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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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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자주 인용되는 게, 바로 테세우스의 배이다. 배의 모든 부품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바로 그 배'라고 할 수 있는지. 물건에 대한 것이라도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데, <미키7>은 그 초점을 인간에게 맞추고 있다. 내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내 몸이 아니라면 그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책을 읽다가, 크르스토퍼 놀란 감독의 <트랜센던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천재과학자인 윌(조니뎁)은 지적능력과 자각능력을 모두 갖춘 슈퍼컴, 트랜센던스를 완성하기 직전에 반대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연인이었던 에블린(레베카 홀)이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켜 그의 의식을 살려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장악하기 시작하는데...심지어 나중에는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몸인 윌이 되기도. 이때 이 사람을 윌이라 할 수 있을까.

✏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는 삶, 그 죽음의 고통을 아는 삶, 영속에 의미가 있을까.

✏ 정체성, 죽음, 선택, 존재...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언제올지 모를 그 세계를, 그 공간들을, 그곳의 생명체들을 상상하게 하는.
너무 재미있는 책.

✏ 기대된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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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 지음 / 유선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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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고운 영화감독의 파트만 열 번도 더 읽은듯하다. 시작하는 페이지부터 마음을 뺏겨서일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쐐기를 박은 건 하루의 첫의식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것.

난 내가 가지고 읺는 허세, 자만심에 근거한 그런 허세, 그래서 쉬운게 우스워보였던,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속으로 가진 넘치는 우월감, 지금도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자신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세월과 함께 어는정도는 닳아없어진 관념. 그것을 보았다.

📌 전고운 영화감독의 글을 통해 다시 읽고 싶어진 책, 보고 싶어진 영화들:

📚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람들>
📽 코엔 형제 감독의 <바톤 핑크>
🎬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어댑테이션>
🎞 마크 포스터 감독의 <스트레인저 댄 픽션>

📒 p. 30 이제 다시 천박해질 시간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그 천박함을 가려줄 테니.

📒 p. 39~40
이런 나의 생각이 문제다. 쉬운 것은 인정하지 않는 생각, 어려운 것만 진짜라고 여기는 생각, 결핍과 고통에서 빚어진 게 아닌 글들은 가치 없다고 여기는 생각. 이 생각은 언제부터라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지배해 왔다.

📒 p. 41~41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할 시간이, 혹은 미련을 버릴 시긴이, 그때까지는 가짜라도 쓰고 싶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써봐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내가 가장 믿는 것은 글이기 때문이다.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그곳을 향해 사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 p. 44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카트를 닦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가슴이 아팠다. 마치 오래도록 못 본 사람을 우연히 먼저 발견한 것처럼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연휴에 아무도 관심 없을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저 사람을 나만 보고 있다는 것이 쓸쓸해졌다.
사람들이 꼭 봐야 될 이야기는 대단한 장면이 아니라 이런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 p. 46~47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상관이 없을 이런 사소한 것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할 때, 쓰고 싶다.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 압박도 없이 지금처럼 글을 쓰게 된다. 고작 이 짧은 순간을 위해 나는 계속 그 싫은 것들을 견다고 있나 생각하면 지나치게 비실용적인 인간인가 싶지만, 어차피 행복이라는게 비실용적이다. 누구나 찰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 듯이 나도 그러할 뿐.

📒 p. 91~92
나도 내 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게는 실현하지 못한 기획을 담은 메모가 한가득 있다. 내가 읽고 싶어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게도 있다.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 대도 셈의 결과는 0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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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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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340
(쇼타의 아버지가 쇼타에게 쓴 편지중에서)
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 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그래, 계속 도망치는 한 사람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 중2 딸아이와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중간에 2~3페이지정도의 19금은 아이에게 패스시키고, 나머지 부분만. 어차피 글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기에. (그 부분만 없다면 아이들과 토론하기에도 너무 좋은 책이다.)

✏ 가해자인 쇼타에 대해서 --> 어느 누구든 쇼타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고의로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더 침착하게 행동을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텐데 안타깝다고 접근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당시에 느꼈을 공포심에 중점을 놓고 봤다. 그 상황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으로 인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게 더 많지 않겠냐며. 실제 그 상황이면 내릴 수 있겠냐고 말이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은것을 봐선 난 쇼타와 다르지 않았다.

✏ 가해자가 된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와 똑바로 마주할 수 있나?라는 저자의 질문에 우리는 죄와 똑바로 마주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 혹시 이럴지도 모른다는 변명을 갖다붙이지 않는 것? 그런것이라면, 자기가 저지른 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로 인해 생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데? 가해자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덜어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피해자의 남편이 쇼타에게만 고백했던 것처럼...

✏ 벌이 속죄가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냐는 쇼타의 물음 --> 주어진 상황에서는 쇼타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미래도 가족도...
일하던 곳에서 알게 된 마에조노는 상해치사로 3년의 실형을 받고 나오지만, 쇼타와는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본문에서도 마에조노의 표현대로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을때는 인터넷이 지금과 달라서,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이와 낙인이론에 대해,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낙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벌받는 것으로 속죄가 안된다면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실수했던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여지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손발묶어놓고 다른 인생을 살라고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쇼타의 여자친구 아야카 --> 아이가 제일 흥분(?)했던 대상이었다. 자기가 무엇이길래 남의 인생이 제대로 서길 바라면서 옆에 있겠다고 하냐고 말이다. 자기나 잘 살 것이지. 아이는 왜 낳냐며...내가 제시할 수 있던 부분은 부모의 입장이었다. 아이를 낳은 선택에 대해서는 그사람의 몫이니 어쩔수 없다치더라도,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제대로 살아가는, 적어도 이상하게 무너지는 대상으로는 안보여주고싶은 엄마의 마음 말이다.

