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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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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옛것에서 희망 찾기, 그러나 옛것이 이상은 아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티베트)과의 국경지대,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등지고 있는 작지만, 오래된 도시 라다크(Ladakh)를 배경으로 희망과 좌절,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얘기가 이어진다. 부제인 'Learning from Ladakh'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르그 호지'는 삶의 미래를 라다크에서 찾고 싶어한다. '오래된 미래'라는 시간을 거스르는 역설로 제목을 삼은 것만 봐서도 '호지'는 오래된 도시 라다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 미래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책을 읽는 사람을 '과거'의 향수로 이끄는 것은 이 책의 마법적인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었던 라다크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어릴 적 살았던 한국의 '과거'와 오버랩(overlab)되면서, '과거'를 추억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지키고 보전해야 할 '미래'의 위치로 까지 밀어부친다. 책을 읽는 동안 잠시 한국의 60~70년대 개발의 광풍 속에 밀려난 임금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처참한 삶은 잠시 밀려나고,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어울렸던 삶의 조각들이 당시 삶의 '전체'인양 자리를 내어잡는다. "그땐 좋았는데"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정도면, 이책의 마접적 장점은 정점에 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향수'만 자극하는 목가적 에세이만은 아니다. 저자는 20여년이 넘는 시간을 라다크인들과 함께 살면서 '미래'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들을 발견해낸다. 자본의 유입과 도시의 발전이 함께 가져온 전통의 파괴와 환경의 오염, 인간 공동체의 해체를 피부로 느끼면서 '전통'속에 담겨 있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따스한 알맹이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공동의 노동을 통한 유대, 화낼 줄 모르는 배려, 땅과 함께하는 교육, 낭비없는 절제, 수천년을 어어져온 땅과 산 그리고 가축을 다스리는 지혜 등이 그것이다.

'호지'는 '과거로의 회귀'를 외치고 있지 않다.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은 오래된 것 그 자체가 미래라는 선언이 아니라 오래된 과거가 미래의 혜안과 만났을 때, 비로소 분열과 부패, 전쟁과 파괴를 넘어서는 '현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답을 제시하기 보다 해답을 찾을 것을 요청하고 있는 듯 하다.

"The forces of development and modernization have pulled most people away from a sure subsistence and got them th chase after an illusion, only to fall flat on their faces, materially impoverished and psychologically disoriented. A majority are turned into slum dwellers-having left the land and their local economy to end up in the shadow of an urban dream that can never be realized..... 
Development planners can pretend that everyone will be able to live like a New Yorkers as long as they ignore the fact that natural resorces are limited."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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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철학 기행 - 유럽 문화 예술 기행 2
클라우스 헬트 지음, 최상안 옮김 / 백의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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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철학 기행

"만남의 장소 플라톤"(Treffpunkt Platon)



 
현재 터키 남동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에서 시작한 그리스-로마 철학 기행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경유해 북아프리카를 돌아 다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끝난다. 기원전 6세기에서 시작한 철학 기행은 그로부터 10세기가 훌쩍 넘은 6세기에 다다라서야 끝을 낼 수 있었다. 장장 천년의 세월 동안 지중해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철학의 발전을 쫓았던 여행의 마지막에 가서야 저자가 왜 이 책의 부제를 '만남의 장소 플라톤'을 뜻하는 "Treffpunkt Platon"이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기행 과정이 처음 몇세기를 제외하면 플라톤에서 시작해 플라톤으로 끝나는 것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현대 서양 사상을 가로지르고 있는 기독교의 정신이 플라톤을 만나지 않고서는 '현실'의 '사상'으로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요 논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로마 철학 기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기독교 사상의 형성 과정"이라는 제목을 달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그 어렵고 딱딱하다던 그리스 철학을 통해 기독교 사상의 형성을 설명할 때는  일정한 반복과 재탕을 통해 '독자'의 눈에 익숙하게 만드는 재주도 숨어있다.

기독교 문학의 효시 [변론]의 저자인 테르툴리아누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 테르톨리아누스의 논거는 이러하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 주는 피상적인 증거가 아니라 국민들이 진심으로 국가를 인정하고 지지하느냐의 여부이다. 국가가 국민들로부터 말과 행동으로는 동의를 얻는 것 같아도, 마음 속으로는 - 국민들의 태도에서 - 기본적인 충성심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상태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도 내면적인 충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종교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국민들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허용하는 편이 오히려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설명한다.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자의 종교 편향'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는 우리의 현실을 미리 꼬집었던 것 아닌가 싶다.

또한 테르툴리아누스는 "출신이나 세계관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시민의 행동은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공동의 생활 세계에서 이루어지며, 세계관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국가는 이러한 공동 세계를 포괄하는 조직 형태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와 같은 의미의 국가를 위해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물론 이 때의 신은 기독교인의 신이면서 동시에 만인의 신이다."라고 설명한다.  편가르기와 종교편향, 사상(세계관)의 자유 침해를 밥 먹듯이 하고 있는 MB가 꼭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일 듯하다.

