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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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의 역사소설?" 조선시대 궁녀 이야기라는 책 정보를 보며 난 그렇게 되물었다. 그렇게 보고만 넘어간 리진을 <엄마를 부탁해>가 뜨고있는 이제야 보게 됐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난 책장을 넘기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경숙도, 역사소설도 머릿속에 사라졌다. 내 안에는 '리진'과 '콜랭', 그리고 '왕비'만이 남아있었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이건 역사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얘기를 훔쳐들은 듯 신경숙은 작가노트에 이런 말을 적었다.

   
    현대소설로 읽히기를 바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 소설을 역사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진~작가노트~348p
 
   


  1권은 '리진'과 '콜랭'의 로맨스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릴적 어미를 잃은 리진을 서씨가 거둔다. 어린 리진은 아기나인으로 궁으로 들어가게되고 어린 대비의 시중을 들게된다. 어느 날 궁에서 왕비를 만나게 되고 왕비가 배를 떠먹여준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리진에게 어머니와 왕비가 일치되게 느껴진 것은.

  서씨의 집에서는 리진의 또다른 인연이 있었다. 프랑스 신부와 강연이었다. 아버지가 물에 빠져죽었다는 강연은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대신하듯 강연의 피리 솜씨는 일품이었다. 프랑스 신부를 따르는 강연에게 리진은 "여기 있어"라고 하며 머물게 한다. 프랑스 신부는 글깨우침에 총명한 리진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떠나며 필사한 불한사전을 남기고 떠난다.

  아기나인을 마치고 궁녀가 되라고 한 것은 왕비였다. 왕비는 리진을 곁에 두고 책을 읽게 하고 말동무가 되게 했다. 하지만 점술사의 이야기를 듣고 리진을 프랑스 공사관과 함께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왕비는 시기보다는 모성에 가까웠다고 난 느꼈다.

  콜랭과의 로맨스는 아슬아슬 하다. 파리로 간 리진은 빠르게 자유를 흡수했지만 결국 몽유를 앓게 된다. 콜랭과 리진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리진을 조선으로 데려간 것은 누구일까, 깊이 생각해보았다. 대답없는 그 질문은 책의 마지막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강연도 서씨도 아닌 왕비가 아니었을까 한다.

  콜랭은 리진을 두고 다른 나라로 가게되고 리진은 한때 궁녀였음에도 강연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돼 곤란에 처한다. 이 문제는 강연이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것으로 마무리 됐다. 강연의 대금소리에 춤추던 리진, 그 장면이 너무나도 애절했다. 나중에 강연이 청으로 떠난게 아니라 손가락이 잘려 숨은 것임을 알고 리진은 강연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때는 을미사변으로 넘어간다. 물색 드레스를 입은 리진은 왕비를 기다리다 궁에 무언가 일이 있음을 알았다. 낭인들이 왕비를 찾고있었다. 리진은 낭인을 따라 엉키고 밟히며 왕비를 찾았다. 리진은 드레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써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왕비의 앞섶을 헤치고 몇번이나 찌르던 칼을. 그때 리진은 느낀다. 왕비는 어머니였음을.

  리진은 그후 곡기를 끊었다. 그리고 콜랭에게 하나의 서찰을 남긴채 궁궐로 갔다. 왕비와 마지막으로 잠들었던, 왕비의 "자느냐"에 대답할 수 없었던 그 '교태전'에서 불한사전에 독을 묻혀 먹으며 왕비를 따랐다.

  에필로그는 콜랭의 시선이었다. 리진의 사진을 태우며 콜랭은 말한다. 그녀의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은 자신이라고.