아이랑 한참을 주고받았는데, 정리가 잘 안된다. 하지만 아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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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돌보며 살기로 했다 - 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
박지연 지음 / 청어람Life(청어람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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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4~75
자기돌봄의 두번째 단계는 감정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아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 감정이 올라올 때 없애려고 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부정 감정은 긍정 감정보다 강렬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더 잘 들러붙습니다. 그러나 감정에는 좋은 것,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듬 감정은 정당하고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입니다. 감정은 내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입니다. 감정에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는 잠시 멈추어 느낌이 어떤지 알아차리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돌봐줍니다. 내가 지금 미안하고 서운하고 실망해서 마음이 아프다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에게 그럴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혼내거나 그러면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세우지 않고, 마음이 아픈 자신을 품어주는 것이 자기돌봄입니다. 나를 공감해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 저자는 자기 돌봄에서 4단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1단계에서는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 그리고 2단계에서 감정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해서 자기 감정을 구체적으로 이해 하는 것, 그리고 3단계에서 감정의 이면에 있는 욕구를 파악하는 것, 4단계에서 내 몸이 내게 하는 말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 중 내게는 2단계가 가장 필요한듯해서 옮겨적었다. 나쁜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이런 감정을 인정해도 되는 것인지, 보통은 속으로 삭이면서 안으로 곪아가는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 최근까지의 삶의 방식이었다. (정확히는 결혼과 시작된 삶의 패턴중에 하나였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분출하게 되는 감정의 배설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를 하게 된다. 인간이 미약해서, 자신의 에너지가 채워져야 타인을 돌볼 수 있다(p. 19)는 글귀가 위로가 되는 이유도 이런 연유일것이다. 
 

✏ 진실한 나를 만나는 일이 지금까지 잘 쓰지 않던 마음 근육을 쓰는 일이라는 작가의 표현은, 나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했다. 운동을 해도 쓰는 근육부위가 다르면 일정시간의 근육통을 가져오기 마련인데, 하물며 마음은 어떠할까. 내가 나를 찾기 위해서 헤매던 시간 동안, 그림자같던 어색함이나 두려움, 심지어 부질없다는 마음마저도 사실은 당연한 거였다. 그 당연함이 낯설어, 주저하거나 멈추고 싶었던 마음들에게, 내인생의 순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내인생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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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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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과거로의 여행>과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

두 작품 모두 주요 등장인물은 나이가 지긋해지는 중년의 부인과 젊은(어린) 남성인데, <과거로의 여행>은 남자의 입장에서,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은 여자의 입장에서 심리묘사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난 그안의 인물들이 된다. 얼마나 자세한 심리가 그려져 있는지, 내가 오글거리고, 부끄러워지고, 허탈해지고, 허망해지고, 심지어 시원해지기까지 한다.

중년의 나는, 두 여주인공 사이에서 참 힘들었다. 표출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여자로의 욕구. 그러나 결국은 과거의 그림자일 뿐일지도 모르는, 어쩌면 그림자의 역할조차 되지 못했던 두 여인이, 나에게는 참 아픈 존재였다.

📌 p. 180~181 (원당희-역자해설 중에서)
이 책에 수록된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 <과거로의 여행>...두 작품 모두 독일어권 문학에서는 노벨레라는 장르에 속하며, 이야기 방식은 기억이나 회상를 극적으로 서술하기 위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여기서 노벨레는 대체로 중·단편 소설에 해당하지만, 내용에서는 길이보다 그 특성에 주목해야만 한다. 노벨레는 주로 기이하고 괴상한 사건, 일상성에서 벗어나는 특수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나 사례, 병적인 행위와 개인의 일탈 등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만큼 모든 사건도 -거리와 객관성의 예술인 장편소설과는 달리- 주관적 감흥에 따라 빠른 진행을 보여주며 사건의 결말 역시 돌발적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 p. 29~30
그렇지만 이런 흐름의 깊은 곳엔 본질적으로 돌덩이처럼 뭔가 저항하는 것, 혼탁한 어떤 것, 제거되지 않은 어떤 것이 남아 있었다. 그의 감정이 아주 자유롭게 분출되려면 이런 마음의 찌꺼기 같은 것이 제거되어야 했다. 그는 감정의 저변에 드리워진 어둠을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감히 손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은 언제나 그가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지점으로 그를 몰아갔다.(그가 차마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녀의 모든 사소한 관심 속 호감은 그를 살피고 감싸는 부드러운 감정일 뿐인 것은 아닐까? 그안에 열정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 p. 42~43
그는 스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색이 바래지 않고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땅의 영양분은 물론, 하늘의 새로운 빛이 늘 필요하다. 식물이나 모든 구성물이 그렇듯, 우리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꿈조차도 모종의 감각적 양분이 필요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각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연의 특징과 광채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 p. 74
두 그림자는 과거를 찾아 헤매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더는 현실이 아닌 과거를 향해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지던 그림자, 살아남으려고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그녀와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탕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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