기독교 근본주의 시대, 불관용의 시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권력자의 종교와 권력자의 사상만이 유일한 '선'과 '정의'의 척도가 되어버린 시대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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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watches 2010-03-2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he Omnivore's Dilemma: A Natural History of Four Meals (Paperback) - A Natural History of Four Meals
마이클 폴란 지음 / Penguin Group USA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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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공원(people's park)와 유기농(organic)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생각하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근처에 "민중공원"이라는 공원이 자립잡고 있다. 1960년대 급진적 정치운동의 결과로 생긴 민중공원은 현재 홈리스들을 위한 무료급식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형공연장과 농구코트 등의 시설도 가지고 있다. 버클리 주민들은 민중공원을 공동체 정원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민중공원의 역사는 피의 역사였다. 1960년대 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소유였던 이 땅은 학교 시설로 개발하려했지만, 학생들과 주민, 그리고 인근 상인들은 버려져 있던 땅을 무단점유해 공원으로 가꾸었다. 공원조성에 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기금과 현물을 기증했고, 조경업자들은 나무와 꽃 등을 무료 기증했다. 그러나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연방방위군을 투입해 공원을 지키려는 시민과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민중공원을 60년대 급진적 정치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단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잡식동물의 딜레마"("Omnivore's Dilemma", Pengyin Books, 2007)의 저자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같은 책에서 색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마이클 폴란은 "민중공원은 로빈 후드 위원회가 캘리포니아 대학 소유의 빈터를 점유하여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고, 채소밭을 시작했던 1969년 4월 20일에 태어났다."고 설명하면서 로빈 후드 위원회의 시민 불복종운동에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17세기 영국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식재료 재배를 목적으로 공유지를 무단점유했던 디거(the Diggers, 영국의 청교도혁명 때 출현한 당파 중 가장 좌익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수평파의 좌익으로 토지를 잃은 소농을 이익을 옹호했다.)를 꼽는다.

마이클 폴란에 의하면 민중공원에서 식재료의 재배는 유기적(organic)었지만 이는 단순한 농업의 방법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워렌 밸라스코의 Appetite for Change를 인용하며 미국의 '60년대 대항문화가 먹는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민중공원의 사건은 대항문화의 '초록화'와 유기농업과 유기농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마이클 폴란은 민중공원의  유기 재배의 화학농업 거부는 단순한 농업방업의 변화가 아니라 전쟁 기계의 거부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당시 화학농약을 만들었던 회사들이 베트남 전쟁에 사용된 네이팜과 고엽제를 만들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 폴란은 "유기 식물을 먹는 것이 사람들을 정치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마이클 폴란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전제하에 행동했던  초기 유기농 운동은 생산의 대안뿐만 아니라 분배 제도의 대안(반자본주의적 식재료 협동조합)과 소비형태의 대안(대안밥상)도 함께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왜냐 하면 생태는 "you can never do only one thing"을 가르치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먹는다고 했을 때 이는 그것이 어떻게 자랐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밥상에 어떻게 왔는지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고시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의 뜻을 져버리고 막무가내식으로 수입을 고시한 정부의 행동은 어떠한 것으로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며, 무엇을 먹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없이는 문제의 근원을 바꿀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온 국민이 먹거리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거기에 멈추지 말고 '먹거리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 30개월 미만의 송아지를 먹는 것도 윤리적이지 않다. 안전하다고 해서 2살 6개월 먹은 어린것을 마구잡이로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안전하지 못한 30개월 이상도 먹지 못한다면, 윤리적이지 못한 30개월 미만도 먹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소의 평균 수명은 20년이다.

쇠고기 뿐만 아니라 곡물도 마찬가이지다. 자연의 순리 거스르며 GM(유전자 조작)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제초제와 살충제에 강한 식물을 키워내려는 인간의 오만이 수십, 수백만년간 스스로를 환경에 적합하게 만들어온 식물들을 하루 아침에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오만이 광우병을 만들었듯이 식물의 복수도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밥상'은 자연이 준 선물이며, 자연과의 조화여야 한다. 자연을 지배한 밥상은 언제가 엎어질 것이며, 그 자연의 복수를 지구 전체가 대면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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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서전 - 열정의 시대 희망을 쏘다, 68혁명 40주년
타리크 알리 지음, 안효상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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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서전

열정의 시대 희망을 쏘다

Street Fighting Years : An Autobiography of the Sixties

 

타리크 알리 지음

안효상 옮김

 