   오랜만에 책을 보며 울었다. 서사의 비극과 섬세한 문체가 날 울렸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두 권의 책보다 더 무거운 것이 내 심장을 짓눌렀다. 역시 신경숙작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였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 리뷰를 쓰고 싶었다. 휘갈겨쓴 리뷰에 죄송함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
 
   
  자, 이제 백 년 전의 한 여인을 백 년 후의 이 세상으로 내보낸다. 리진..... 당신이 사람들 속에 사랑스럽게 섞여 다시 잊혀지는 일 없이 현재형으로 존재하게 되기를 바란다. 리진 ~ 작가노트~ 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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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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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꾼 성석제. 난 그를 올해가 되서야 알게 됐다.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뽑아 읽으면서 왜 그가 사랑을 받는지 의문을 가지곤 했다. 물론 <인간의 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실망치 않고 읽었지만 <홀림>은 정말 지루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역량의 문제라기 보단 나의 취향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참말로 좋은 날>은 전혀 거부감 없이 읽혔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문체'에 있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성석제의 글에는 그만의 '문체'가 돋보였다. 오정희작가, 신경숙작가의 문체에 익숙한 나로선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하게 읽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말로 좋은 날>은 그만의 문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한 그의 문체, 그 문체는 사라지고 메말라버린 짧은 문장만 남아있다. 이전에 성석제의 문체를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그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의 문체를 이렇게 말라버리게 한 것이 누굴까 하며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내가 이 리뷰에서 소개하고 싶은 단편은 "고귀한 신세"와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이다. 

 
  "고귀한 신세"는 웰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고귀한 신세, 그 제목에서 난 작가의 희화를 느꼈다.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하려던 주인공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하게 된다. 어이없이 부서져버린 웰빙 인생. 성석제만이 쓸 수 있는 글. 난 그렇게 생각했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는 이 단편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화가인 주인공은 생활에는 무능력하다. 후배의 별장을 지키고, 동화책 삽화의 선금을 받고는 그림을 보내지 않고, 사이버머니를 모으며 살아간다. 나름대로 평화로운 생활을 '통지서'가 깨어버리고 아내는 귓병을 앓게된다. 그의 작은 아파트, 가정 그것들이 깨어져나가는 것을 '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 <참말로 좋은 날>은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성석제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아이러니 뿐인 이번 작품집이 성석제를 인정케하는 계기가 되리라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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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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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작가가 이상문학상을 탔다는 소리를 듣고 군침을 흘리던 걸 안쓰럽게 본 지인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선물했다. 김연수작가의 책은 즐겨보지 않아서ㅡ보지 않는다기 보다는 기회가 안 되서ㅡ 책을 펴며 긴장을 하게 됐다.

   권위있는 문학상중 하나인 이상문학상은 매년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구입한 건 89, 09 밖에 없지만 그 외에 읽은 작품집도 모두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상문학상은 올해 33회를 맞이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빛나는 작품들을 난 차례차례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우수작도 굉장히 좋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상작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었다. 심장을 누르는 코끼리. 코끼리는 고통이었다. 고통을 못이겨 불면을 겪게되는 주인공은 책을 읽고 '산책'하기를 결심한다. 지인 9명을 만나고도 코끼리가 가시지않자 산책으로 암을 이겨냈다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들의 산책로는 막혀있다.


   
  그가 코끼리와 함께 산책했다면, 그녀는 노아처럼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을 이끌고 걸었던 셈이다  
   

 
   우수작도 모두 재밌게 읽었지만 박민규 수다스러울절(龍龍龍龍(), 윤이형 완전한 항해에대해 언급하고 싶다.

 
  이번 박민규작가의 수다스러울 절은 참 당황스러웠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무협" 이었다. 검제ㅡ사실 확실히 모르겠다ㅡ의 출옥과 함께 시작하는 이 글은 무림이 사라진 현대가 배경이다. 결국 세상의 끝이 적혀있다는 무제록을 읽게된 四龍[사용]은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윤이형 완전한 항해는 판타지였다.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죽음에 이를때 할 수 있는 '튜닝' 주인공은 쉰번째 튜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쉰번째 튜닝이 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루족이었다. 루족은 원래 동굴에 살면서 수액을 먹으며 환생을 하고 살아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젊은 루족이 그들이 섬기던 신을 나눠가져 기계로 만들었다. 주인공과 튜닝이 가능하다는 루족은 '창'이었다. 주인공은 튜닝을 하고나서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결국 창은 튜닝을 거절한다. 창은 눈에 묻혀 죽을 운명이었지만 달로 달로 날아가다가 불에 타 죽게된다.

