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너무나 의미 깊은 명작이지만, 벤샨이가창만년에 흑백으로 제작한 판화 「사랑으로 가득 찼던 수많은 밤의 회상이 한층 가슴을 파고든다. 오른쪽에 그린 성별도 연령도불분명한 저이는 무거운 병에 걸린 사람일까, 아니면 늙고 쇠약해진노인일까. 머리카락이 다 빠진 모습에 유머가 담겨 있으면서도애절하다. 「형제」가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포옹이라면, 이쪽은
‘이별‘을 예감케 한다. 사람은 사람을 이렇게 부둥켜안는 것이 가능한 존재다. 저두 사람이 나눈 따뜻함이 내 속으로도 스며드는듯하다. 정말 벤샨다운 표현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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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가 죽음을 면할수 없는 존재라면 무엇을 위해 쓰고 그리는가? 인간을 둘러싼 물음이 죽음과 깊이 결부된 이상, 이시점에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해야 할 정신이다.‘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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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는 브뤼헐을 비롯하여 카라바조 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나 미켈란젤로 MichelangeloBuonarroti (1475~1564),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1313~1375) 같은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부터 18세기 작가 대니얼디포 Daniel Defoe (1660~1731)나 20세기의 카뮈Albert Camus (1913~1960)로 이어지는, 역병의 참상을 작품화한 사람들이다. 평소라면 그다지 쓰지 않는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굳이 이들에게 바치고싶다.
그 위대함은, 먼저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기록하고자 했던 정신에서 기인한다. 만약 인류 전체가 죽음으로절멸한다면 그 기록은 누가 보게 될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쓴다는 행위(그린다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용감하게 맞섰다. 이는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이기도 했다.참혹한 역병 속에서 이를 묘사해낸 이들의 정신이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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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데자뷔..
그때, 강한 기시감이 덮쳐왔다. 동시에 에드워드 호퍼EdwardHopper(1882~1967)의 작품 나이트호크스」가 뇌리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지금 내 모습은 그 그림 속 남자와 같지는 않을까. 하지만이미 모자를 잃어버린 나는 맨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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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착한 딸로 살던 내가 노스 로라 메인 스트리트 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꾀죄죄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단 한 번의 폭풍우가 강둑을 무너뜨리고강물의 흐름을 바꾸어버리듯 한 소녀의 인생에 닥친 단 하나의 사건이 이전의 삶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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