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읽고 싶은 책들이 있는 3월의 시작이다. 단지 3월이기 때문인지,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인지, 취향에 맞는 책들이 많이 출판된 것인지 딱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눈에 솔솔 책들이 들어온다.
그랜드 마더스/도리스 레싱 지음/강수정 옮김/예담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와 나약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메리'(풀잎은 노래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상적이라고 보여지는 기준에 부합하는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낳은 비정상적인 아들 '벤'(다섯째 아이)의 작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집. '그랜드마더스'를 포함한 중편소설 네 편이 실려있다. 정혜윤은 <그랜드 마더스>는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전에 읽었던 <풀잎은 노래한다>와 <다섯째 아이>, 그리고 <그랜드마더스>라는 제목으로 추측해 보건데, 레싱의 말년 작품이라는 이 책 역시 가족 안의 개인, 특히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나름으로 추측한다.
왠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지음/박선경 그림/마음산책
왠만해선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습관이 있는 나는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와 <독고다이>,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연달아 읽고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니, 안한 것이 아니라 못했다. 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읽고 생각한 것에 대해 정리는 못했지만, 그러나 작가 이기호에 대한 생각 하나는 굳건히 다지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새롭다는 것, 아무것도 가르치려하지 않지만 왠만해선 쉽게 잊을수 없다는 것. 좌충우돌 전전긍긍 갈팡질팡.. 이기호 소설에 대한 소설MD 김효선의 정의는 '참'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창비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중.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마음으로라도 지켜주고 싶은 많은 것 중, 하나이니까.
지극히 내성적인/최정화/창비
온전해 보이는 세계 안에 스며 있는 불안의 기미를 내성적인 사람들의 민감한 시선으로 날렵하게 포착...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꽉 차오르는<지극히 내성적인> 혹은 <내성적인 지극히>의 출판사 소개글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는다. 이건 내 얘기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생각 속에서는 수십 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바로 나의.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무뎌진 감각을 세련하고 싶은 것이 작가 자신의 소명이라 했지만, 나는 내 감각을 시멘트 바닥에 비벼서라도 좀 무디게 만들고 싶다. 너무 아프게 나무 세밀하게 느끼지 못하도록.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모신 하미드 지음/안종설 옮김/문학수첩
오~ 모신 하미드. 미국이 세계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늘 분개하고 있었다는 고백으로 나를 미치도록 공감하게 했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쓴 작가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된 모신 하미드의 소설 중 두번째 작품이다. 자기계발서를 흉내낸 책 제목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듯,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글로 각 장을 시작한다. 또 한번 심장이 두근두근. 아직 우리나라에 출간되지 않은 모신 하미드의 출세작 <나방 연기Moth Smoke>도 곧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영화 <동주>에서 동주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되겠다고 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 말.. 잊혀지지 않는다. 어딘가엔 꼭 적어놔야 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