 
  이 두 작품을 읽으며 "장르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우리 문학에서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협과 판타지는 인터넷을 만나면서 피폐해지기 시작했고 '대여점문학ㅡ딱 대여점 숫자만큼 찍어내고선 팔리지 않음ㅡ'으로 전락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장르문학의 현실에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호제라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바라봐 주면 좋을 것같다.

 
  이번 이상문학상도 날 만족시켰다. 1년에 한번 있느니 만큼 그 성과도 좋다. 내년에도 이 벅찬 느낌을 받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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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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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간단한 수상작을 읽으러 들어간 서점에서 나도모르게 뽑아든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이하 갈팡질팡- 는 날 후회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 책을 뽑아든 건 며칠 후에 있을 캠프의 초대작가가 이기호작가였기 때문이었다. 미디어다음에서 연재하고있던 ‘사과는 잘해요’도 굉장히 재밌게 읽고있었고 기왕 볼 사람 책 읽고 가자는 심정이었다.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이기호작가의 문학강연을 먼저 풀어보고싶다. 이기호작가는 문학으로 모여있는 우리들에게 “왕따들”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이기호작가가 문창과를 두루섭렵하고 다녔지만 늦게 대뷔해서 일까. 이기호작가는 참 따뜻해보였다. 이기호의 글 자체도 굉장히 따뜻하다. 갈팡질팡은 자전소설에 가까웠는데 그의 모든 것을 녹여 만든 책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갈팡질팡은 실험작과 자전작이 섞여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인상깊게 본 것은 ‘야채볶음흙’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기호작가는 흙을 먹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극단적으로 흙을 먹어대는 모습은 나마저 군침이 돌게했다. 그 단편을 다 읽었을 때 난 입안에 가득 든 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한번 먹어봐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한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도 재밌게 읽혔다. 그야말로 새로운 소설이었는데 읽어주는 이야기를 가장하면서 자신의 소설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기호의 흡입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자전적 소설의 최고를 보여준 것이 ‘수인(囚人)’이었다. 소설가는 땅파는 사람이다. 이기호는 간단히 그렇게 얘기하려고 한 게 아닐까. 이기호의 글쓰기 자체가 녹아있는 글이라 읽을때마다 두근두근거렸다.

  갈팡질팡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듣고 난 이기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갈팡질팡을 비롯한 그의 소설을 섭렵하고 다녔다. 이제 그도 장편을 낼 차례이다. 미디어다음에서 연재하고 있는 ‘사과는 잘해요’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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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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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신경숙이라는 작가 이름만 들어도 난 가슴 설레곤 했다. ‘바이올렛’으로 알게된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책 한 권 한 권 내 정신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난 “신경숙 대표작이 뭔데?”라고 물어오는 친구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풍금이 있던 자리’라던가 ‘외딴방’을 말했을테지만 난 그 분류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두 작품보다 더 문학성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이름이 생경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엄마를 부탁해’는 명성과 문학성 모두를 어우를 수 있는 신경숙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신경숙작가의 실제 시골집이다. 이를테면 자전소설이다. 신경숙 작가의 글에서는 늘 ‘시골집’이라든가 딸을 글씨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나오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도 없을 것이다. 

  신경숙의 글에는 새로운 시도 (이를테면 박민규나 김연수, 이기호같은)는 없지만 그녀의 세계를 따뜻하게 나타내는 시선과 문체가 있었다. 신경숙은 덩사 기성작가들의 글을 모두 필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일까. 신경숙작가의 문체는 부드럽고 감싸드는 매력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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