파악하고 심한 말을 했다. 가웨인은 액슬을 사랑하면서도 용서할 수 없었다. 윈스턴과 마찬가지다. 가웨인은 과거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윈스턴을 바라본다. 그들의 전쟁은 평화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 땅에 가져온 건 분쟁과 소음이었다. 모든 전설의 온화한 끝은 현실과 부닥치고, 이 충돌을 막고 모든 것을 정지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안개다.

가웨인이 암용 케리그에 대해 교활하고 영리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상 가장 영리하고 교활한 건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의 기억에 대해, 현재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의심한다. 하지만 그 의심이 이 소란한 가운데서도 한 줌의 공기처럼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액슬은 비어트리스에게 계속 과거의 기억이 그들을 방해하더라도 지금 사랑을 이어나가자고, 계속 사랑해 달라고 애원한다. 비어트리스는 그런 그의 불안에 응답한다.

안개를 헤치고 그들이 찾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기억은 그들의 생각처럼 아름다운 형상은 아닐 테지만, 그건 아름다울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아름답고,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아득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고 오기를 부렸다. 그 상실의 순간을 망각을 통해 이겨냈다고 말하며 그 망각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상처가 다시 재생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망각은 반창고처럼 떼어졌고, 그들에게 남은 흉터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있노라고. 그 상실을 우리가 함께 견뎌냈다는. 가장 잊혀지지 않는 상처는 상실이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그 상실을 치유하기 위해 소소한 기억들을 끌어당기고 메꾸어야 했던 필사의 노력들이다. 어쩌면 신은 그들을 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이 베푼 자비란 그들이 잠시만이라도 망각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고 믿을 수 있도록 잊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부와 홀아비의 서사

    

소설에서 거듭되어 나오는 뱃사공의 일화는 자못 이 소설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남편 없이 남겨진 노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연약한 짐승의 살해로 뱃사공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뱃사공은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노파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노파 부부는 한때 서로 저 섬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했고, 그로 인해 노파 혼자만 남겨진다. 그들은 공통의 아름다운 기억을 제시하지 못했다. 검은 옷을 입은 과부들은 가웨인에게 케리그를 처치하지 않았다며 진흙 덩어리를 던지고 비난한다. 가웨인은 그녀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캐묻지만, 그들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이 대륙의 모든 이들은 부부가 아닌 이상 서로의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을만큼 서로를 쉽게 망각해 버리게 된다. 결국 남편과 아내, 혹은 유대관계나 원한 관계만이 서로의 존재를 입증하고 기억한다. 한 쪽을 상실하게 되면 그 상실한 것을 애도해야 할 텐데, 그 애도 대상조차도 또렷하지 못하다. 그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기억을 확인해줄 이조차도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탄식한다.

과부들은 그들의 존재조차도 흐려져 버렸다고 말한다. 허공에 형체 없이 떠돌아다니는 안개처럼, 그들에게는 끝도 보이지 않는다. 뱃사공은 그들을 태워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는 식욕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비어트리스는 그 섬에 갈 때 그들이 공통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만, 액슬은 둘이 같이 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무찌르고 해치운다. 픽시 도깨비들이 비어트리스를 내달라고 말할 때, 액슬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바로 비어트리스의 안전이다. 그는 비어트리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잃기 두려워하고, 그래서 더 의심하며, 의심 때문에 뱃사공을 더욱 더 두려워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뱃사공은 비어트리스가 말한 기억과 액슬이 말한 기억이 일치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비어트리스를 자신이 들어올리겠다고 말하며, 액슬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가 다시 돌아와 액슬을 데리러 가더라도, 액슬은 이미 홀아비가 되어버린다.

세상에 남겨지는 건 결국 두려움이다. 우리가 믿었던 어떤 확신들은 다 사그러진다. 의심은 모든 것을 두렵게 하고, 애도할 줄 몰라 갈팡질팡하게 하며, 모든 것을 다 내버리거나 다 끌어안고 있게 만든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인 화자들은 불평하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위로하고 회개하며,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이 이야기를 굽어보고 있는 이야기꾼은 현대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노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없는 폐기 직전의 도구이며, 컴퓨터가 있는 현재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역사책에 불과하다. 자본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소비자 축에 껴주지만, 그 소비능력조차도 미약하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어린애와 같이 한없이 무능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시간을 거쳐온 역사다. 어떤 역사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묘하게 위로가 된 것처럼, 잠꼬대처럼 낮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마주한 커다란 실수가 사실은 번복된 것이었고, 이를 무마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허사였으며, 결국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하는 모든 회의주의를 격파하듯이. 시간이 가도 잊히지 않는 어떤 소중한 것이 있노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번복되고 있는 모든 실수와 과오와 두려운 참극들은, 어쩌면 실수를 무마하고 용인하기를 거부하는 자세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윈스턴은 그들을 사랑하려고 했지만, 사랑을 거부한 건 그들이었다. 브리튼인과 색슨 족은 싸우다가 결국 서로의 손에 멸망할 것이다. 이들 앞에서 우리는 쉽게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전쟁인가, 망각인가? 망각이 일시적인 구원이라면, 그 구원은 일시적이라는 이유에서 거짓인가, 아니면 구원이기에 구원일 수 있는가.

적어도 우리가 망각하는 가운데서도 기억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이 무거운 묵시록의 끝에서 아주 하찮아 보이고 곧 소멸해야 할 것처럼 연약한 암용 케리그처럼-희미한 빛으로 뻗어나가는 비어트리스와 액슬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사랑해왔으며, 평생 서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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