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갔어야 했다 쏜살 문고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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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 한 권이 마음을 오싹하게 한다. 겨울 휴가, 멋진 풍경, 근사한 별장이라는 소재만 두고 보면 느긋하게 보내는 나날, 정다운 가족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지만 책장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어쩐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부부의 말다툼, 이상한 마을 사람들, 별장 어디선가 들리는 기이한 소리들은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주인공을 따라 갈수록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공간을 더듬게 될 뿐이다.

주인공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가 쓰는 시나리오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현실과 시나리오 상에서 별안간 생략되는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와 그 뒤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끝맺지 못한 문장, 이리저리 변형되는 별장 내부, 기억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마음과 더불어 끝없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안전해야 할 집이 가장 위험한 장소로 변한다면 누군들 의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불안의 원인은 정확히 무엇일까. 동네 주민에게 들은 별장의 비밀 때문일까, 주인공 자신을 떠날 것 같은 아내 때문일까,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의심 때문일까.

숲과 빙하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는 주인공과 가족들, 혼란스러운 와중에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하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이 안타깝다. 극심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인 듯하다. 독자는 주인공이 예전에 쓴 이야기를 읽게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그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까. 언제까지고 별장에 머물렀을지 그곳을 빠져나왔을지가 말이다. 책을 다 읽고 표지와 책 중간중간 숨겨진 짧은 문장을 다시 찾아보았다. 사람에게 직관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 직관이 가리키는 바를 명확히 이해한다면야 정말 좋을 것이다. 문제는 나중에야 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말. 말은 실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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