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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상처입고 피폐한 짐승
-세라 워터스 ‘리틀 스트레인저’-
닥터 패러데이
책의 뒷면에는 보통 유명인들의 추천사와 함께, 이 책의 내용에 구미를 당겨줄 멘트 서너줄 이 실리게 마련이다. 이들은 책의 구매에 기여하는 바이나, 간혹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추리나 스릴러 소설들이 저지르는 오류다. 가령 밀실 살인 소설에서는 밀실의 작동 방식뿐 아니라 범인의 정체도 중요한 편인데, 늙은 노인이 만드는 밀실 미스테리라고 써놓는 식이다. 세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발표한 추천평이 압권인데, ‘문학 사상 가장 믿을 수 없는 화자 중 하나로 기록될 인물 패러데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패러데이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지고 있고, 때문에 독자는 패러데이의 인도에 따라 작품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추천평을 읽은 이들은 이제 패러데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 읽은 후에서야 추천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다시 읽게 된다. 사실 패러데이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시대의 흐름에 의한 젠트리 계급 사회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데이는 분명 헌드레즈 홀을 “망가뜨려서라도 갖고 싶을 만큼” 사랑했다. 그는 도토리 장식을 칼로 파서 억지로 떼어낼 만큼 그 일부를 가지고 싶어했다. 이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부과된 어떤 ‘계급’과 이에 대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패러데이는 과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맞았고, 부모님의 어려운 사정과 ‘도토리 장식’을 가지면 안된다는 금기 앞에서 분함과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그 ‘출세’마저도 계급 앞에서 별다른 소용이 없다. ‘가정의’가 그의 한계인데, ‘가정의’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동료 실리나 그레이엄처럼 대대로 의사 집안이거나 젠트리에게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그가 캐럴라인과 로더릭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사실상 젠트리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는 젠트리의 하인이었던 이들에게 묘한 공감을 보이는데, 베티를 설득하는 한편 며칠이라도 쉴 수 있게끔 입을 맞춰주거나 에어즈 부인과 로더릭의 하인들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에 은근히 반감을 내비치는 것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열등감과 욕망이, 패러데이를 헌드레즈 홀의 파국에 기여한 전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에어즈 가문은 무고하며 패러데이라는 낯설고 하찮은 방문자에 의해 파괴된 것일까? 패러데이가 원한 것은, 헌드레즈 홀에 사는 이들을 망가뜨려 내보내고 망가진 헌드레즈 홀이라도 가지는 것이었을까?
그는 에어즈 부인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에어즈 부인은 곧 헌드레즈 홀이다. 패러데이가 원한 건 에어즈 부인의 죽음이 아니다. 유일하게 헌드레즈 홀과 어울리는 에어즈 부인의 보존이었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에어즈 부인의 손을 잡고 굳게 약속한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캐럴라인이지만, 정작 찬사는 에어즈 부인을 향해 대부분 소모된다. 패러데이가 사랑하는 건 헌드레즈 홀이며 그가 원하는 건 헌드레즈 홀의 보존이다. 이를 위해서는 헌드레즈 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주로서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로더릭의 부담감을 파헤치고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데 일조하지만, 그는 로더릭이 보는 환상-그들을 헌드레즈 홀에서 내쫓으려 하는-의 환각성을 주장하고 이를 명명백백히 밝히려고 애쓴다. 패러데이는 로더릭에게 같이 헌드레즈 홀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 소설에서 단 한번도 헌드레즈 홀에서 밤을 보내는 걸 허락받지 못한다. 헌드레즈 홀에서 떨어진 에어즈 가문의 사람들은 그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 다음은 에어즈 부인이다. 설령 그가 의식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는 헌드레즈 홀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과 함께 헌드레즈홀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 선택은 캐럴라인을 향한다. 물론 에어즈 부인이 그 홀에 더 어울리기는 하지만, 닥터 실리의 말마따나 캐럴라인이 에어즈 부인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녀는 에어즈 부인보다 조금 더 오래 살수 있기 때문이라고-말하기보다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헌드레즈홀이 에어즈 부인이었다면 현재의 굴욕적인 헌드레즈 홀은 캐럴라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베이커하이드의 처남은 캐럴라인 대신 골동품인 하프시코드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은 그녀를 ‘못생겼다’고 수군거린다. 그녀는 잡초가 우거지고 정돈되지 않은 헌드레즈홀을 닮았다. 그는 캐럴라인이 결혼식 예복을 맞추기를 거부하자 그녀의 낡은 드레스를 들고 가서 치수만 참고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새로이’ 이 디자인을 살려 만들어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캐럴라인은 그를 거절하한다. 이제 그에게 캐럴라인을 위해 준비했던 예물과 드레스는 쓸모가 없다. 헌드레즈 홀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드레즈 홀-캐럴라인은 그를 거부했고, 그는 그것들을 놔두고 도망친다. 과거 어린 패러데이가 헌드레즈홀에 매혹당했듯이, 어른 패러데이는 몰락해 가는 헌드레즈 홀에 매혹된다. 그는 자신이 캐럴라인을 사랑했었는지 자문하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헌드레즈 홀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가고 금치산자인 로더릭에게 헌드레즈 홀을 ‘귀속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게 헌드레즈 홀이었는가? 아니면 뒤틀린 인정 욕망이었는가? 모두가 떠나고 폐허로 남은 헌드레즈 홀에서 그는 차라리 누군가가 자신을 이곳에서 내쫓아주기를 바란다. 캐럴라인의 말대로라면, 그 조그맣고 성가신 것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는 건 그의 방향 잃은 집착 뿐이다.
