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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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 콘웨이 《물질의 세계》

프롤로그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설명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모두가 우주에서 물질이 사라지면 오로지 시간과 공간만 남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도 물질과 함께 사라져버립니다." 물질 세계에 대해서도 같음 말을 할 수 있다. 물질은 문명의 뼈대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정상적 생활은 붕괴된다.(p.33)

물질 세계를 다루는 이 책은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리튬 이렇게 여섯 가지 물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 중심의 역사에서 대부분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한 대답은 늘 인간 자체와 관련지어 설명되어졌다. 조금 양보한 것이 그나마 '우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대답의 핵심에 물질을 두고 있다. 우리가 이루어낸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이러한 물질의 바탕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다루는 여섯 가지 물질에 대한 추구가 지정학적 역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또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지도 살펴본다. 탈물질화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에 기대어야 한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에드 콘웨이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즉 생활의 근원적 요소들을 더 깊이 탐구하고 조사하면서 주변의 세계와 좀 더 연결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이건 단지 저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감사하게도 독자 또한 그런 과정을 밟을 수 밖에 없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쓰던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의 틀을 깨는 것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의 전환, 다른 시각의 관점 말이다. 모래에 대한 챕터에서 나오는 유리의 산업혁명과 관련된 관점, 소금이 일으킨 혁명과 관련된 또 다른 지배물질에 대한 영역확장, 강철에서 이어지는 물리학과의 관계, 심해채굴에 대한 것, 우연히 발견된 플라스틱의 세상, 소금사막과 관련된 리튬산업 등 각 물질에 관련된 다방면의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조금은 똑똑해지는 기분이 드는 책이라고나 할까? 내용이 방대한듯해서 언뜻 손이 안갈지는 모르나 막상 읽기 시작하면 너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p. 158
이 물질을 무시하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와 권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품목이었고 이름 모를 다양한 소금이 우리 삶을 지탱해왔기 때문에 인류의 초창기부터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p. 381
석탄의 시대에 뒤이어 등장한 석유의 시대는 인류를 힘들고 단조로운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고, 전 세계의 소득을 높이고 우리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석유 제품과 석유에너지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었고 영양실조와의 싸움에 힘을 보탰다. 다시 말해서, 연료와 화학물질의 원천인 석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석유덕분에 우리 삶이 나아지는 동안 한편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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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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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

최근《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로 나름 핫했던 하버드의 마틴 푸크너의 또 다른 책이다. 이 책은 일리아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현대의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들이 인류역사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던 민족들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내면서 세계화를 이루게 되고, 그들이 쓰던 언어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세계 또한 다음 세대로 이어놓는다.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에서 "문화는 다양한 표현 형식과 의미 생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가능성과 실험을 통해서 번영한다(p.424)"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여기서 글이 가지는 역할과 서로 연결된다. 글이 이러한 문화의 접근가능성을 생각지도 못한 영역들까지 넓혀놨기 때문이다.

'많은 작품들과 그들의 얽힌 시대문화사를 통해 글은 이런 세계를 만들어왔어'라고 말하고 있는듯 하지만, 실제로 마틴 푸크너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래의 문장이 아닐까싶다. (잘 봤지? 그러니까 잘 사용해보자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것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p. 416~417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발화를 시공간으로 깊숙이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터넷은 몇 초만에 지구상 어디로든 글을 보낼 수 있게 하면서 공간을 확대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떨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에 대한 안내자로서 지난 4,000년간의 문학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미래의 문학고고학자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망각된 걸작들을 발굴해낼 수 있을까?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사용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텍스트는 번역되고, 전사되고, 코드 변환될 만큼 계속해서 우리에게 유의미해야하고 세월에 걸쳐 지속되도록 세대마다 읽혀야 한다. 기술이 아니라 교육이 문학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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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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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엔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을 보호하자고 하는 것도, 대변하고자 하는 것도,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에 관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원제는 "Reckoning"이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심판'일수도 '사유'일수도 있다.
이브 앤슬러는 사유의 부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고,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관심과 사랑이 그리고 거기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이브 앤슬러가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을 왜 강조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제일 당황스러웠던 점들은 이게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의 단어가 보이고,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여건이 여성들에게 쏟아놓는 것들은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마음이 아프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고 침묵하고 방관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하다. 글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암담하다. 당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 한켠을 끌어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 책장넘기는 시간이 오래걸린 책이다. 최근에 읽었던 타라나 버크의 《해방》과는 또 다른 느낌.


