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의든, 타의든 소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요즈음 이런 생각이 자꾸 머리에 남는다. 좋은 소설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로 당대에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소설이 당대 뿐 아니라 길이길이 사랑을 받을 것이며, 어떤 소설이 비록 대중의 사랑은 받지 못해도 후세에 불후의 명작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좋은 소설과 잘 쓴 소설은 같은 말일까? 잘 쓴 소설은 구성이 좋다는 말일까, 이야기가 미칠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일까,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하이얀 빛깔이 고이 나비는 그런 소설일까.

 

이 의문은 김인숙 작가의 <미칠 수 있겠니>에서도 여지없이 아니, 더 강한 증폭을 자아냈다. <미칠 수 있겠니>의 한 문장 하나 하나는 너무도 유려하고 어떻게 내가 호흡하고 건드려야 할지 주체를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아 이사람 참 글 잘 썼다' 라는 생각보다는 아 이사람 정말 참 '문장 잘 썼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무 하나하나의 매력에 너무도 깊이 침전한 나머지 내가 왜 그 숲에 들어갔는지, 그 숲 안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러한 문장의 과잉은 설정과 의도의 과잉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섬에서 불타는 시신을 본 영감으로 시작했다는 이 소설.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라고 얘기한다. 나는 이 표현이 이 소설을 소개하는 데에도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너무도 많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처음의 영감과 그 시작은 매우 깔끔하고 단조로웠을지 몰라도 그 안에 하나씩 여미는 표현과 설정들이 덕지덕지 붙어나가면서 우리는 어느 것에 미쳐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할 정도에 이른다.

 

작품의 시작은 '이름'이 같은 나와 너의 사랑으로 시작한다. 너가 곧 나였던 세상을 시작하여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그래서 도피와 배신으로 이어지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이 느꼈을 광막한 공허가 작품의 전체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생과 삶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격과 그 간격을 순식간에 아우르는 아주 얇디 얇은 실선의 한 가닥 우연과 운명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진을 통해 진과 이야나가 기억하지 못했던, 그러나 기억해야 했던 사실들을 떠올리게 하고 각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서로의 월리스 라인을 좁혀나가 마침내 현재의 생과 합쳐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진과 유진을 통해 너무도 어렵고 무겁게 내비친다. 무엇이 그렇게 어려웠던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노라면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을지라도, 그리고 남들이 보기엔 너무도 순간에 지나가는 찰나의 일상이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미칠 것 같은 고통이라는 듯이. 진과 유진의 이야기는 너무도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이 무거움이 작품의 시작부터 우리를 옭아매느라 우리는 이 작품이 무엇에 미쳐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미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무슨 얘기인지 얼핏 알 것도 같지만 도저히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작가의 마음과 감성이 실상은 우리를 매혹적으로 끌어들이는 바다의 절대적 마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첫 대면한 이야나의 공포로 한걸음 발을 빼게 만드는 것만 같다.

 

결국 <미칠 수 있겠니>는 나에게까지 미칠 수 없었다. 작가가 미치도록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아니면 미치도록 토해내고 싶었을 이 이야기를 이끌어간 그 영감과 생각은 나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리고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이런 영감과 생각을 토해낼 수 있는 그 영혼이, 이런 문장 하나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자유로운 손가락이.

마치 터져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미치도록 너무나 많은 영감을 토해내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무한히 터져나오는 작가의 감성은 한 줄기 느껴졌다. 조금만 더 내게도 미쳤으면 좋았을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