캐럴라인
패러데이와 동료 의사인 실리는 권태에 찌든 인물이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잘생긴 아들들을 두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히스테리를 부린다. 패러데이가 원하는 아늑하고 따뜻한 가정에 대대로 의사였다는 가문까지 가지고 있지만, 실리는 지쳐있다. 그는 패러데이를 질투하지도 않는다. 패러데이의 환상이 끝나면 남는 건 욕망과 타산적 이익과 손해밖에 없다는 걸 냉정하게 지적하고 그를 부추길 뿐이다. 이 소설에서 사실상 제일 최악이자 신뢰할 만한 화자는 실리가 유일하다. 어쩌면 실리가 우스갯소리로 지껄인 말들은 소설을 읽는 사람들과 패러데이의 시점에서 쓰인다는 전제 하에-헛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패러데이가 그의 말을 캐럴라인에게 화를 낼 때 그대로 옮긴다는 점에서 보면 단순하게 지나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실리가 유일하게 칭찬하는 사람이 캐럴라인이다. 이는 단순히 패러데이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실리는 캐럴라인이 ‘영리한 아가씨’라고 말한다. 캐럴라인은 영리하고, 저돌적이다.
캐럴라인이 패러데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척 몸짓을 취한 것은, 패러데이의 런던 방문기를 듣고 난 후부터다. 패러데이가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를 반긴다. 하지만 정작 패러데이가 그녀에게 구혼자의 몸짓을 취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거부한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어떤 의심의 표출로도 읽을 수도 있다. 닥터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에게 에어즈 부인이 야반도주를 할까봐 겁을 낸다고 말하고 덧붙인다. 그들은 그렇게 경망없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 곳에서 영원히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그러나 캐럴라인은 집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패러데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거나, 젠트리로서의 계급 차에서 오는 혐오 때문에 패러데이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하며, 군인으로 복무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한때 그녀도 헌드레즈 홀의 영광을 꿈꿨던 적이 있다. 그녀는 베이커하이드 일가를 초대했을 때, 에어즈 부인의 과거처럼 아름답게 꾸미려고 애쓴다. 그녀의 드레스는 구식이었지만 ‘솔직히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목선이 낮게 파여 그녀의 두드러진 쇄골과 목의 힘줄이 드러났고, 부푼 가슴에 비해 보디스를 너무 조였다. 눈꺼풀에 색조화장을 하고 뺨에는 연지를 칠했으며,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깜짝 놀랄 만큼 크고 두꺼웠다. 사실 맨 얼굴에 그 맵시 안 나는 낡은 치마와 에어텍스 블라우스를 입었을 때가 훨씬 멋지고 그녀답게 보이는 것 같았다.(125p)’ 캐럴라인은 패러데이의 칭찬을 받지만, 패러데이는 ‘나 자신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너그럽다. 처음에 캐럴라인은 그의 찬사를 받고 기뻐하지만, 이내 베이커하이드의 처남 폴리와 베이커하이드의 말 ‘못생긴 사제놈 주제에 얼굴을 밝힌다’는 말로 그 찬사의 무용함을 알게 된다. 그녀를 칭찬해주고 아름답다고 말해줄 사람은 패러데이 뿐인 것이다. 그녀의 자존심을 꺾어 놓는 ‘고작 패러데이’. 캐럴라인은 베이커하이드의 딸 질리언의 얼굴이 지프 때문에 다쳤다는 소리에 날카롭고 매정하게 말한다. “이젠 확실히 콤플렉스가 생겼네.”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매정한 말에 놀란 눈치였다고 하지만, 이는 패러데이의 서술일 뿐이다. 그는 “그녀의 명예를 위해 말해두자면”이라고 덧붙인다.