📒 p. 13
이 책은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과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에이즈의 시대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페미사이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슬픔, 트라우마, 지곧한 바이러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다.

📒 p. 14
나는 단 한 번도 개인을 정치에서 제대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위대한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했다. "감정이 육체로 들어오는 순간/그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이 접촉은 정치적이다." 나 또한 이를 믿는다.


📒 p. 20
사유는 대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사유는 개인과 집단의 책임과 그 둘이 언제, 어떻게 교차하는 지를 결정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 p. 21~22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어떤 슬픔의 형상이다. 집합적이고 파편적이며 너무 늦어버린 슬픔. 그런 것들이 흘러 모였다. 그것들은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른다. 그것들만의 궤적을 갖는다.
그리하여 이것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p. 22
나의 글쓰기는 증인이었다. 고발이며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 단어를 나열하는 일은 일종의 벽돌쌓기였다. 그마저도 아주 잠시만 지탱되는. 그렇게 나는 혼돈과 폭력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렸다. 글 속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족을 찾을 수도 있었다. 우리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 p. 23
나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쓴 시구 한 절, 에세이 한 편, 연극 한 편, 기사 한 줄, 책 한 권은 전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내 존재가 증발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벽이었다. 당신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절과 명사, 동사로 쌓아 올린 존재는 대단히 위태로운 명제와 같다. 읽는 이가 글쓴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치를 모르거나 존중하지 않아, 글쓴이를 거절과 외로움이라는 남루하고 불타는 구덩이로 던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 25
글쓰기는 하나의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 혼란을 염려하는 방식, 타인의 횡포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방식,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는 방식.

✏️ 이 부분을 읽는데,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의 일부분이 생각났다.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언어는 그들의/우리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자원. 불행인건지 그래도 숨통이 있어서 다행인건지. 이겨내고 살아낸 자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28
나는 폭력이라는 실체가 처음으로 내 몸에 깊이 각인된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ㅇㄹ 향한 내 신뢰가 처음으로 흠들리기 시작한 순간, 두려움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야 챘던 순간이었다. 내가 나의 ㅈ거이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집에서 나는 죄수처럼 살았다. 집, 하면 떠오느는 신뢰, 안전, 평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피난민처럼 살았다.


📒 p. 176~177
일찍이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자본주의가 더 큰 이윤을 위해 재난을 빌미로 삼아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조치들을 시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난 가부장제는 이와 아주 유사하고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남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통제권과 우위를 재천명하고 여성들이 힘들게 얻어낸 권리를 빠르게 삭제한다. 전 세계에서 가부장제는 바이러스 확산을 최대한 활용해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여성을 향한 폭력과 위협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남자들은 통제자이자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에 개입한다.


📒 p. 178~179
이 파괴적 감염병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광경을 보고 있다.

감금, 경제적 불안, 질병의 공포, 알코올 남용이라는 록다운의 조건은 학대가 발생하기에 완벽했다. 2021년에 자신의 부인, 여자친구, 아이들을 통제하고 괴롭히고 때리는 일에 열성이며 그럴 권리를 가졌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과 그 어떤 정부도 록다운을 계획하며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신경을 거스르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 코로나 시대와 연관되어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문제만 신경썼지, 세상의 어느 부분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이게 지금 이 시대의 일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고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팬데믹 이후에 상상할수도 없는 숫자의 여성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은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 p. 227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유명 액션 댄서인 엘리자베스 스트랩은 말한다. "추락?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없다. 다른 어떤 점보다 추락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전히. 추락은 당신이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다. 미래는 마침내 '지금'이 순간이 된다. 추락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추락뿐. 계회그 아이디어, 숙련된 기술 따위는 아무 소용없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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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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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40만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페인트》의 작가 이희영의  타임슬립 판타지이다. 가끔은 뻔하게 보이는 클리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어느 정도 답이라고 다들 생각하기에 클리셰가 되는 것일지도.
청소년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이 소설을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이후나 가능한 것 같다. 정말 좋을 때는 그게 좋은 시절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뭐든지 가능한 때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까.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는 말, 결국은 미래의 과거는 오늘이기에 미래의 나에게 덜 부끄럽거나 덜 미안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말은, 자주 반복해서 되내이며 실천하지 않는 한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고 지나오지만, 난 늘 현재의 나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런 타임슬립 판타지에 매력을 느낀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그 순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무엇인가는 달라질까. 어릴 때에는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늘 내 선택은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순간순간에 조금 더 충실해진 것 같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정말 내가 나이가 든 순간에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덜 할테니까. 정말 아무것도 새로 할 수 없는 나이에 후회라는 것이 밀려오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최근에 읽었던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80세에 가서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는다고.)