1960년대를 투쟁의 거리에서 보냈던 타리크 알리의 이야기다. 현재는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이며, 사사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원제(Street Fighting Years )에서도 볼수 있듯이 1968년 혁명의 가두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 책은 타리크 알리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투쟁과 그 이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타리크 알리의 자서전이 아니라 "1960년대 자서전"이다. 6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혁명가들, 그리고 그 투쟁의 현장을 가득메웠던 이름모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자신의 대통령 선거의 승리가 68년의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한 것'이라 말했다. 권위와 권력에 저항해 다양한 인간들의 권리를 세상에 내보였던 68혁명의 정신이 사르코지 자신의 당선으로 이제 땅속으로 영원히 뭍였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실 68혁명의 실패 이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불어온 '신자유주의' 물결은 인간의 권리를 자본에 종속시켰다. 대처리즘과 레이거 노믹스는 그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얼굴이었다. 전쟁은 전세계를 집어삼켰다. 투쟁으로 되찾았었던 노동자의 권리와 국민의 권리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빼앗겨갔다. 그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정치세력이 동승했다. 영국의 노동당은 그 대표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인민은 수동적 존재로 남아있길 거부한다. '1960년대 자서전'은 인민의 능동적 활동에 대한 예찬이다. 모든 권위와 부패한 권력에 저항해 인간의 다양한 권리를 되찾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록 몇차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그 과정에서 신념을 버리고 도피하는 사람들이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올해로 68혁명이 4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68세대가 유럽정치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그리고  타리크 알리는 묻는다. "60년대에 나왔던 희망과 이상주의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리고 대답한다. "68년 프랑스의 격동 속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역사에 배신당해 자신들의 과거를 비난했다. 항상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가 필요하다는 열정적인 믿음"이 있다고 말이다.

 

"지난 30년간 패배를 모르는 듯했던 신자유주의조차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가 '정치의 귀환' 속에서 새로운 정치를 모색한다고 할 때, 60년대의 정치적 급진주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준거점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시대의 사정(射程)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혁명은 실패로 끝나지만,
어떤 효과를 남긴다는 점에서 모든 혁명은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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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 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 역사도서관 교양 6
월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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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 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 -

 

윌리엄 엥달 지음

도서출판 길

 

 "체니는 세계 최고의 지구물리학 및 석유 부문 기업인 핼리버턴사의 최고경영자였다. 라이스는 셰브런석유회사의 이사로 근무했었다. 부시 자신은 석유업계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돈 에번스 상무장관 또한  석유기업가 출신이었다. 다시 말해서, 2001년 1월 취임한 부시 행정부는 최근 미국 역사에서 그 어느 행정부보다도 석유 및 에너지 문제에 열중하게 되어 있었다. 석유와 지정학이 워싱턴 중심 무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 책中에서 )

 저자는 미국의 비주류 경제학자이다. 비주류 경제학자라해서 그가 현재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20세기 동안 벌어졌던 미국과 영국, 즉 앵글로색슨 국가가 석유와 에너지, 그리고 달러(dollar)를 위해(그리고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행했던 정치공작과 전쟁, 학살과 만행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미국과 영국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전쟁이 빈 라덴 등 테러리스트를 처벌하여 국제적 평화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벌인 것이라는 것을 순진하게 다 믿는 사람들은 현재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고,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정부이양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계속해서 그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다. 전쟁의 뒤에 '석유'가 있었음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저자는 1차,2차 세계대전의  뒤에도 석유지정학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또한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젠하워 국가방위 고속도로법'을 만들어 제너럴모터스의 부를 축적하게 했다든가, 개발도상국의 인구 팽창이 향후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들어 개발도상국의 '인구 억제'를 종용했다든가, 오일쇼크로 불리는 OECD의 산출량 감소정책이 미국과 영국의 전략하에 벌어진 일이라든가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진실도 들추어낸다. 70년대 이후 '하나만 낳아 잘기르자'며 산아제한에 나서고,  현대화된 고속도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경부고속도로 등 도로인프라 건설에 혈안이되어있던  우리나라의 정부정책의 모델이 어디에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원자력발전'과 관련해서는 더욱 극적인 에피소드들이 제시되는 데, 저자는 미국과 영국의 석유재벌들의 '돈'을 위해 세계적 추세였던 원자력발전을 어떠한 방식으로 막았는지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환경운동 시민단체들이 석유재벌의 돈으로 운영되었다는 대목은 우리를 아연실색케한다. 저자는 이러한 추잡스러운 '석유지정학'의 최대 피해자는 산유국의 수많은 백성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석유를 위한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죽움과 굶주림, 억압과 탄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름과 회담, 수많은 나라가 등장해 읽기가 쉽지 않고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일독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세계질서 지배 메커니즘은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 한미FTA비준 문제가 한창일 때 미국의 유명한 경제인들이 수억달러의 투자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빌게이츠가 거의 2억 달라에 달하는 돈가방을 한국 땅에 내려놓았고, 워렌 버핏 등 세계적 투자가들은 한국 '증시'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적으로 동시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 속엔 보이지 않은 '진실'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국제법의 세부 사항, 유엔헌장(과 그 과정에서의 유엔의 모든 관련 사항),
(순수하게 방어 역할만을 지정한)나토 헌장, 헬싱키 협정, 심지어(전쟁을 선포할 권한은
오로지 의회에만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 미국헌법 등 모든 것을 무시하고, 대대적인 폭격전을 시작했다."

이 책의 부제 "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 그것의 답은 그들이 그렇게 수호해야 한다고 떠들었으며, 그래서 그것을 지키기위해 전쟁도 불사했던 '민주주의'질서를 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내팽개치고 뛰어들었던 '대대적인 폭격전'이었을 뿐이다. 수많은 인민의 죽음을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미국 그 지배자들에게 Fuc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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