캐럴라인이 패러데이에게 원망하듯이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일년 전에 이 곳을 떠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헌드레즈 홀을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미 에어즈 부인은 헌드레즈 홀이며, 로더릭은 헌드레즈 홀을 지키는 것 외에는 어떤 삶의 사명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녀를 붙잡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자 그녀는 패러데이마저도 차버린다. 패러데이는 그녀에게 어떤 ‘도구’였을지는 몰라도 ‘사랑’은 아니었다.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이 불안하고 힘들어 보인다고 말하지만, 캐럴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에 차 있었다. 그녀는 ‘집에 사는 것’이 일종의 협정이었다고 하지만, 협정을 지킬 만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협정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패러데이는 구식에 익숙한 인간이고, 그래서 협정의 준수를 거부하는 캐럴라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캐럴라인은 패러데이와 함께 참석한 의사들의 무도회에서 전혀 다른 인간이 된다. 패러데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조신하게 그의 곁에 붙어 있기보다는 동갑내기 친구와 팔짱을 끼고 다니며, 다른 남자와 춤을 춘다. 패러데이가 묘한 불쾌함을 숨기면서 많이 친했던 친구냐고 묻자, 싫어하는 쪽이었다며 스스럼없이 대답한다. ‘젠트리’의 소멸을 원하는 것 같은 이 현대 사회가 갑갑하다고 말하던 에어즈 가의 식구들 중 캐럴라인만은 유일하게 그 곳을 스스로 나오기 위해 노력한다. 도피, 죽음이 아닌 삶으로. 하지만 아름다운 계급의 상층부로 가는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캐럴라인은 죽는다.
리틀 스트레인저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말은, 그 화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뿐 아니라 화자의 시선이 지니는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과연 진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편견 섞인 판단으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패러데이는 듣는 데 익숙한 인간이다. 그는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는 환자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도통하지만, 정작 자신의 발화에서는 거짓과 진실을 찾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당연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데 더 익숙하다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나, 로드? 나처럼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같은 가정의는 성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 사람들은 우리한테 비밀을 털어놓지.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거든. 우리가 겉모습에 관계없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익숙하다는 걸 잘 알아....”(228-229p) 패러데이는 ‘그렇게’ 듣지만, 말할 때는 가감없이 ‘보호자’에게 말한다. 성직자와 의사가 다른 점이라면, 의사에게는 환자 말고도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로더릭의 정신 질환이 의심된다고 캐럴라인에게 말하며, 캐럴라인은 그의 말을 의심하고 화를 내는 대신 ‘수긍한다.’ 패러데이는 그 수긍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가 의심을 품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모든 이야기를 바깥에서 보고 가끔은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실리’ 때문이다. 소설의 뒷면 홍보와 달리,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불안해지는 순간마다 우리는 묘하게 그를 ‘믿고’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리틀 스트레인저는 누구인가? 패러데이의 방문 이후로 모든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캐럴라인의 말처럼, 패러데이가 이 모든 몰락의 범인인가? 그는 헌드레즈홀의 찬란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에어즈 가문은 그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그는 ‘헌드레즈 홀’을 기억하고 그때를 선망하며, 그들에게 하여금 ‘젠트리’로서의 자의식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러데이의 직접적인 범죄-억울함을 호소하는-보다, 그의 간접적인 범죄 기여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캐럴라인은 그로 인해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다시 깨달았고, 이어 헌드레즈 홀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선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폴터 가이스트나 조그만 요정들의 존재는 패러데이에게는 별다른 고려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는 베티가 법정에 서서 진술을 할 때도, 그녀가 말하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캐럴라인은 끊임없이 “여기서 살지 않을 거잖아요”(472p)라고 말한다. 그녀는 에어즈 부인의 죽음에 ‘자신을 공범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가장 분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러한 ‘공범’의 의식은 단순히 그녀가 어머니를 방기했다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캐럴라인과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하는 어떤 ‘존재’의 호응에서 인식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닥터 패러데이와 캐럴라인에게 ‘침입자’란, 저택으로 스며드는 시간들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헌드레즈홀’로 침입하지 않았다. 패러데이가 과거를 형상화한 인물이라면, 캐럴라인은 미래를 형상화한 쪽이다. 로더릭을 압박하고 에어즈 부인을 과거의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든 건 그들이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린 ‘시간’이다. 그들은 ‘젠트리’의 영속성을-어떤 의심없이 ‘그 상태로 태어나’ ‘그 상태로 죽을’ 자신의 위치를 과신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의 행동에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제동을 걸고, 그들의 자본이 얼마나 빈약한지 지적한다. 한 벽돌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풍화되고 이내 먼지가 되어 사그라들 것처럼, 그런 ‘소멸’은 패러데이와 캐럴라인에게는 더 무서운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헌드레즈 홀을 지탱할 ‘자본’을, 캐럴라인은 ‘탈출’을 꿈꿨다. 패러데이는 시간이 지나 젠트리가 젠트리가 아니게 된 이 시점에서, 비로소 그가 젠트리로 ‘끼어들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캐럴라인은 헌드레즈홀이 사라지면 그녀 또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시간만큼 헌드레즈 홀은 별것이 아니거나 별것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드레즈 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우매한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쇠락의 형상은 시간의 ‘전리품’으로, 진보했다는 명목하에 남겨진다. 아주 사소한 시간의 흐름들로 인해 배수관은 묘한 소리로 들어차고 팽창한 공기들은 불타오른다. 과거는 쓸모없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된다. “혼돈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상처입고 피폐한 짐승”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