소설속의 나우를 보면서, 나우의 타임슬립을 보면서 어쩌면 그게 타임슬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과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이런 경우에는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보면서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 말이다.
그런 과정속에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원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나은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페인트》를 읽고 있는 초딩 아들에게 이 책을 넘긴다.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들려줄런지......

📒 p. 86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란 어쩌면 그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몰랐다. 시간은 때때로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한곳에 오롯이 멈춰 있기도 하니까.

📒 p. 97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 123~124
"돌아갈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을까요? 어제는 오늘의 과거입니다. 내일의 과거는 오늘이지요. 내일은 그다음 날의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니, 오늘 뭔가를 헌더면 내일이 바뀌지 않을까요? 과거는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일매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오후가 되는 즉시 과거가 되고, 오후는 밤이 되는 순간 과거가 되니까요. 우린 과거에 살지만, 정작 그 과거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손님은 뭔가 시도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뭐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마 인간에게 어려움이나 좌절, 실패나 패배도 없겠죠. 세상에나, 그건 상상만으로도 지루하군요. 사는 게 너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 p. 125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 p. 139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 p. 158~159
세상은 내 의견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 억울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장을 누빈 장수의 몸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수많은 상흔이 생긴다. 이런 깨달음이 하나둘 늘어 가면 세상은 비로소 그를 어른이라고 부를까. 가슴에 우물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이 모두 말라 버려 돌멩이를 떨어뜨렸을 때 찰방, 소리가 아닌 뿌연 흙먼지가 일어나는 사막 같은 곳.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가슴속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 p. 198~199
"조명이 비추는 곳은 환하고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텐더가 손가락을 세워 머리 위에 매달린 조명을 가리켰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과 행복, 감사와 평안, 아니면 불안과 우울, 좌절과 비통. 생각의 조명이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유독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일 수 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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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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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하여 느끼는 찝찝함, 역사의 진실에 대한 답답함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까. 젊은 세대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묵인한다고만 여긴 것이다.

역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배경에 대하여 두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 다른 하나는 언론 매체의 보도방식이었다. 대충 짐작으로 이럴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일본인의 글을 통하여 사실을 접하게 되니, 조금은 더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더불어, 일본 내부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앞으로의 시대에 조금은 희망적이지않나 하는 생각도.


📒 p. 16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 실망했을까? 무엇을 이대로 둘 순 없다고 곱씹었을까?


📒 p. 49~5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정 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방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종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죄'와 '해결'이란 일시적인 사죄나 배상금(일본은 그것조차 내지 않았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사죄의 뜻을 밝히고 '해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죄'와 '해결'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 p. 51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피해 여성들로, 이 문제는 인권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햐야 함을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 그 배경에 있는 일본의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일본인은 우선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p. 168~169
불편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까지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의 아닐까.


📒 p. 187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p. 192
물론 무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 무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인이 가해 역사를 반성하는 데서 그친다면,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거나 차별을 없앨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당사자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직면한 ‘차별받는 현실’이 내 안에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어느샌가 일본인으로서의 나를 먼저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숨어들었다.


📒 p. 212~213
피해자를 이해하는 행위에 끝이란 없다. 그 점에서는 역사 문제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가해 역사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든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인이며, 일본인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렇게 쓰면 내가 직접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과하게 무거운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 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내고자 했다는 게 고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고맙다. 일본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인식들을 가지고 있어준다면, 그래서 한일관계에 다른 기류가 흐른다면, 우리는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바른 소리만 하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괜한 기우이기를 바랄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고1 딸아이에게 계속 읽어주었다. 아이는 "대박! 그 사람들, 인생5회차 아닐까? 어떻게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서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사람들 지금 살아있는거 맞지?"

아이 역시 나처럼,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한 생각들을 늦게라도 많이 해주었으면,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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