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버리라는, 프울 첼란의 <빛의 강박>(1970)의 시구를 인용한

이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구성과 내용에서도 그  참신성이 돋보인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책은 2010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5일 밤동안 글로써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독특한 문체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저자와 함께 독자마저 밤을 지새우며 기어코 책을 읽어내려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2년전 여름밤에 쓰인 이 글들을 2년 후 여름인 지금 이 때 읽는다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마치 녹취록을 풀어낸 듯한 이 책은 책과 혁명에 대한 주제로, 역사적 인물들과

종교, 철학, 사상이론을 함께 다루고 있음에도 그리 어렵거나 난해하지만은 않다.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간결한 문체를 통해 끊임없이 일관된 주제를 향해

독자들을 이끌어 올리는 일관성을 책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얼핏 보기에 연관성을 퍼뜩 떠오르기가 힘든 책과 혁명이라는 두 키워드는 그 일관성으로

하여금 동의어로 묶이게 된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책을 '읽는' 그 행위는 그 자체로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이 그저 도처에 널려있는 

정보를 눈으로 보고, 그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독선이나 오만이 아니라,

'제대로' 읽는 조건 하에서 혁명은 가능하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읽을 수 없는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대로 읽어버린다는 것은

미쳐버리는 것이기에 그런 미치는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모든 읽기의 행위는

읽는다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읽음, 텍스트, 책을 둘러싼 모든 것은 '문학'이라는 큰 범위에 속하게 된다.

텍스트를 읽고, 제대로 깨달아 미쳐버린 이들은 현대에서도 그 이름이 기록된

역사적 인물이 되었고 그들의 혁명으로 지금이 만들어진 셈이다.

마르틴 루터도, 무함마드도, 니체도,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등도

그런 의미에서 모두 혁명가이면서 문학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표현이다.

이들은 책을 고쳐읽으며, 고쳐 썼고, 그 행위는 법을 고쳐쓰는 것이었고

법을 고치는 것이 결국 혁명이라는 고리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혁명이라는 것은 폭력에 선행하는, 아니 폭력을 수반하지 않아도 되는

성질의 것임에도, 혁명은 역사적으로 대개가 투쟁과 혈을 그 대가로 치뤄왔다. 

이는 제대로 '읽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까.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들은 그래서 안타까울 뿐이다. 


경어체와 나에게 직접 말하는 듯한 생동감으로 가볍게 책을 읽어내려가던 나의 마음가짐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고.

제대로 읽는다면 미쳐버리는 것이라고. 

반복되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읽는다는 행위를 그 무엇보다도 숭고한 행위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태껏 책을, 문장을, '제대로' 읽었던 적이 있던가.

그랬다면 나는 내 안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켰을지도 모를 일인 걸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무함마드가 천사를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을 때 받았던 첫마디처럼,

이 책 역시 나에게 이 한마디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읽어라-. 


이 여름, 책을 제대로 읽고 싶은 모든 이들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앞서

읽어볼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단 한 문장이라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도록,

되짚고, 반복하고, 곱씹어 책을 읽는 경험이 이 여름밤의 기록을 통해 가능해질 것만 같다. 

 


첫째 밤 문학의 승리 2010년 6월 15일

둘째 밤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2010년 6월 28일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 2010년 7월 6일

넷째 밤 우리에게는 보인다 2010년 7월 15일 

다섯째 밤 그리고 380만년의 영원 2010년 7월 2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