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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이의 독서기록이란, 뻔하고 혹은 지루하기 쉽다. 나는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줄거리란 영화보다 복잡하고, 그래서 제대로 쓰려다보면 어느샌가 엄숙한, 혹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비평이 되어버린다. 휴식을 위해 손을 내밀만한 에세이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칼럼으로만 접한 정희진은, 대체로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작가이기에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어떻게 읽을까. 무엇으로 읽을까. 게다가 짧은글들을 모았다니 그만큼 부담도 덜했다. 
















여느 독서기록자들과는 달리 다독자가 아님을 처음부터 말하고 들어가지만, 집에 문학사상이나 삼중당 같은 도서류가 없었던 내가 보기엔 굉장한 다독자다. 나는 이와나미 문고의 존재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정희진은 책을 그저 많이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지식을 얻고 사고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보여주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독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나 혼자 해석했다. 


시간이 나는대로 한 번 더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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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는가, 가 소위 '아싸'력을 측정하는 질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둘 이상이 모여서 같은 스크린을 바라본다고 해도, 영화는 혼자 볼 수 밖에 없는 행위다. 

거실에서 먹을거리를 쌓아두고 영화를 보는 것과 수다를 떠는 것을 섞어 즐기는게 아니라면,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이 꺼지기 전과 자막이 올라간 뒤에 일행과 말을 나누는 것은, 사실 영화를 보는 행위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혼자서 본 영화'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인가 했다. 정희진의 영화보기란 좀 특별하다. 둘이 가더라도,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오롯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자막이 올라간 뒤엔, 언제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일행과 말을 시작했다. 저 배우가 어땠는지, 밥은 뭘 먹을지. 여운이 끝까지 남는 영화는 나에게도 혼자 본 영화였다. 만추가 그랬고, 그을린 사랑이 그랬고, 퍼햅스러브가 그랬다. 


오랫동안 쌓인 메모를 바탕으로 다시 써내려간 에세이는, 영화 얘기를 하면서도 세상을 말하고, 그러면서도 영화를 벗어나지 않는다. 때때로 영화는 그저 시작점일 뿐, 이내 영화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영화 본래의 주제와 별 상관없는 글들이 많은데, 그런 것은 따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언정 영화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희진의 글들은 딱 적당하다. 


본 적 없는, 심지어는 모르는 영화가 많지만, 당연히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간단하게나마 메모를 해두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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