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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언젠가 시간이 많던 시절, 영어 실력 향상을 도모하고자 원서를 찾던 때가 있었습니다. 원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전공이었기에 미리 익숙해지려 했었죠. 외국인을 만난 경험도 드물고, 이야기한 적은 더욱 없었기에 영어는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물어 쉬운 원서를 추천받았죠. 그리하여 추천받은 책이 『The Giver』였습니다. 국내 번역으로는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요.
정말 다행히도 원서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추천 도서라는 말이 아주 적절하게 단어나 문장이 까다롭지 않았지요. 짧은 이야기였지만 흥미로웠고, 원서를 읽었다는 뿌듯함을 선사해주었던 책이었습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장르로 구분하자면 ‘디스토피아(dystopia)’ 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에 나오는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으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회상을 나타내지요.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로는 『기억 전달자』,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등이 있습니다. 짧은 단편 하나를 추가하자면 『기억 전달자』와도 유사한 점이 있는 어슐리 르 귄의 『The Ones Who Walks Away From Omelas(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가 있겠네요.
『기억 전달자』의 첫 부분을 읽다 보면 ‘이게 왜 디스토피아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전혀 어두운 사회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12살 조너스는 부모님과 동생 릴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애롭고 동생은 쾌활합니다. 아주 바람직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전형이지요. 매일 아침, 저녁 가족들은 모여서 이야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는 아침 의식 시간에 대게 조너스는 그다지 말할 것이 없었다. 조너스는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 때때로 밤사이에 꿈을 꾼 것만 같은 단편적인 느낌들이 떠다니는 채로 잠에서 깬 적도 있기는 했다.
“오늘 저녁에는 누가 먼저 느낌을 얘기할까?”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물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서 그날 받은 특별한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서로 소통하는 정다운 가족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꿈을 나누는 아침 가족모임과 느낌을 이야기하는 저녁 가족모임이 ‘규칙’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규칙은 매우 엄격하며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규칙을 준수합니다. 심지어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꾼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역시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지요.
이상한 점은 점점 드러납니다. 아이들이 12살이 되는 해,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모여 ‘직위 수여식’에 참석합니다. 평생의 직업이 아이들에게 부여되는 날입니다. 이상하지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선택되는 것입니다. 물론 임의의 직업을 마구잡이로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성향과 행동을 오랜 기간 면밀히 관찰하여 최적의 직업을 부여하지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년 신생아는 50명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산모’도 직업입니다. 산모는 오직 3명의 아이를 낳게 되어있으며 그 이후에는 육체노동을 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조너스와 릴리는 부모님이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배우자와 아이는 신청을 통해 얻을 수 있고, 노인들은 모두 노인의 집에서 관리합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도 규칙입니다.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규칙입니다. 예를 들어 ‘굶어 죽겠다’라는 표현은 규칙에 어긋납니다. 이 사회에서는 철저한 관리하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고로 ‘굶어 죽겠다’는 표현은 거짓이 되므로 규칙에 어긋난다는 논리이지요.
모든 일이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 조너스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되지 않고 나아가 차이마저 언급해서는 안 되는 사회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불만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요. 그야말로 행복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는 조너스가 특별한 직위를 부여받고 나서입니다. 조너스는 직위 수여식에서 한 시대에 한 명만이 존재하는 ‘기억 보유자’의 후계자로 선출되지요. ‘기억 보유자’는 엄청난 영예를 얻습니다. 마을 모두가 존경하는 존재이지요. 게다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억 보유자’는 특별한 권리를 가집니다. 조너스가 받은 서류에는 이런 목록들이 있지요.
3. 이 순간부터 당신은 무례함을 금지하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주민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5. 이 순간부터 당신은 꿈을 이야기하는 데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7. 당신은 임무 해제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8.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부터 기억을 하나하나 전달받습니다. 그리고 조너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조너스가 처음 받는 기억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기억입니다. 조너스는 처음으로 하얀 눈을 보게 되고, 추위를 느끼게 되지요. 이 신기한 첫 경험에 조너스는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썰매를 타는 기억에서 조너스는 비로소 ‘빨간색’을 봅니다. 이 말이 이해가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 사회 구성원들은 색을 보지 못합니다. 색을 보는 이는 오로지 ‘기억 보유자’뿐이지요. 조너스 역시 ‘빨간색’을 보기 전까진 친구 ‘피오나’의 머리색이 빨간색임을 알지 못했지요. 색에 대한 기억을 모두 뺏으면서 피부색 혹은 머리색 같은 차이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점점 이 행복한 사회의 뒤틀린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색깔뿐만이 아닙니다. 상실의 슬픔, 가족애, 극심한 고통 등, 수많은 기억을 ‘기억 보유자’가 홀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어떠한 고통도 없이 주어진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요. 단 한 명만이 모든 짊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회. 시작에서 말했던 르귄의 『The Ones Who Walks Away From Omelas』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행복하게 살던 자신의 사회의 이면을 알게 된 조너스는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아무도 조너스를 이해할 수 없고, 오로지 홀로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하니까요. 어떠한 결격사유, 장애,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조너스와 기억 보유자는 이제 선택하기로 합니다. 언제나 그들에게 금지되어 있던 ‘선택’을요.
자, 어떤가요? 행복해 보이던 사회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이시나요? 조너스가 사는 사회는 단순히 ‘기억’만을 빼앗은 사회가 아닙니다. ‘기억’을 뺏음으로써 개인의 ‘선택’ 역시 빼앗았죠. 누구도 자신의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의 아이를 선택할 수 없고, 볼 것을, 느낄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어질 따름이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라는 가치를 중시하죠. 인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락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가능한 많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죠. 그리고 자유는 당연히 선택을 포함합니다. 안전과 잘못된 통일이라는 가치 아래 밟혀진 많은 선택들. 직위 해제되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누렸을 수많은 기회들과 삶. 선택을 짓밟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짓밟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이의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삶을 짓밟는 것입니다.
디스토피아 문학은 단순히 부정적인 사회를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진정한 역할은 그를 통해 우리의 사회를 반추하고 위험성과 개선 가능한 지점을 발견하고 나아가는 것이지요. 『기억 전달자』에서 조너스는 선택하지 못했었습니다. 조너스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죠. 하지만 진실을 마주한 뒤 조너스는 선택했습니다. 박탈되었던 만족감을 되찾았지요. 하지만 인간 역사에서 자유의 대가는 가볍지 않았듯 조너스의 선택의 대가도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되돌아간다고 하여도, 조너스는 여전히 선택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이니까요. 선택된 행복, 『기억 전달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